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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깨달음의 경계가 머리를 때리면(見性), 이제 공부는 시작입니다. 그것을 체험했다고 합니다. 진리의 파도가 가슴을 울리게 되면, 그것을 가리켜 실감한다고 합니다. 그 체험이 온몸으로 느껴질 때 비로소 자리가 잡힌 것입니다. 그것을 체화되었다(不昧因果)고 하며, 그 후부턴 더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 공부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손에 氣가 느껴지기 시작하면 이제 선도(仙道) 공부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것이 단전(丹田)에 이르고, 들고나는 氣가 모두 丹田 중심으로 이루어지면 그것을 실감(實感)이라 합니다. 丹田의 기운이 전신을 타고 돌고, 우주의 에너지와 교류가 이루어진 것을 가리켜 체화(體化)되었다 합니다. 비로소 공부의 마무리, 선계(仙界)에 명패(名牌)를 올리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소주천(小周..
에너지 운행(小周天)이 자연스러워지면 단전이 무르익어 태식(胎息)을 알게 되고, 온몸을 싸고도는 에너지가 확대되기 시작한다. 그것을 에너지 場(energy field)이라 한다. 처음엔 그 영향권이 한계가 있지만, 점차로 몸을 넘어서서 외부로까지 펼쳐지게 된다. 소주천(小周天)은 그 영향권(energy field)이 3차원에 머물지만, 대주천(大周天)은 그 영향권이 시공(時空)을 초월한다. 대주천이 시작되면 에너지장(場)은 무한히 확장되어 말이나 문자로 표현이 불가한 자리(言語道斷), 신성(神聖)한 영역에 도달한다. 그것이 천선(天仙)이며, 불가(佛家)에선 환지본처(還至本處), 열반(涅槃)이라는 자리이다.
당신이 누군지를 알고 싶다면, 그동안 나라고 알고 살았지만 내가 아닌 것들을 모두 내려놓아 보세요. 우선 내 이름은 내가 아닙니다. 편의상 붙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다음 누구의 자식이나 아버지,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직장에서의 나의 직책은 내가 아닙니다. 분류상 그리 부르는 것뿐입니다. 마지막으로 내 몸과 마음마저 내려놓아 보세요. 그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자동차나 컴퓨터처럼 내가 사용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하고 나면 오롯이 남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진짜 "나" 곧 자성(自性)입니다. 내가 아닌 것들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모두 변합니다. 그러나 그것, "본래면목"은 변하지 않습니다. "나"를 찾고 나면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집착이 사라지고 건강해집니다. 하루하루를 평화롭게..
선도(仙道) 공부를 어느 정도 하다 보면, 에너지(氣)를 알게 되고, 병(病)을 치유하는 힘이 생깁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상대의 몸 가까이 손을 대고 내공(內功)을 전달하는데, 그것을 책에선 운기조식(運氣調息)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다소 내공이 약하다 할지라도, 나의 기운(氣運)과 상대의 기운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증폭(增幅) 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소싯적엔 많이 했던 일입니다만, 지금은 직접적으로는 하지 않습니다. 두셋이 힘을 모아 수련을 하면 손을 대지 않아도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에너지를 깨우쳐야 하고, 그것을 운용(運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
우리는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석가는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에 나만 홀로 존귀하다(天上天下 唯我獨尊)"고 말했다고 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기의 의견을 분명하게 말한다. 하지만 다른 타인의 의견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공부꺼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존감이 약한 사람은 내놓는 의견이 정리되어 있지 않아 힘이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을 꺼린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의견을 내기 전에 검토할 것들을 다양하게 확인했으므로 자신감이 있다. 그러므로 반대 의견이 나와도 거의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유연하다. 혹시라도 토론 중 자신의 오류가 발견되면 기분 좋게 즉시 시인한다. 그러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의 오류가 나타나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되고, 나중엔..
깨달으려면, 먼저 그대 자신에게 물어보라. 나는 진정으로 깨닫고자 하는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그렇다"라는 답이 나온다면 다음으로 넘어가고, "글쎄"란 마음이 들면 그냥 술 한잔에, 담배 한 대로 깨달음 같은 건 잊으라! 깨달으려 한다면, 내려놓을 것들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선(善)과 악(惡), 의(義)와 불의(不義), 호불호(好不好), 과거와 미래, 부처, 예수, 부모, 형제, 남편, 아내, 자식, 그리고 지위와 재산, 마지막으로 내 몸과 마음까지도 모두 내려놓으라. 그런 것들은 깨달음(안정)과는 관계가 없다. 오히려 방해가 된다. 깨닫고 나면 눈앞에 새 세상이 펼쳐진다. 그리곤 세상 모든 것의 주도권이 내게 온다. 깨달음을 원한다면 온 마음을 단전(丹田)에 모으고 인연을 기다려라. 그것이 선도..
모든 선도 수련의 핵심은 흩어지는 것을 ‘모으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가만히 냅두면 흩어지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결국에는 허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물리학에서는 이것을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라고 한다. 닫힌계에서 쓸모있는 에너지는 줄어들고, 무질서도는 증가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 이것이 생명체가 노화하고, 흙으로 돌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그렇지만, 기운(에너지) 역시 음과 양의 성질을 가진다. 위 그림에서, x축은 이동 거리 또는 시간이고, y축은 세기이다. 즉, 저런 식으로 파동 모양을 하게 되는데 전류도 그렇고, 소리, 진동, 전자기장도 파동 모양으로 음과 양을 왔다 갔다 하면서 진행한다. (물론, 에너지는 파동뿐만 아니라 입자 형태도 가지지만 입자..
깨달음을 얻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여전히 새는 울고, 강물은 흐른다. 그래서 어렵게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고도 "별거 아니네" 하면서 다시 경전 공부에 몰두하는 비구(比丘)도 있다. 그의 기대치에 영 못 미쳤기 때문이다. 그는 특출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한 행동에는 전혀 하자가 없다. 아마 그는 스스로 자기 생각들을 보통 때도 잘 정리하고 다스리던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깨달음이란 더 이상 생각들이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며, 우리의 괴로움들은 대부분이 생각이 원인이다. '정견(正見)'이란, 모든 것은 변하며(無常), 몸이나 마음, 특히 생각이 나는 아니며(無我), 생각의 정리가 안 되면 일체가 고통(一切皆苦)이라는 것을 바로 보는(見)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그대로 행복하게 지내..
"氣를 쓰다"란 말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은 "있는 힘을 다한다"로 정의합니다. 우리는 에너지(氣)를 쓰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氣"를 쓰며 살아야 할까요? 氣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으로 태어나서 그것으로 살다가, 그것이 다하면 죽습니다. 우리에게 氣는 너무나 당연합니다. 氣를 알면, 건강하고 맘 편하게 살 수 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것을 통해 밝음(見性)과 행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행을 하는 사람을 크게 나누어 좌도(左道)와 우도(右道)로 나눈다. 그리고 그들이 속한 단체를 좌도방, 우도방이라 부르며, 무림(武林)에서도 그것을 정파(正派)와 사파(邪派)로 나누어 차별한다. '좌도'란,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의 노력이 아닌 남의 힘을 이용하여 능력을 발휘하는 방술(方術)을 말한다. 특별한 음식이나 약(藥)을 통해 공력(功力)을 배양한다거나, 주문(呪文)이나 가상(假相) 존재(神 등)의 힘을 빌려 사용한다면 좌도라 할 수 있다. 좌도는 비단 수행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예술계에서도 비밀리에 혹은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그들은 보통 M에서 시작해 C 혹은 H로까지 약의 범위를 넓히는데, 더 나은 글, 더 심금을 울리는 음악이나 춤을 위해서라고 변명하더라도 법에서 금하는 일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