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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깨달음은 삶에서 드러난다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우주의 비밀을 알아내는 것일까. 내가 누구인지 마지막 의문까지 풀어내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깨달음은 멀고 어려워진다. 평생 경전을 읽고 명상해도 도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나는 불교를 간단하게 생각하고 싶다. 그 중심에 사성제를 놓으면 어떨까. 삶에는 괴로움이 있고, 괴로움에는 원인이 있으며, 그 원인을 거두면 괴로움도 잦아들고, 그러기 위해 걸어갈 길이 있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생활에 적용한다면, 깨달음도 이미 그 사람의 삶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을 바란다. 돈이 조금 더 있었으면 하고, 몸이 건강하기를 바라며, 자식의 일이 잘 풀리기를 원한다. 바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그 바람에 ‘반..
내가 틀릴 수도 있다. 아무리 학식이 높고 아는 것이 많아도, 자신의 생각을 의심할 수 없다면 그 지식이 지혜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많이 아는 것과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능력이다.사람은 흔히 지식이 많아질수록 더 현명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학식이 높을수록 자기 확신이 강해지면 더 위험해질 수도 있다. 아는 것이 많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을 방어할 논리도 많고, 반대 의견을 물리칠 말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현명하게 만드는 것은 지식의 양만이 아니다. 자기 생각을 바라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눈이 필요하다.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이 질문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질문이 있다. ‘내가 무엇을 잘못 알고 있을 가능성..
아무도 사지 않으면 내가 쓰면 된다 물건을 만들어 팔려면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사갈 사람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아무리 유용한 물건도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면 팔리지 않는다. 그것이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익숙한 것에 만족하여 새로운 것의 가치를 살펴보려 하지 않는다면, 창안자는 동력을 잃기 쉽다. 그러나 판매보다 자신이 발견한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무도 사 가지 않으면 내가 쓰면 된다. 내가 써서 좋다면 그 가치는 이미 내 삶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자손에게도 물려주고 싶을 만큼 값진 것이라면, 당장 사람들의 외면 때문에 버릴 이유가 없다. 물론 오래 고집한다고 반드시 세상의 인정..
연기설(緣起說) 보류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불교의 연기설(緣起說), 얼핏 보면 반박하기 어려운 진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든 현상이 조건에 의존한다는 사실과, 모든 존재가 독립적인 실체 없이 오직 조건에 의해서만 존재한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명제이다. 1. 연기설은 존재의 원인을 설명하는가? 연기설은 각각의 현상이 어떤 조건에서 발생하는지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존재 전체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답을 주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다른 것에 의존한다면, 의존하는 것들은 무엇을 근거로 존재하는가?” 물론 최초 원인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연기설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다만 연기설이 존재의 궁극적 근거까지 해명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과도한 주장..
신(神과 기(氣)가 만나는 자리 새 이름을 안다고 새를 아는 것은 아니다. 이름을 외우고 생김새를 설명할 수 있어도, 새벽 숲에서 그 울음을 듣고 날갯짓을 지켜본 사람의 앎과는 다르다. 수련도 그렇다. 단전이라는 말을 아는 것과 丹田을 느끼는 것은 다르고, 신기계합(神氣契合)이라는 글자를 읽는 것과 그 뜻을 몸으로 익히는 것은 다르다. 나는 오랜 수련 끝에 선도의 중심을 이렇게 이해하게 되었다. 신과 기를 계합하는 것, 그리고 그 결합을 기르고 무르익히는 것. 그것이 수련이며 연단(鍊鍛)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신은 보고 듣고 느끼며 알아차리는 작용이다. 기는 그 작용을 뒷받침하고 몸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이것은 나의 수련을 설명하기 위한 구분이며 신과 기를 두 개의 물건처럼 따로 떼어 손바닥..
살아 있는 날까지, 그냥 이렇게 제1원인이 있든 없든, 이제는 그런 일에 마음을 두지 않으련다. 아트만이 있든 없든, 무아(無我)이든 아니든, 연기(緣起)가 이치에 맞든 틀리든, 이기(理氣)가 일원이든 이원이든, 저마다 할 말이 있으면 하게 두자. 신(神)과 기(氣)가 계합하여 양신(陽神)을 이루어도 그것은 그때의 일일 뿐,그 답을 기다리느라 ‘오늘’을 문밖에 세워둘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보고, 바람에 나뭇잎 부대끼는 소리를 듣고, 찻잔에서 건너오는 온기를 느낀다.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줄 알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그 고요를 누린다. 세상의 근본을 다 몰라도 차 한 잔의 향기는 맡을 수 있고, 우주의 이치를 다 풀지 못해도 웃음은 난다. 배고프면 먹고,..
봄이 오면 꽃은 피어난다 훈풍이 불어오고 개나리가 노랗게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면 이미 봄은 온 것이다.더러 찬바람이 불고 때늦은 진눈깨비가 내린다 해도 봄이 왔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겨울이 마지막 심술을 부린다고 해서 봄이 다시 겨울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선도의 공부도 이와 같다.단전 자리에 느낌이 일어나고, 숨이 깊이 내려가 투웨이(Two-way) 호흡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면 이미 선계(仙界)에 첫발을 디딘 것이다.물론 그것으로 공부가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 막 봄이 왔을 뿐이다. 꽃도 피어야 하고 열매도 맺어야 한다. 그러나 봄이 온 사람에게 겨울을 걱정할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꽃을 피우겠다고 가지를 잡아당기지 말라. 열매를 빨리 맺게 하겠다고 꽃잎을 들추지도 말라. 꽃은 때가 되..
성공의 끝에서 성공이란 무엇인가.사업가는 부를 이루려 하고, 정치가는 권력의 정점을 향해 나아간다. 학자는 학문에 이름을 남기려 하고, 인기인은 정상에 올라 세상의 환호를 받으려 한다. 저마다 바라보는 봉우리는 다르지만, 그곳에 오르면 마침내 삶이 충만해지리라 믿는다. 그러나 정상에 선 사람은 과연 도착했다고 느낄까. 이제 충분하다고, 더는 아쉬울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재산이 늘면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지면 내려올 일이 두려워진다. 명성은 더 큰 명성을 부르고, 박수는 잦아들 때 오히려 마음을 흔든다. 세상이 성공이라 부르는 것을 손에 쥐고도, 사람은 여전히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仙道人이 향하는 성공은 조금 다르다. 丹田이 열리고, 小周天을 거쳐 胎息에 이르는 것. 神과 氣가 어..
숨 길이 열리자 밤이 조용해졌다 나는 소주천을 체험한 뒤 양쪽 코가 시원하게 열리는 변화를 겪었다. 코로 숨 쉬는 일이 편안해졌고, 그 뒤부터 코골이도 사라졌다. 단전 공부가 가져온 변화는 수련하는 시간에만 머물지 않고 잠든 동안의 호흡에도 나타난 것이다. 내가 익히고 가르치는 단전호흡에서는 혀를 입천장에 가볍게 대고 코로 숨을 쉰다. 턱과 목에 힘을 주거나 공기를 억지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몸이 가라앉고 숨이 편안해지는 가운데 단전을 중심으로 온몸의 움직임이 어우러진다. 코골이는 잠든 동안 좁아진 숨길을 공기가 지나면서 주변 조직을 떨리게 해 생긴다. 코막힘은 입호흡을 유발하고 코골이를 악화시킬 수 있다. 수련 이후 코가 편안해진 것과 코골이가 사라진 것이 이어져 있었다. 코막힘이 줄어 코로 숨 쉬..
아쉬울 게 없는 사람 사람은 무엇을 얼마나 가져야 아쉬울 게 없어질까. 평생 쓸 돈이 있고, 사람들이 알아주고, 곁에 좋은 사람이 있으면 충분할까. 그러나 가진 것이 많아도 아쉬움은 남는다. 얻은 것을 잃을까 두렵고, 아직 얻지 못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아쉬움의 뿌리는 소유의 많고 적음보다 자신을 무엇으로 여기느냐에 있다. 재산을 나로 여기면 재산이 줄 때 내가 초라해진다. 지위를 나로 여기면 자리에서 물러날 때 내가 사라지는 듯하다. 남의 평가로 자신을 확인하면 칭찬 한마디에 들뜨고 외면 한 번에 무너진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 삶에 들어왔다가 떠나는 것들이다. 내가 가진 것이며, 내가 맡은 자리이며, 나를 향한 다른 사람의 생각이다. 그것이 곧 나는 아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살피는 일은 여기서 시작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