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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신(神과 기(氣)가 만나는 자리 새 이름을 안다고 새를 아는 것은 아니다. 이름을 외우고 생김새를 설명할 수 있어도, 새벽 숲에서 그 울음을 듣고 날갯짓을 지켜본 사람의 앎과는 다르다. 수련도 그렇다. 단전이라는 말을 아는 것과 丹田을 느끼는 것은 다르고, 신기계합(神氣契合)이라는 글자를 읽는 것과 그 뜻을 몸으로 익히는 것은 다르다. 나는 오랜 수련 끝에 선도의 중심을 이렇게 이해하게 되었다. 신과 기를 계합하는 것, 그리고 그 결합을 기르고 무르익히는 것. 그것이 수련이며 연단(鍊鍛)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신은 보고 듣고 느끼며 알아차리는 작용이다. 기는 그 작용을 뒷받침하고 몸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이것은 나의 수련을 설명하기 위한 구분이며 신과 기를 두 개의 물건처럼 따로 떼어 손바닥..
살아 있는 날까지, 그냥 이렇게 제1원인이 있든 없든, 이제는 그런 일에 마음을 두지 않으련다. 아트만이 있든 없든, 무아(無我)이든 아니든, 연기(緣起)가 이치에 맞든 틀리든, 이기(理氣)가 일원이든 이원이든, 저마다 할 말이 있으면 하게 두자. 신(神)과 기(氣)가 계합하여 양신(陽神)을 이루어도 그것은 그때의 일일 뿐,그 답을 기다리느라 ‘오늘’을 문밖에 세워둘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보고, 바람에 나뭇잎 부대끼는 소리를 듣고, 찻잔에서 건너오는 온기를 느낀다.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줄 알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그 고요를 누린다. 세상의 근본을 다 몰라도 차 한 잔의 향기는 맡을 수 있고, 우주의 이치를 다 풀지 못해도 웃음은 난다. 배고프면 먹고,..
봄이 오면 꽃은 피어난다 훈풍이 불어오고 개나리가 노랗게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면 이미 봄은 온 것이다.더러 찬바람이 불고 때늦은 진눈깨비가 내린다 해도 봄이 왔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겨울이 마지막 심술을 부린다고 해서 봄이 다시 겨울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선도의 공부도 이와 같다.단전 자리에 느낌이 일어나고, 숨이 깊이 내려가 투웨이(Two-way) 호흡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면 이미 선계(仙界)에 첫발을 디딘 것이다.물론 그것으로 공부가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 막 봄이 왔을 뿐이다. 꽃도 피어야 하고 열매도 맺어야 한다. 그러나 봄이 온 사람에게 겨울을 걱정할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꽃을 피우겠다고 가지를 잡아당기지 말라. 열매를 빨리 맺게 하겠다고 꽃잎을 들추지도 말라. 꽃은 때가 되..
성공의 끝에서 성공이란 무엇인가.사업가는 부를 이루려 하고, 정치가는 권력의 정점을 향해 나아간다. 학자는 학문에 이름을 남기려 하고, 인기인은 정상에 올라 세상의 환호를 받으려 한다. 저마다 바라보는 봉우리는 다르지만, 그곳에 오르면 마침내 삶이 충만해지리라 믿는다. 그러나 정상에 선 사람은 과연 도착했다고 느낄까. 이제 충분하다고, 더는 아쉬울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재산이 늘면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지면 내려올 일이 두려워진다. 명성은 더 큰 명성을 부르고, 박수는 잦아들 때 오히려 마음을 흔든다. 세상이 성공이라 부르는 것을 손에 쥐고도, 사람은 여전히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仙道人이 향하는 성공은 조금 다르다. 丹田이 열리고, 小周天을 거쳐 胎息에 이르는 것. 神과 氣가 어..
숨 길이 열리자 밤이 조용해졌다 나는 소주천을 체험한 뒤 양쪽 코가 시원하게 열리는 변화를 겪었다. 코로 숨 쉬는 일이 편안해졌고, 그 뒤부터 코골이도 사라졌다. 단전 공부가 가져온 변화는 수련하는 시간에만 머물지 않고 잠든 동안의 호흡에도 나타난 것이다. 내가 익히고 가르치는 단전호흡에서는 혀를 입천장에 가볍게 대고 코로 숨을 쉰다. 턱과 목에 힘을 주거나 공기를 억지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몸이 가라앉고 숨이 편안해지는 가운데 단전을 중심으로 온몸의 움직임이 어우러진다. 코골이는 잠든 동안 좁아진 숨길을 공기가 지나면서 주변 조직을 떨리게 해 생긴다. 코막힘은 입호흡을 유발하고 코골이를 악화시킬 수 있다. 수련 이후 코가 편안해진 것과 코골이가 사라진 것이 이어져 있었다. 코막힘이 줄어 코로 숨 쉬..
아쉬울 게 없는 사람 사람은 무엇을 얼마나 가져야 아쉬울 게 없어질까. 평생 쓸 돈이 있고, 사람들이 알아주고, 곁에 좋은 사람이 있으면 충분할까. 그러나 가진 것이 많아도 아쉬움은 남는다. 얻은 것을 잃을까 두렵고, 아직 얻지 못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아쉬움의 뿌리는 소유의 많고 적음보다 자신을 무엇으로 여기느냐에 있다. 재산을 나로 여기면 재산이 줄 때 내가 초라해진다. 지위를 나로 여기면 자리에서 물러날 때 내가 사라지는 듯하다. 남의 평가로 자신을 확인하면 칭찬 한마디에 들뜨고 외면 한 번에 무너진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 삶에 들어왔다가 떠나는 것들이다. 내가 가진 것이며, 내가 맡은 자리이며, 나를 향한 다른 사람의 생각이다. 그것이 곧 나는 아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살피는 일은 여기서 시작된..
Easy come, easy go 선도를 공부하는 사람의 첫 과제는 단전을 아는 것이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전(丹田)을 지식으로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느끼는 것을 뜻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선도에서는 모든 길이 단전으로 통한다.하지만 단전을 느꼈다고 공부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느낌이 몸과 마음에 깊이 연결되어 삶 속에서 작용하지 못한다면, 잠깐의 체험에 머물 뿐이다. 드물지만 아주 쉽게 단전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내 경험으로는, 그런 사람 가운데 진지하게 공부를 이어가는 이는 많지 않았다. 쉽게 얻은 만큼 그 가치를 가볍게 여기고, 느낌이 사라져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다. 쉽게 데워진 방이 쉽게 식듯이 말이다. 단전을 처음 느끼는 것은 지나가는 바..
나에게 돌아오는 길 고타마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집착이 인간을 괴롭게 한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우리는 지나간 일을 붙들어 후회하고, 지금 가진 것을 지키려 애쓰며, 아직 오지 않은 일을 걱정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오가는 동안 마음은 좀처럼 쉬지 못한다. 그 얽힘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기가 무엇인지 아는 데서 시작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나라고 생각해 온 것 가운데 내가 아닌 것을 하나씩 덜어내는 것이다.재산도 지위도 내가 아니다. 남의 칭찬과 비난도 내가 아니다.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 오래된 기억도 내가 알아보는 대상이다. 그것들은 나타났다가 사라지지만, 나는 그것이 오고 가는 것을 안다. 그렇게 덜어내고 나면 알아차림이 남는다. 알아차림은 후회를 붙들지 않고 미래를 움켜쥐지도 않는다. 고..
무엇을 삶의 중심에 둘 것인가? 인간은 누구나 자기 나름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 가치관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과연 옳은 것인지 깊이 성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것을 좇고, 남들이 옳다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는다. 정작 무엇을 위해 사는지 묻지 않은 채 묻지 않은채 말이다. 먼저 자신의 가치관부터 정립해야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소중하고 하찮은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지성의 출발점이다. 많이 배웠다고 지성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풍부한 지식을 갖추고도 편견에 사로잡혀 자기 이익만 추구한다면, 그 지식은 탐욕을 정당화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지성(知性)이란 아는 것의 양이 아니라 자신이 아는 것을 의심하고, 자신의 욕망까지 성찰할 수 ..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 한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쓸데없는 짓이라 비웃더라도, 자신에게 즐거움과 보람을 주는 일이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인생은 남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러나 세상에는 좋아하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귀찮고 힘들어도 건강을 돌봐야 하고, 생계를 꾸려야 하며, 자신이 맡은 책임도 다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그렇다고 해야 할 일에만 매달려 산다면 삶은 끝없는 의무의 연속이 된다. 반대로 좋아하는 일만 좇다 보면 현실을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문제는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있다.해야 할 일은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좋아하는 일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