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체 글 (3044)
谷神不死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 한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쓸데없는 짓이라 비웃더라도, 자신에게 즐거움과 보람을 주는 일이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인생은 남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러나 세상에는 좋아하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귀찮고 힘들어도 건강을 돌봐야 하고, 생계를 꾸려야 하며, 자신이 맡은 책임도 다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그렇다고 해야 할 일에만 매달려 산다면 삶은 끝없는 의무의 연속이 된다. 반대로 좋아하는 일만 좇다 보면 현실을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문제는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있다.해야 할 일은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좋아하는 일에..
과거 선배들이 가르침을 중단하고 은둔한 것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다. 오래 가르친 사람에게는 말을 거두고 자신의 삶을 깊이 들여다볼 때도 찾아온다. 세상의 관심은 돈과 권력으로 쏠리기 쉽다. 그러나 각자의 관심과 선택을 내가 바꿀 수는 없다. 나는 내가 걸어온 길과 그곳에서 깨달은 바를 전하면 된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에 옮기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이제는 간단한 글을 남기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오랜 수련에서 얻은 핵심을 분명하게 담아두면, 필요한 사람이 제때 찾아 읽을 것이다. 말의 분량보다 그 안에 담긴 체험의 깊이가 중요하다. 비판에도 굳이 일일이 대응할 필요는 없다. 돌아볼 만한 지적은 돌아보되, 모든 논쟁에 내 시간을 내줄 이유는 없다. 내가 깨달은 바는 앞으로 살아가는 모습으..
나는 양명학(陽明學)에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이 글을 읽어주기 바란다. 정암 : 양명학의 知行合一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니 논외로 하고, 생각컨데 그의 도교 공부는 다분히 의심스러우며 그는 사상은 불교에 경도되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마치 새로운 발견인 것처럼 말하는 致良知 心卽理는 이미 불교에서 귀 따갑게 들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양명학의 致良知 心卽理를 불합리로 지적하면서 ‘卽心是佛’이나 ‘모두 부처다‘는 것에 대해선 왜 언급하지 않는지 의아하다. GPT : 지적하신 부분은 양명학의 사상적 독창성을 평가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특히 왕양명의 심즉리(心卽理)·치양지(致良知)를 비판하면서, 그보다 앞선 선불교의 즉심시불(卽心是佛)과 본래성불(本來成佛)을 비판..
진리를 믿는 자유, 믿지 않을 자유 자신이 믿는 진리가 절대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믿지 않을 타인의 자유는 인정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신념을 가질 권리가 있다. 종교를 믿든 철학을 따르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자신의 믿음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순간, 신념은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이 된다. 진리에 대한 확신이 강할수록 사람은 독선에 빠지기 쉽다. 자신은 진리를 알고 상대는 무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상대를 구원하거나 계몽한다는 명분으로 그의 삶에 간섭한다.그러나 아무리 숭고한 진리라도 강요하는 순간 그 가치는 훼손된다. 믿음은 강제로 얻을 수 없고, 깨달음은 명령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종교가 정치권력과 결합할 때 그 위험은 더욱 커진다. 개인의 신앙이 국가의 법이 되고,..
치매를 부르는 생활습관 인간의 뇌는 사용하지 않는 기능부터 쇠퇴하기 쉽다.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여든에도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책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순부터 새로운 것을 배우기 싫어하고 기억력 저하를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유전이나 나이만이 아니다. 오랜 세월 반복해 온 생활습관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치매는 하루아침에 찾아오는 병이 아니다.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될 수 있다. 따라서 치매 위험을 줄이려면 일상의 작은 습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변화 없는 생활의 반복 매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길을 걷고, 같은 방송을 시청하다 잠자리에 든다. 하루가 어..
설명할 수 없는 지식은 아직 내 것이 아니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들을 때는 다 이해한 것 같다. 고개도 끄덕인다. 그러나 막상 누군가에게 설명하려 하면 말이 막힌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알아들은 것뿐이었다. 지식이 자기 것이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남에게 설명해보는 것이다. 어려운 말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처음 듣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자기 말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설명하다 막히는 곳이 바로 내가 아직 제대로 모르는 곳이다. 특히 좋은 방법이 글쓰기다.말은 얼버무리고 지나갈 수 있지만 글은 그렇지 않다. 한 문장을 쓰려면 생각의 앞뒤를 맞춰야 하고, 모호한 부분은 다시 확인해야 한다. 머릿속에서 뒤엉켜 있던 생각도 글로 옮기는 순간 무엇이..
행복총량의 법칙 사람들은 흔히 행복을 크기로 잰다.큰돈을 벌고, 성공하고, 바라던 것을 손에 넣으면 삶도 그만큼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큰 기쁨은 불꽃과 닮았다. 눈부시지만 오래 머물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행복의 강도보다 행복한 시간의 총량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하루 한 번 크게 웃는 것보다 하루 대부분 마음이 편한 것이 낫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몸이 가볍고, 밥이 맛있고, 혼자 있어도 허전하지 않은 하루. 그런 날들이 쌓여 한 사람의 삶을 만든다. 수련을 오래 하면서 이 생각은 더욱 분명해졌다.수련은 사람을 들뜨게 하기보다 가라앉힌다. 단전에 마음을 두고 있으면 쓸데없는 긴장이 풀리고 마음의 출렁임도 잦아든다. 무엇을 얻은 것도 아닌데 몸이 편하고 마음이 조용하다.젊을 때는 큰 기쁨을 찾..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나는 한때 내가 체험한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련을 하면 몸에 분명한 변화가 나타났다.열이 생기고 피로가 풀렸으며 정신이 맑아졌다. 의식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몸의 상태가 달라지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쉽게 믿지 않았다. “느낌일 뿐 아닌가.”“착각일 수도 있지 않은가.”“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그래서 증명해보았다.방송에도 여러 차례 나갔다.의사들이 입회했고 각종 기기를 몸에 붙였다. 뇌파를 재고 체온의 변화를 살피며 수련 전후의 차이를 기록했다. 내가 몸으로 느끼던 변화가 기계에도 그대로 나타났다.그때는 그것이면 충분할 줄 알았다.기계가 확인하면 논쟁도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방송..
샤카족 강화도 정착설 ‘샤카족 강화도 정착설’을 역사적 사실로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현재 확인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료를 따라가 보면 몇 단계에서 큰 비약이 나타납니다. 신문자료·불교계 자료·학술자료를 여러 방식으로 검색해 보았지만, 그가 언제 어떤 문헌을 근거로 “샤카족이 강화도에 왔다”고 주장했는지는 온라인 자료에서는 찾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그 주장 자체의 출처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주장에 포함된 요소들을 따로 검증하면 판단은 꽤 분명해집니다. 1. 샤카족이 전쟁을 당했다 — 근거가 있습니다 불교 문헌에는 코살라의 비두다바(Viḍūḍabha, 비유리왕)가 샤카족을 공격했다는 전승이 여러 계통으로 남아 있습니다. 프랑스의 불교학자 앙드레 바로(André Bareau)가 여러 초기..
태극권은 신선들의 행공, 靜動一如(동정일여) 민재의 제자 영호는 정좌를 좋아했다.새벽이면 방석 위에 앉아 허리를 세우고 두 손을 아랫배에 포갰다. 호흡을 고르고 의식을 단전에 두었다.그는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영호가 물었다.“선생님, 단전을 깨우려면 조용히 앉아서 의수단전만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굳이 태극권까지 해야 합니까?” 민재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그러더니 마당으로 나가며 말했다. “따라와.” 영호가 따라 나갔다.민재는 양발을 어깨 너비로 벌리고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 “태극권을 단순한 무술이라고 생각하느냐?” “원래 무술 아닙니까?” “지금은 그렇게 알려져 있지.” 민재는 천천히 두 팔을 들어 올렸다.“하지만 내가 보는 태극권의 뿌리는 그보다 깊다. 도가와 신선가에서는 오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