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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우리는 알아차리면서 삽니다. "색깔이 참 곱기도 하구나!" "어디서 이런 신비한 소리가 날까?" "이 냄새가 무슨 냄새지?" "바로 이 맛이야!" "뺨에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 " "아하! 이런 의미였구나!" 너무나 당연한 우리의 알아차림(일상사)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만입니다. 남김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선도(仙道)를 하는 사람은 무엇을 알아차릴까요? 그들은 단전(丹田)을 알아차립니다.단전의 기운(氣運)을 알아차립니다.기운이 모이는 것을 알아차립니다.기운이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립니다.그리고 기운을 내가 모으고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것을 통해 선도인(仙道人)은 신선(神仙) 세계로 들어갑니다. 그 프로세스가 연정화기(鍊精化氣), 연기화신(鍊氣化神)입니다.

일본인은 사람이 죽으면 신(神)이 된다고 한다.그것은 중국도, 한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떤 神이 될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신 중에는 작용하는 神이 있고, 있는 듯 없는 듯 작용하지 못하는 神도 있다.신이라고 다 神이 아니고, 에너지를 바로 작용하는 신이라야 진짜 神이라 부를 수 있다. 죽고 나서 神이 되는 것이 아니다.살아서 신이 되어야 진짜 神이다.그런 존재를 신선(神仙)이라 한다. 우리는 에너지(氣)로 산다.에너지는 어디서 얻어 오는 것이 아니고,인간 자체가 에너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그것은 조금만 관찰하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기운 공부다.우리는 기운으로 살고, 기운으로 죽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에너지(氣)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여생이 얼마 남지 않..

컴퓨터가 버벅댈 때 껐다가 켜면 웬만한 문제는 해결된다.우리에게 잠이 필요한 것은 그래서이다.오는 잠을 억지로 참으며 공부하지 말라. 최고의 컨티션이어야 최고의 공부가 가능해진다.배고플 때 참으면 배가 안 고파지듯이 잠 역시 참으면 잠이 달아난다.그럴 때 사용되는 에너지는 비상 에너지이다. 비상 에너지는 따로 쓸 때가 있다. 신선(神仙) 되는 공부에 꼭 필요하다.함부로 낭비하지 말라.무슨 일이든 자연스러움이 으뜸이다.그것이 깨달음 공부이든, 소주천 공부이든...

내세(來世)란, 죽은 후 다시 태어나 맞이하는 세상을 말합니다.정통선도(正統仙道)는 내세나 윤회(輪廻), 그리고 환생(還生)을 가르치지 않습니다.죽음이란 다시 오지 못할 길을 가는 것, 우리의 세 가지, 몸과 정신 그리고 에너지(氣)가 흩어져 적멸(寂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더 이상은 번뇌와 망상이 없는 걸림 없는 상태를 '열반'이라 하고, '죽음'과 동의어로 씁니다.스스로의 수련으로 죽음을 이기는 가르침이 있는데, 그것이 선도(仙道)입니다.바른 선도법는 정신과 에너지를 계합시키는 것에 공(功)을 들입니다.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이 '양신(養神) 공부'입니다.받아들이고 아니고는 당신의 자유입니다.몸을 내려놓고, 정신과 에너지로 살아가는 존재를 신선(神仙)이라 합니다.

붓다는 자기를 깨우친 사람이고,신선(神仙)은 생사(生死)를 넘어선 사람이다.붓다는 자기 없음(無我)을 알아챈 사람이고,신선은 자기의 한계를 넓힌 사람이다.붓다에게는 세상 삶의 일체가 고통(一切皆苦)이고, 신선에겐 고(苦)와 낙(樂)이 하나로 다가온다.모든 것은 자기 선택에 달려있다. 어떤 인연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붓다도 되고, 신선도 되어지는 것이다.

'무아(無我)'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나'에 대하여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 순서다. 자기를 아는 사람을 가리켜 지성인(知性人)이라 한다. '나'는 정기신(精氣神), 즉 육체와 에너지(氣) 그리고 정신(의식)으로 구성된 종합체이며, 쉼 없이 변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어제의 나는 내가 아니며, 오늘의 나도, 내일의 나도 나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없다. 무상(無常)하기 때문이다. 나를 대표할 만한 것은 '의식(意識)'이다. 어떤 의식을 가졌느냐가 나의 가치이며, 그것이 우리가 공부해야 하고, 깨우침을 얻어야 할 이유다. 의식은 공부량에 따라 진보하며 영원한 존재다. 그것은 육체가 흩어져도 에너지가 끊겨도 없어지지 않는다. 살아서 몸과 에너지를 어떻게 관리했느냐에 따라 사후의 나는 다른 존재가 되..

우리는 그 사람의 인격을 그릇으로 비유합니다. '저 사람은 그릇이 커', '소인배야'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그릇의 크기가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크기는 자기가 키우는 만큼 커집니다. 마음과 얼마나 친했느냐에 따라 감정적이지 않고 여유 있는 모습이 됩니다. 그릇이 큰 사람에 대해 사전은 '어떤 일을 해 나갈 만한 능력이나 도량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릇의 크기는 일단 마음의 크기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누구 마음이나 우주(宇宙)와 같습니다. 자기 마음을 얼마나 자주 들여다보았느냐에 따라 마음의 크기는 달라집니다. 그릇이 큰 사람은 베푸는 마음이 남다릅니다. 딱 베푸는 만큼 돌아온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성공과 실패, 이익과 손해를 크게 따지지 않습니다. 실패에서 배..

진정으로 수행(修行)을 성공시키려면 'My way'여야 한다. 남의 눈이 두려운 사람,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는 사람은 필패(必敗)한다. 그것은 깨달음을 이나 소주천(小周天)을 위해서나 마찬가지다.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들은 나를 걱정하는 척하지만, 그들 역시 관심은 그들 자신에게만 있다. 자기를 Open할 수 있는 사람만 깨닫는다. "와서 보라. 나는 무엇도 숨기지 않는다." 깨달음의 대표 격인 싯다르타의 말이다. 우리는 제도에 묶여 살고 있다. 교육은 힘 있는 자들이 사람들을 자기 부리기 위해 하는 것이다. 과감히 그것들로부터 자유(自由)를 선언하지 않는 한, 무엇도 될 수 없다. 신선(神仙)이란 말처럼 자유로움을 잘 표현한 말도 없다. 내가 옳다고 한다면 그 길을 가라. 좌고..

귀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죽은 신(神)은 작용력이 없어, 젯상을 차려내도 먹지 못하고 단지 향음(鄕飮)만 할 뿐이다. 엔진과 밧데리가 없는 것을 자동차라 하기 어렵듯이, 사람(精氣神)이 죽어 정(精)과 기(氣)를 잃으면 사람이라 하지 않고 귀신(神)이라 한다. 하지만 무시해도 상관은 없는 존재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선도(仙道) 수행은 비록 몸과 숨을 잃게 되더라도 神이 氣를 잃지 않아 작용력이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함이다. 믿든지 말든지, 그런 존재를 가리켜 신선(神仙)이라 한다.

사람은 정기신(精氣神), 즉 몸(精)과 에너지(氣) 그리고 영적(靈的) 기능의 합체이다. 몸과 정신이 있어도 기(氣)가 작용하지 못하면 죽은 것과 다름이 없다. 의학에서는 그것을 뇌사(腦死) 상태라 한다. 기(氣)가 분리되어 정신이 몸에서 벗어나면, 曰 귀신이 되는데, 무시해도 좋은 것이 에너지가 끊기면 작용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귀신은 후회 속에서 다시 사람이 되기를 갈망한다. 귀신이 산 사람에 입혀진 것을 빙의(憑依)라고 하는데, 귀신이 모두 빙의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늘 건강 관리에 힘써야 한다. 몸이 허약하고 멘탈이 약해지면 재수 없이 귀신의 침범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은 버렸어도 에너지를 장악한 존재를 신선(神仙)이라 부른다. 시공(時空)을 초월한 작용력을 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