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깨어있음 (19)
谷神不死
"나는 없다"는 생각을 주입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다.그들은 깨어있다는 것이 '내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말한다.하지만 속지 말라.그들이 어떤 권위로 말한다 할지라도 말이다.생각이 나인가?내가 없다면 누가 알아차린단 말인가?길을 걷다보면 수많은 사람을 지나친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얼굴 모두를 기억하지는 못한다.그 이유가 내가 없어서였을까?그렇다면 지금 외출에서 돌아 왔다는 것은 누가 아는가?깨어있다는 것은 보고 듣고 느끼는 이 신비한 존재가 있고 기능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며 산다는 것이다.두려워 말라.당신이 지지했던 지도자가 실각한다고 나도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KOREA에 새 페이지가 열리고 있다.대문이 닫히면 창문이 열린다.창문 밖 풍경을 감상하는 나와 함께 말이다.
선도(仙道)를 가르치는 선생은 소주천을 목표로 지도해야 한다.소주천(小周天)을 신비주의가 아니며, 판타지도 아니다.소주천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실질적 기능이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소주천을 모르거나 백안시한다면 그 사람은 선도 선생으로서 자격이 없다. 소주천은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을 통관시키는 선도의 보물이다. 임맥은 오장(五臟: 간, 심, 비, 폐, 신)의 기운을 담당하고, 독맥은 육부(六腑: 담, 소장, 위, 대장, 방광, 삼초)의 기운을 담당하고 있다. 소주천은 각 장기(臟器)의 기 부족 해결과 함께 이상 항진을 조절함으로 누구라도 건강한 천수(天壽)를 누리게 해준다. 마음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 또한 확실하다. 첫째, 늘 안정된 마음 상태(깨어있음)를 유지하게 해준다. 둘째..
"항상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하지만 사람들은 그 간단한 것을 모르기에, 불교는 법인(法印)의 첫째 자리에 제행무상( 諸行無常), 즉 '항상하는 것은 없다'를 자리 잡게 했다.우리의 삶에 '절제(節制)'가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지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過猶不及)"는 가르침이 있다. 세상에 지나쳐서 좋은 일은 없다.그것은 돈이나 권세, 명예에도 적용된다."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라"는 말은 신선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선도(仙道)의 가르침이다.사람들은 배고플 때 먹지 않는다. 심심해서 먹고, 시간 맞춰 먹는다.맛을 즐기고, 욕구불만 해소의 용도로 과음, 과식을 하고, 그 결과는 비만으로 나타난다.잠도 마찬가지다.나무 많이 자도, 너무 적게 자도 좋지 않다.졸릴 때만..
‘나’ 즉 자아(自我)라는 것이 실재하느냐는 질문에 시타르타는 무기(無記)를 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아는 없느냐는 질문에도 역시 무기했다고 불경(佛經)은 전한다. 참고적으로 ‘무기’란 가부(可否)를 말하지 않고 침묵했다는 뜻이다. 좀 의아하겠지만 선문(禪門)에서는 있다고 해도 30방(榜), 없다고 해도 30방(榜)을 주었었다. 나는 에고(自我)의 실재(實在)를 주장한다.그리고 주장하는 그것 자체가 ‘에고’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에고가 실재하지 않았을 수 있고 미래에 에고가 실재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에고는 엄연(儼然)하다. 에고를 죽여서는 안된다는 글을 보면 발끈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자아가 없는지 왜 자아를 죽여야 하는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고 말이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
어설프게 마음공부를 한 사람의 병폐는 무엇이나 두루뭉술하게 생각하려 하고, 그렇게 말하려는 경향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른 식견(正見)이 아니며, 깨어있음 역시 아닙니다. 그것을 무기공(無記空)에 빠졌다고 합니다. 見性을 했다고 '술에 술 타고, 물에 물 타는 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역시 둥근 것은 둥글고, 세모난 것은 세모나며, 부처는 부처고, 중생은 중생입니다. 분별심이 없어졌다는 것은 쓸데없는 머리를 굴리지 말라는 것이지, 대강 얼버무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더러는 면도날보다 더 날카롭고, 청양고추보다 더 매울 수 있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역시 하늘은 하늘이고, 땅은 땅이지만, 그것에만 집착하지 않고 사는 것, 그것이 깨달음의 속성입니다.
자신의 신분(身分)을 규정(規定)하려 하지 말라. 당신의 출신 성분이나 교육 정도, 재력과 관계 없이,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인간의 차원에서 말이다. 당신의 의식이 정하는 대로 당신의 신분은 정해진다. 당신은 자신이 어떤 어떤 사람이라고 스스로 규정하고, 그것에 맞도록 생각하고 행동한다. 당장 벗어나야 한다. 그리하는 것은 당신의 가능성을 막아 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느 유형도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스스로를 규정한 만큼, 그런 인생이 된다. 당신이 성스러운 사람(브라만)이 될지, 권력 지향(크샤트리아), 상인(바이샤), 하층 노동자(수드라)가 될지는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려있다. 심지어 불가촉천민이 될지도....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 현재 당신이 얼마나 깨어있느냐에 따라 당신은 새롭게 태어..
잠을 자고 있으면, 누가 밖에서 들어오거나 누가 밖으로 나가도 모른다. 선물을 가져와도, 도둑이 들어와도, 모를 뿐이다. 깨어있음이란 자각(自覺), 즉 "자기 本性을 알아채고 있음"이다. "깨어있음"이라는 말만 제대로 이해하면 공부는 거의 된 것이나 다름없다. 육창원(六窓猿)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창문 여섯 개는 안의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여섯의 감각기관이며, 원숭이는 정보를 총괄하는 성품(性品)이다. 깨어남은 애씀이나 고행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얼마나 자기를 내려놓을 수 있느냐에서 성패가 갈린다. 상근기(上根器)는 단지 스승의 말 한마디 "直指人心"만으로 담박 깨어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의 인연 따라 호흡법, 지관법(止觀法), 간화선(看話禪), 주력(呪力), 기도, 단전(丹田)호흡 등 ..
잔치를 열어 손님들을 초대했는데 오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자, 주인은 "길에 나가 거지든 부랑자든 데려오라.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이리라"라고 했다지요. 성경(聖經; the Holy Bible)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성의껏 글을 써 보냈는데, 이왕이면 몇 줄 댓글을 남기는 것도 좋으련만.. 여러날째 읽은 기색조차 하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유야 많겠지만 이제 그런 분들은 명단에서 삭제하려 합니다. 제가 혹시 그분들께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양지하시고 부디 건승하십시오.
즐거운 일이 있을 때, 그것에서 벗어나려 하는 사람은 없다. 심각한 건강 문제나 실연(失戀), 불합격, 사업의 실패 등, 힘든 일이 닥쳤을 때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그때가 깨달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다. 그때 자기에게, "지금 괴로움을 겪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고 질문해 보라. 그 괴로움을 묵묵히 떨어져 바라볼 수 있다면, 견성(見性)에 벌써 다가선 것이다. 바라보고 있는 나와 괴로움 당하는 그것이 별개라고 느껴진다면, 한 발 더 가까이 간 것이다. 즐거움과 괴로움이 단지 흘러 지나가는 바람이라 느껴진다면 공부는 마무리 단계다. 오직 "깨어있음"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우리는 생각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 일상생활 모두를 생각이 주도합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알고, 느끼는 오감(五感)은 바로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거의 습관적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 합니다. 그러나 생각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즉시 분별하여 행동의 지표가 되게 하는 생각과, 단지 '그렇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분별 작업은 입력(入力)된 Database에 근거하여 진행됩니다. 그리고 분류가 완료되었을 때, 비로소 안심합니다. 수많은 위험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유위(有爲)라 하며, 그것이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그것의 뒤에는 항상 "나"라는 것(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내려놓은 생각입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