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수행 (21)
谷神不死

연애할 때 구애하는 쪽이 먼저 상대를 끌고 가려 하기 마련이고,얼마를 그리하다 보면 상대가 나를 끌고 가게 된다. 그리고 관심이 부족(에너지가 딸린다)하다 싶을 때만 살짝 성의를 보내면 된다.그것이 연애의 테크닉이다. 헤어지는 이유는 관심이 다했을 때이다.어느 쪽이든 관심이 다했음을 알아채면 슬슬 관계 청산을 생각해야 한다.질질 끌려가는 연애는 바람직하지 않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다.관심이 다했는데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불행한 일이다.어서 다른 상대를 만나 팔자를 고치는 것이 좋다. 수행도 마찬가지다.처음엔 스승이 끌고 가게 마련이다.얼마를 그리하다 보면 제자의 열정에 스승은 따라가게 된다. 그것이 정상적인 사제(師弟) 관계다.그리고 추진력이 부족하다 싶을 때만 스승은 살짝살짝 힘을 ..

사람은 누구나 게을러지고 싶다.아니, 원래 게으르다. 그들을 부지런하게 만들려면 큰 이익을 보장해야 한다. 수행도 마찬가지다.단지 보여주기 위한 수행이라면, 그 수행은 오래가지 못한다. 수행에서 행복이 피어나야 한다.사람은 이익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동기부여는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다.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주지 못하면 효과적이지 못하다. 동기부여에 효과적인 것은 보는 것이다.미래를 보는 사람만이 성공한다.그것이 에너지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는 몸을 다스리고, 지혜로운 자는 마음을 다스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견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마음이 없이 어찌 몸을 다스릴 수 있으며, 몸을 다스리지 않으면서 어찌 몸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말로만 집을 지으려 하는 사람은 곁에서 물리치시고, 우선 쉬운 쪽부터 시작하십시오. 몸 다스리기가 편한 사람은 몸부터 바로 잡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용이한 사람은 자기 마음부터 항복 받으십시오. 몸이 바로 잡히려면 마음이 따라주지 않고는 안 되고, 마음을 좌지우지하려면 몸부터 다스려져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둘로 나누어서, 몸은 어리석고, 마음 운운해야 지혜롭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십시오. 귀신은 道 닦기가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귀신은 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몸을 가지고 있을 때, 따지지 말..

세상엔 세 부류의 사람이 산다. 상사는 도(道)를 들으면 힘써 행하고, 중사는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하고, 하사는 도를 들으면 비웃는다. 반신반의하거나 비웃음이 없는 도는 도가 아니다. 노자(老子)의 말이다. 1. 돈과 권력, 명예를 좇으며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세상 사람의 99%를 차지하는 평범한 사람, 이른바 하사(下士)다. 2. 무상( 無常)함을 깨우쳐 삶의 일체가 고통임을 알아채 세상과 유리된 삶을 사는 수행자를 자처하는 사람. 무아(無我)까지 깨우쳐 윤회를 넘어 이번 생을 마치면 다시는 세상에 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염세적(厭世的)인 1%의 사람이 있다. 혹시 그런 사람이라면 중사(中士)다. 3. 희귀하기는 해도, 도(道)를 좇지 않고 거부하지도 않는 도와 합일한 사람, 1%에도 속할 수 없는..

살아있는 사람의 관심사는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이다. 별 관심 없이 사는 사람이 더 많지만 말이다. 그 둘이 모든 불안(不安)의 시작이다. 불안의 중심은 죽음이며, 그것이 고통을 부르는 제1원인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신앙이고, 다른 하나는 수행이다. 신앙처럼 편한 것은 없다. 그것이 신앙이 세상에 만연하는 이유다. 어렵게 따지지 말고, 그냥 믿어버리면 만사 오케이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盲信)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은 스스로 깨우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수행(修行)이라 한다. 세상에 종교라 불리는 많은 신앙이 있는데, 용도는 단지 불안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그것에 안주하면 임시적이지만 평안을 얻는다. 기독교는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

신앙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깨우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또한 그런 사람에게는 수행도 크게 필요 없다. 왜냐하면 신앙이란 이미 결정 난 사항이므로, 재론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에겐 오직 숭배 행위만 필요하다. 신앙에 대해 학문적 고찰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럴 때 신학이라는 것은 단지 신앙의 대변일 뿐이다. 하지만 수행자에게는 큰 신앙이 필요치 않다. 수행이란 자기를 닦아내 그 밑에 자리 잡은 진실을 밝히는 것이므로, 그에게 필요한 것은 신이나 부처에 대한 믿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수행을 이어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에너지만 있으면 된다. 철학과 인문학에만 몰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사유와 논리를 중요시하며 사는데, 만나보면 쓸데없는 이론에 너무 시간을 쓴다는 느낌을 받게 된..

수행이란 Attuement(조율; 調律)로 통한다. 수행에 앞서 건강한 몸과 여유로운 마음이 필요하다. 몸과 마음이 조율되면 병이 사라지고, 활기가 나게 되어 있다. 선도(仙道)의 핵심은 삼조(三調), 즉 조신(調身), 조식(調息), 조심(調心)이다. '조(調)'라는 말은 고르게 한다는 뜻이다 먼저 몸을 고르게(調身) 하여 막힌 氣를 흐르게 하여야 하며, 두 번째 숨을 고르고(調息), 세 번째 마음을 고른다(調心). 우리는 에너지(氣)의 도움으로 심신의 건강을 유지한다. 몸과 마음속의 氣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 우리는 운동하고, 기공(氣功)을 하고, 명상한다. 마음 하나만으로 건강해지기는 어렵다. 필히 운동과 명상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몸, 숨, 맘이 조화를 이루게 된다. 氣 치료사의 도움으로 마음과..

진정으로 수행(修行)을 성공시키려면 'My way'여야 한다. 남의 눈이 두려운 사람,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는 사람은 필패(必敗)한다. 그것은 깨달음을 이나 소주천(小周天)을 위해서나 마찬가지다.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들은 나를 걱정하는 척하지만, 그들 역시 관심은 그들 자신에게만 있다. 자기를 Open할 수 있는 사람만 깨닫는다. "와서 보라. 나는 무엇도 숨기지 않는다." 깨달음의 대표 격인 싯다르타의 말이다. 우리는 제도에 묶여 살고 있다. 교육은 힘 있는 자들이 사람들을 자기 부리기 위해 하는 것이다. 과감히 그것들로부터 자유(自由)를 선언하지 않는 한, 무엇도 될 수 없다. 신선(神仙)이란 말처럼 자유로움을 잘 표현한 말도 없다. 내가 옳다고 한다면 그 길을 가라. 좌고..

당신이 어떤 일을 택했다면 의미(意味)를 찾지 말고, 만들어 나가라.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원하는 것에 맞춰 의미는 만들어 나가라. 돈이 목적이라면 그것에 의미를 맞추어 보라. 단, 천박하지는 말아야 하고, 자기의 가치를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수행(修行)을 택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고상해 보이려 치장할 필요는 없다. 그것에서 의미를 발견했다면 그것으로 좋다. 억지로는 만들지 말라. 의미를 만들기가 어렵다면 당장 그만두고, 당신의 몸과 마음을 따라서 살아가라. 누가 어떤 눈으로 당신을 볼지라도 말이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길이다. 삶이 주는 궁극적인 의미는 없다. 그것은 당신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아무리 상대에게 유익한 이야기라 할지라도들어주기를 강요하지 말라.오히려 역효과를 볼 뿐이다. 청했을 때만 이야기를 해주고, 그 외엔 가급적 잠잠하라.그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다. 읽은 것이 많으면 당연히 말하고자 하는 충동이 온다.하지만 자제하라.속히 내뱉지 말고, 속으로 삭이라. 수행이란 침묵(沈默)과 깊은 연관이 있다.잡념들이 줄어들 때 비로소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드러나는 것이다. 운동도 한 번에 힘을 다하기보다는 단계적으로 해야하듯 말도 마찬가지다. 가고 또 가라.그것이 성통공완(成通功完)을 이르는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