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달과 손가락 (546)
谷神不死

깨달음도 무상(無常)한가? 그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무상하다 하였으니(諸行無常). 깨달음이야 일어난 바가 없으니, 무상하다 아니다 따질 수가 없겠지만, 분명히 말해 깨달음의 체험(體驗)은 무상(無常)하다. 깨달음의 체험은 없었던 데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거의 체험을 수반하며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착각을 한다. 그것은 마치 문을 열어준 하인의 옷차림이 그럴듯하여 그 사람을 주인으로 착각하는 것과 같다. 집착이 사라졌는지, 보이고 들리는 사물이 너무나 생생하여 정말 도인(道人)이 된 것 같았던 그 좋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인연들이 점점 약화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당황하고 실의(失意)에 빠진다. “아니, 깨달음도 무상한가?”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깨달음이 무상..

우리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것이라 한다. 마음이 없으면 그런 것인들 존재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이나 악, 천사나 악마, 신(神)이나 하느님, 외계의 지성(知性) 심지어 진리(眞理)나 깨달음까지도 그 크리에이터(Creator)는 인간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잊고 살지만, 우리의 초점(焦點)은 그 무엇도 아니고 인간에 맞추어 있어야 한다. 사람이 아니면 그 모든 것들의 의미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우리의 최선의 관심사는 그 무엇도 아닌 사람이며, 그중에서 누가 무어라 해도 “나”일 수밖에 없다. “나는 누구인가?”야 말로 우선 해결해야 할 최선의 과제이다. 세상 어디에 자기가 누군지를 모르고 사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사실은 다르다. 그 ‘나’를 찾으려고 가족..

깨어있기 위해 철야기도를 할 필요도, 용맹정진(勇猛精進)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작용(作用)을 일으키는가?" 하루에 세 번만 자기에게 위의 질문들을 하고 산다면 그것이 바로 깨어나게 하는 나팔수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잠자리에 들었을 때, 그리고 낮 동안 잠시 쉬는 시간에... 그리고 몸이 아프거나 삶이 답답할 때, 위의 질문을 하고 있다면, 깨어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그것들이 궁금해지면 눈이 열립니다. 그리고 조만간 확연하게 그 해답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깨달음의 메커니즘입니다.

마음공부를 한다는 사람들은 그것에 몰두 되어 몸이나 나머지 것에는 마음을 기울이지 못한다. 마음공부는 유행이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관심에서 사라진다. 과거 멀쩡한 사람들이 '라즈니쉬(Rajneesh)', '라즈니쉬' 하며 인도로 달려갔었는데, 지금은 '오쇼(Osho)'라고 이름을 바꾸었어도 시큰둥 한다. 식을 줄 모를 것 같던 실바 메소드(Silva method)는 그 일부를 시크릿(the Secret)이란 이름으로 편집해 세상을 쓸고 지나갔고, 인도 리시케시에 있던 마하리쉬 마헤시(Maharish Maheshi)의 초월 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 본부의 터는 잡초만 무성하다. 칭하이 무상사(Supreme Master Ching Hai)는 죽었다던 그의 스승 다카르 싱(Tha..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이다"라고 인생을 정의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 짐이라는 것을 정치적으로 풀려 했으며, 평생을 전쟁하며 지냈다. '무엇 하나 고통 아닌 것이 없다(一切皆苦)'는 가르침이 있다. 좋은 일도 결국이 고통이 되고 만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것은 그의 신앙 체계의 세 가지 기둥 가운데 하나다. 그들은 고통을 피해서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서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그렇다고 고통이 없어졌을까? 사람들은 그 고통의 원인과 해결에 대해 각기 다르게 생각한다. 서양이나 그 외 미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그 문제의 해결이 신(神)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고, 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즉 신앙으로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이 밝아진 지금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었다..

불도(佛道)에선 알아챌 네 가지를 사념처(四念處)라고 하며, 그것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청정도론(淸淨道論)을 보면 ‘까시나(kasina)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말은 산스크리트어 끄릇스나(krtsna)에 해당하는 빨리어(Pali)랍니다. 까시나는 흰색, 붉은색, 노란색, 푸른색, 그리고 흙의 까시나, 물의 까시나, 불의 까시나, 바람의 까시나, 광명의 까시나, 허공의 까시나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합니다. 전생(前生)에 주로 닦았던 수행 주제가 색깔이나 지, 수, 화, 풍에 관련된다고 하며, 수행은 먼저 지수화풍(地水火風) 등 물질을 대상으로 하여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선정(禪定)의 본래 목적은 "색계선정(色界禪定)"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랍니다. 그런 점에서 선도(仙道)는..

서울 지하철 2호선을 타면, 시청이나 서울대를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2호선을 타기만 했다고 그곳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풍경 저 풍경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혹시 초행이면 옆 사람에게 물어야 합니다. 아니면 몇 바퀴를 돌고 돌다가 열차는 정비창으로 들어가고 말 겁니다. “마차가 움직이지 않으면 말을 때려야지, 수레만을 때려서는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공부자에게 지관법(止觀法)보다 더 근본적인 수행법은 없습니다. 그것은 불도(佛道)의 수행이든, 선도(仙道)의 수행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위파사나(觀)” 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사마타(止)" 수행만으로는 깨닫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바라보기”, “알아채기”만으로 뜻을 이룰 수 있을까요? 세..

누구에게 영적(靈的)이나 육적(肉的)으로 도움을 줄 때, 당사자가 자연 그대로 자기 자신을 다스리거나 개선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넣어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 일에 대해 누가 호구지책(糊口之策)이라고 비난해도 할 말은 없다. 석가(釋迦)의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은 아무리 새겨들어도 부족한 가르침이다. 하지만 자등명(自燈明)이란 말은 속에 불길이 있을 때 쓸 수 있는 말이며, 불씨마저 없다면 말해봐야 상대의 복장(腹臟)만 지르고 말 헛수고다. 법등명(法燈明) 역시 그러하다. 본인 스스로 자기 가슴에 법(法)을 받아들일 준비가 없다면, 투정만 사고 물러설 수밖에 없는 허망(虛妄)한 일이다. 90% 이상의 사람에게는 불길이 없으며, 작은 불씨마저 살아있지 않으므로 전적으로 타인..

"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출애굽기 20:3)"라고 말한 그 신(神)은 하느님일까? 하느님은 오직 한 분뿐이라고 알고 있는데, 졸지에 하느님이 많아진 것일까? '하느님'과 '신'을 구별해서 말하면 답이 나온다. 결국 그 말(나 외에 다른 신들을...)을 한 신(神)은 하느님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어떤 신(神)들을 섬기든 말든,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신다. 그에게는 '나'라고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것들(공기, 물 등등...)을 묵묵히 공급하실 뿐, 찬양이나 섬김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으신 분이다. 그는 악마와 다투지도 않으시고, 누구를 시험하지도 않으신다. 그는 천당, 지옥, 그런 것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으시며, 그저 베풀기만 하시면서 존재하지 않..

"네가 공부를 많이 했다니, 한 가지만 물어보자. 혹시 네가 누군지는 알고 사느냐?"는 한 비구(嵩山)가 질문에, 하버드에서 종교철학을 전공하던 대학생(玄覺)은 눈앞이 깜깜해져 그를 따라 머리 깎고 중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수행자가 오랫동안 입산수도(入山修道)를 해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본 맥(脈)을 못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은 세수하다 코 만지기보다 쉽다는 선지식(善知識)의 말이 있지만 말입니다. 이해가 되는지요? 자기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이... "나는 누구인가?" 지금 질문하는 그놈이 "너"이고, 질문 받는 이놈이 "나"이지, 무엇 특별한 것이 존재할까요? 옛날 못된 권력자가 죄 없는 양민을 수탈할 때 써먹는 방법이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였습니다. 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