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和光同塵 (568)
谷神不死
마음이 부정적으로 기울게 되면, 세상에 내 편은 없는듯해 보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수련 같은 거 하지 마. 그냥 살던 대로 살아"라고 누가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 같다. 그럴 때, 생각은 그만두어야 할 이유로 가득 차게 된다. 시간이 없어, 마음의 여유도 없지, 너무 멀어, 기름값도 올랐고... 재미가 없잖아, 도반(道伴) 중 마음에 드는 놈(년)도 없고, 따로 특별 대우도 안 해주고, 스승이란 사람의 짜증 나는 잔소리(프라이버시 침해), 그리고 뚜렷한 효과도 크게 없는 것 같고.... 게다가 초심(初心)은 간 곳이 없고, 수련을 지속해야 할 이유도 모호해진다. 백 사람이 수련을 시작하면 한 사람 정도나 남을까? 결국 수련을 밥 먹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만 남게 된다. 하루 수련을 못 하면 목욕 안 ..
중병(重病)으로 회생(回生)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조용한 곳으로 물러가 곡기(穀氣)를 끊어 생(生)을 마감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가 진짜 '알아채기' 공부가 됩니다. 방해받지 않고 몸과 마음, 호흡의 변화를 확연히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곡기를 끊으면 온몸의 통증들이 사라지고, 불안과 공포가 없는 상태가 됩니다. 후천(後天)에서 얻은 기운이 선천(先天)의 기운으로 바뀝니다. 그때부터는 자성(自性) 자리가 더욱 빛나게 됩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그렇게 세상을 버리는데 보통 100일 정도가 걸립니다. 천천히 삶의 흔적들을 지우고 선계(仙界)로 옮겨가게 됩니다. 그때 거리낌이 없는 천국(극락)이 체험됩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마지막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즐거운 일이 있을 때, 그것에서 벗어나려 하는 사람은 없다. 심각한 건강 문제나 실연(失戀), 불합격, 사업의 실패 등, 힘든 일이 닥쳤을 때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그때가 깨달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다. 그때 자기에게, "지금 괴로움을 겪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고 질문해 보라. 그 괴로움을 묵묵히 떨어져 바라볼 수 있다면, 견성(見性)에 벌써 다가선 것이다. 바라보고 있는 나와 괴로움 당하는 그것이 별개라고 느껴진다면, 한 발 더 가까이 간 것이다. 즐거움과 괴로움이 단지 흘러 지나가는 바람이라 느껴진다면 공부는 마무리 단계다. 오직 "깨어있음"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깨닫는 일 외에는 세상에 할 일이 없으며, 깨닫고 나면 아무 할 일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칭 '깨달았다'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매일 태극권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몸과 마음을 떠나야 하는데, 그런 건 왜 하느냐?"고 시비를 걸어왔다. 나는 답했다. "그리 말하는 그대도 밥은 먹지 않는가? 이해될는지 몰라도, 나에게 태극권은 밥 먹는 일과 같다." 깨달음 흉내를 내느라 목욕도 안 하고 지내던 사람 몇을 나는 알고 있다. 옆에 가면 악취가 진동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저세상으로 떠났다. 깨달은 사람에게도 몸과 마음이 있다. 그러므로 먹어야 하고, 목욕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하고, 사랑도 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하느라 바빠서 깨달음에는 관심조차 없는 것이 문제는 문제지만 말이다.
길을 가면, 소도 보고, 말도 본다. 그렇지만 그것을 보는 '주체'는 변함이 없다. 수행을 하다보면 별의별 풍경(風景)을 다 만난다. 하지만 풍경은 풍경일 뿐이다. Samadhi에 들다 보면 시원해지기도 하고, 포근하기도 하고, 환희심이 일어나기도 하고, 눈앞에 빛이 나타나기도 하고, 신비한 소리도 들리는 듯, 온갖 것들이 난무한다. 요즘 남방불교의 스승을 자처하는 사람이 '니미따(Nimitta)'를 말하며, 그것이야말로 유일하게 선정(禪定)의 전조(前兆)라고 주장한단다. 그리 믿고 싶으면 그리 믿어도 좋다. 하지만... 견문각지(見聞覺知) 하나하나 중에 수행의 진전(進展)을 알리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으랴! 담박 깨어나라! 정작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그리고 감각되..
이루어도 이루어도, 가져도 또 가져도, 늘 허전함이 남는 사람, 늘 "이것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 사람, 노령(老齡)이나 지병(持病)으로 여생(餘生)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 자각(自覺)이 진정으로 절실한 사람... 그런 사람이 道에 입문하면 어렵지 않게 깨달음에 이를 것입니다. 무엇보다 깨우치는 공부에 심혈을 기울일 테니 말입니다. 반면에... 이 세상에서 더 얻을 것이 있고 지킬 것이 많은 사람, 배운 것이 많아 말과 글에 의미를 두는 사람,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절대적이라 믿는 사람, 지금 이렇게 사는 것 외에 별다른 것이 있나? 하는 사람에겐 견성(見性)이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 사람에게 깨달음이란 일 없는 사람들의 놀이처럼 보일 겁니다. 마치 구름 잡는 일처럼 실익(實益)이..
태어나는 순간, 생존 의식 외에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 오직 생존을 위해 더 유리한 것만을 구하도록 조정되어 있다. 생각과 행동 역시 그것에 의해 우선순위가 정해진다. 젖을 빠는 것으로 시작되어 그 일은 평생동안 지속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무엇이 지금의 나에게 더 유리한가에 기초하여 그에 준한 말과 행동들이 나오게 되어 있다. 신앙이란 것도 별것이 아니다. 신앙 행태를 보라. 겉으로는 사랑과 자비를 외칠지 몰라도, 그 뒤를 보면 이기주의와 반목, 폭력이 난무한다. 극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믿음이 다소 제 자리를 찾기도 하지만, 절대다수의 사람은 아직도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진리인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나는 무엇을 믿는가? 나는..
선도를 닦자면 우선 외단공(外丹功)을 수련하게 되는데, 그것이 에너지(氣)를 일어나게 한다. 氣는 보통 전기(電氣)와 자기(磁氣)로 감각되는데 그것을 기감(氣感)이라 하며, 그것은 전기장과 자기장의 실감(實感)이다. 氣는 생명력이므로 기가 일어나면 심신의 기능, 즉 생명력이 향상된다. 기가 일어난다는 것은 증폭되어 힘이 생기는 것을 말하며, 그것은 막힌 경락을 통하게 하고 충실하게 만들며, 세포를 재생시키며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선도의 행법에 외단공과 내단공이 있는 이유는 내단을 형성시키는 데 있어 외단공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남편이 밖에서 돈을 벌어와 가족을 부양하듯이, 외단공으로 기를 일으켜 내단에 전달해야 내단이 충실해진다. 기가 충실해지면 일단 손상된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시작하며..
仙道와 佛道는 공부하는 법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결론은 비슷한 가르침이 많지만 말입니다. 이 몸이 氣라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선도 공부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이 몸이 있고 氣가 있어야 하며, 그것을 아는 놈이 있어야 공부가 이루어집니다. 이른바 가랑비 공부법입니다. 불도는 하나를 강조합니다. 하나가 되고 나면 아무 할 말이 없어집니다. 말할 놈도 이미 사라져 버렸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소나기 공부법입니다. 선도는 단계적으로 공부를 지어가고, 불도는 눈 깜짝할 새 단번에 공부를 마치는 겁니다. 선도 공부법은 점법(漸法)입니다. 그러므로 성질 급한 사람은 선도를 닦을 수 없습니다. 이 몸을 닦아 이 몸이 氣라는 것을 우선 알아차리고(鍊精化氣), 두 번째, 氣를 닦아 그것이 神이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