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和光同塵 (568)
谷神不死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을 필요 없습니다. 스스로의 인정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바른 깨우침이 있고 나서야 가능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신분, 능력, 금력과 권력으로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일시적 만족에 그칩니다. 사람들이 전전긍긍하며 사는 것은 그런 것들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깨우친 사람은 영원한 안정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에겐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며, 아쉬운 것 역시 없습니다. 그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의 시작은 하나이며, 모든 것은 그 자리로부터 나오고, 결국은 그 자리로 합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의식(意識)이란 원래가 순수한 것이며, 그 순수성을 영(靈)으로 알아채는 것이 깨달음이다. 그래서 그것을 가리켜 공적영지(空寂靈知)라 한다. 의식은 순수하므로, 무엇과 만나더라도 그것과 하나가 되고, 곧 그것의 성질을 띄게 된다. 하지만 의식 하나만을 보면 그것처럼 순수한 것이 없다. 그런 차원에서 순수의식, 이 말은 정확한 표현이 못된다. 의식은 불생(不生), 불멸(不滅), 불구(不垢), 부정(不淨), 부증(不增), 불감(不減)하다. 선도(仙道) 수련이란 더 순수할 수 없는 의식과 무엇으로도 오염이 불가능한 에너지(氣)를 통합시켜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를 구성하는 3요소는 정기신(精氣神), 즉 물질적 차원의 이 몸과 호흡으로 연결되는 에너지, 그리고 의식이다. 선도가 무르익은 사람은 시간이 흘..
긍정적인 마음은 나보다 남을 향해 있다. 남이 좋아야 나도 좋다는 생각, 그것이 긍정적인 마음의 시작이다. 생각은 말과 행동을 만들고, 그것은 결과로 이어진다. 낙관적이 되자. 어떤 마음 태도를 유지하느냐에 따라, 나도, 세상도 변한다. 부정적으로 보면 세상은 한없이 부정적이 되지만, 마음 하나 바꾸면 세상을 밝게 살 수 있다. 어려운 세상이다. 불안한 정치 경제에, 전쟁과 자연재해의 위협까지 덮치는 세상이다. 하지만 나를 긍정적으로 만들자. 그것이 밖으로 퍼져나가게 하자. 늘 마음과 몸 관리를 소홀히 말고, 꿋꿋하게 살아가자. 마음먹기에 따라 누구나 극락에 살 수 있다.
배고프면 먹어야 한다. 피곤하면 쉬어야 한다. 졸리면 자야 한다. 부족하면 채워야 한다. 지저분하면 치워야 한다. 더러워지면 씻어야 한다. 명상이 필요하면 그 속에 잠겨야 한다. 배가 부르면 그만 먹어야 하고, 부족한 만큼만 채우고, 더러워졌을 때만 씻으면 된다. 그런 것은 중독이라 하지 않는다. 명상은 습관화할수록 좋다. 속세의 삶은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쫄리게 하고, 쓸데없는 것으로 심신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필요할 때 단전 명상(丹田冥想)을 한다. 일과 중 피곤할 때, 정리가 잘 안되어 뒤숭숭할 때,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딸릴 때, 단전 명상으로 심신을 회복시킨다. 3분도 좋고, 10분도 좋고, 그러다 깜박 잠이 들기도 한다. 명상 후엔 너무 개운해진다. 에너지가 샘솟는다. 새로워진 나를 ..
"슬픔은 나누면 작아지고,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이 있다. 나누어 주면 줄수록 커지는 것이 기쁨 말고 또 있다. 그것은 밝음, 곧 깨달음이다. 아무에게도 주지 않고, 창고 속에 숨겨놓으면 결국 썩고 만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밝아졌다면 그것을 나누어 주도록 노력하라. 그것을 아끼지 말라. 아끼다 보면 그것마저 반납하고 떠나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남에게 하나를 주면 당신에겐 두 개가 생긴다. 제자를 두고 난 후에 승급(昇級)하겠다는 회원이 있다. 너무나도 기특한 일이지만 혼자만의 생각이다. 일은 팀으로 이루어진다. 제자가 없는 승급은 승급이 아니다. 그것은 팀원이 없는 팀장과 같다. 깨어났다면 남들도 깨워야 한다. 아니면 결국 같이 잠들게 된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아무나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며, 나하고는 관계가 없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먼저 깨달은 자(善知識)들은 왜 그것을 "세수하다 코 만지기보다 쉽다"고 했겠는가?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금강경(金剛經)은 말한다. '약견제상비상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卽見如來)'라고 말이다. 그 말은 '만약 모든 상(相)이 상이 아님을 보면 즉시 깨닫는다'는 뜻이다. 혹자(或者)는 여기에서 '상(相)'은 오온(五蘊 : 色受想行識)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말은 쉬운 깨달음을 어렵게 만드니 피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말을 하니 깨달음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 말은 영어로 그냥 "Don’t Think, Just Look"라고 나는 해석한다. 한자어는 ..
수행자는 자신이 '나그네'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여행객처럼 산다. 그는 늘 자기 에너지(氣)를 확인하고, 소비한 만큼을 챙겨 넣는다. 애는 쓰지만, 넘치도록은 챙기지 않는다. 그가 떠날 때 필요한 것은 올 때 가지고 온 딱 그만큼이기 때문이다. 그는 여기서 얻은 것들(돈, 권력, 명예)은 떠날 때 모두 두고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욕심이 여행에 큰 장애(고통)가 된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기본 욕구(欲求) 외에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하지만 떠나기 전까지 그는 자기가 누군지 꼭 알아낸다. 그래야 저쪽 세상에서 자기 존재를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1 관심사는 자기 정체성이고, 두 번째는 에너지(氣) 보존이다. 그는 자연을 따르고, 무리하게 일하지 않는다. 가지려 한다면 ..
일어나는 생각을 없애려고 하지 마세요. 무엇이 생각을 일으키는가 살펴보세요. 그것을 회광반조(回光返照)라고 합니다. 생각을 없애려 하면 생각을 없애려는 그 생각이 나를 더 괴롭힙니다. 생각이 일어나든 말든, 그대로 두고, 생각이 어디서 일어나는가에 관심을 두면 생각이 힘을 잃습니다. 그것을 체험하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다른 세상을 살게 됩니다. 내가 나를 괴롭히지 않게 되면서 남도 자연스럽게 나를 괴롭히지 않게 됩니다. 그냥 날마다 좋은 날이 됩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사람다운 사람에게선 저절로 나오는 일이니 굳이 강조할 일이 아니고,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세상엔 필요악(必要惡)도 많으니 단적으로 말해선 안 되고, 사양지심(辭讓之心)은 손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요즘 세상엔 설득력이 없고, 시비지심(是非之心)은 토론(討論)이 논쟁(論爭)이 되는 세상에 강조할 일이 못 됩니다. 그 모두는 하나 같이 행동은 없고, 머리만 키우는 일입니다. 貴下의 의견은?
영화가 상영되고 있을 때, 화막(Screen)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영상을 따라 울고 웃을 뿐입니다.영사기가 멈추면 비로소 스크린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잠시 전에 비가 오고 화산도 폭발했지만, 스크린에는 흠집 하나 없습니다.순수의식을 체험하고 나면, 그것이 빈 스크린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싱겁기 짝이 없습니다하지만 그것이 나를 만들고, 세상을 만드는 본 자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빛을 비추면 화면에 온갖 것들이 나타나듯이 말입니다.우리들은 매일 그 소중한 것을 지나치고 삽니다. 의식하는 놈은 의식(意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심사가 온통 돈과 편안함에만 있으면, 은연중 자기가 서서히 지워져 가는 우울함이 있습니다. 온갖 복잡한 일들이 일어나는 일상사 가운데서 자기가 자성(自性)에 얼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