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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축기(蓄氣)가 된 사람은 기(氣) 치료를 할 수 있다. 막힌 氣를 터주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소주천(小周天)을 이룬 사람이라면 말할 나위도 없다. 병(病)이 생겼다는 것은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에너지(氣) 흐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약한 氣를 보완하고, 통하게만 하면, 병(病)은 낫는다. 생명의 구조가 그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氣 치료를 위해 꼭 손을 대야 할 필요는 없다. 氣는 전파처럼 파장(wave)이므로 마치 WiFi처럼 그 영역권에만 들어오면 작용(作用)한다. 하지만 환자와 가까이 있을수록 효과적이다. 그것은 환자의 믿음과 안정감 때문이다. 예수는 언제나 "믿음이 너를 고쳤다"라고 했으며, 치료자는 자기 확신의 힘으로 난치병을 고쳐낸다. 하지만 기(氣)의 압력(voltage)을..
"이발기수기발이승(理發氣隨氣發理乘)"이라 했습니다. 理(性)는 氣가 없이는 유명무실(有名無實)합니다. 이(理)는 기(氣)가 있어야 행세를 합니다. 氣에 무관심하면, 단지 관념(觀念) 놀이에 그치고 맙니다. 역사상 理가 단독으로 무슨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 뒤에서 있는 듯, 없는 듯, 氣가 도왔기에 행세를 한 것입니다. 언어(言語), 문자(文字)에 머문 깨우침(義理禪)이 아니라면, 깨달음과 동시에 강한 기감(氣感)을 동시 체험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제라도 氣 공부를 시작해야 합니다. 氣는 존재를 지키고, 깨달음을 지키는 수호신입니다.
선도는 단전(丹田)으로 시작해 단전으로 끝난다. 단전이 열리면 피부를 통해 기운을 거둬들일 수 있게 되고, 그 기운을 각 기맥(氣脈)에 보낼 수 있게 된다. 단전이 열리면 단전호흡을 통해 안정적인 선정(禪定)을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날마다 좋은 날이 된다.
우리는 생각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 일상생활 모두를 생각이 주도합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알고, 느끼는 오감(五感)은 바로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거의 습관적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 합니다. 그러나 생각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즉시 분별하여 행동의 지표가 되게 하는 생각과, 단지 '그렇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분별 작업은 입력(入力)된 Database에 근거하여 진행됩니다. 그리고 분류가 완료되었을 때, 비로소 안심합니다. 수많은 위험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유위(有爲)라 하며, 그것이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그것의 뒤에는 항상 "나"라는 것(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내려놓은 생각입니다. 그..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만 할 뿐, 불가능한 일은 모두 하늘에 맡기고 편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이다. 뻔히 불가능한 일을 놓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심지어 그것에 목숨까지 거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다. 천당이나 극락은 노력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므로, 내려놓고 생각을 비우면, 그곳이 바로 그곳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현자(賢者)'라 한다. 반면, 천당이나 극락은 자기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만 간다고,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을 '이단'이라 무시하고 핍박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이를 '신자(信者)'라 한다. 소유와 지위를 모두 내려놓고, 집착없이 살기 때문에, 항상 기쁘고 모든 것에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 가져야 하고, 더 높아야 하고, 자기만 옳아야 한다..
지혜자의 말을 꾸준히 듣다 보면, 마음속에 자리 잡아 나를 불편하게 했던 알 수 없는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후부터는 마음에 끄달림 없이 살게 됩니다. 그렇게 개운할 수 없고, 그보다 더 자유로울 수 없게 됩니다. 나에게 부담을 주고 나를 괴롭히던 온갖 것들이 없어지고, 그냥 자연스럽게,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게 됩니다. 똑같이 해 뜨고 저녁 오지만, 똑같이 사람들 만나고, 하던 일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구상하며 살지만, 더 이상 헛된 것에는 속지 않고 살게 됩니다. 무너져 내린 것은 허깨비 같은 생각들과 알음알이입니다. 그런 것들은 실재(實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상태를 가리켜 바른 견해의 회복, 견성(見性)이라 합니다.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면 누구에게나 당연히 있어야 할..
미신(迷信)이란, 글자 그대로 미혹(迷)하게 하는 믿음(信)입니다. 이치 없이 믿는 것은 모두가 미신입니다. 그런 것은 그냥 말로 흘려버릴 수 있어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관상불여심상(觀相不如心相)'이라 하였으며, 마음 다스림 용심(用心)이 최선이라 하였습니다. 사주, 관상, 성명학, 풍수는 단지 마음 작용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 밝은 사람은 그런 것들을 신봉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장소와 사람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것이므로 믿고 따를 것이 못 됩니다. 세세토록 변치 않는 진면목(眞面目), 자성(自性)을 찾아 지녀야 합니다. 믿을 것은 오직 실재(實在), 즉 현실(Reality)뿐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어려운 질문이 "왜 사느냐?"라고 한다. 자기가 "살아가는 제일의 가치"에 대한 물음일 텐데,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 밝히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혹자는 자기의 가치가 현 체제와 맞지 않아 그것을 말하면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여 꺼린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다면 그 사람은 분명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으로 분류해도 될 것이다. 가치관이 없이 남이 하는 대로 그냥 따라 사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자기 가치관이 뚜렷하지 못한 사람은 타인에 대한 이해도 빈약할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일수록 자기 의견은 내지 않고 그냥 비판 없이 남의 말을 따라 살게 마련이다. 깨어있는 삶이란 뚜렷한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다는 것이며, 그것에 기초한 가치 기준이 서 있다는 것이다.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소신 있는 삶...
"지금 여기"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것을 깨어있음이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지금 여기"를 놓치고 산다. 그 이유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온통 빨간색 가운데서 빨간색을 찾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 여기"라 했을 때, 지체하지 말고 바로 "지금 여기(Here & now)"로 들어서야 한다. 생각을 굴리면, 순간에 몇백 리 밖으로 물러난다. 빨간색을 찾으려 하지 말고, 빨간색 알아보는 놈 쪽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지금 여기"이다.
깨달음은 낭만(浪漫)이 아닙니다. 깨달음은 현실(現實)을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깨달음은 판타지(fantasy)가 아닙니다. 깨우침에서 초월적인 것, 환상적인 것을 찾지 마십시오. 깨달음은 시끌벅적한 난장(亂場)입니다. 깨달음은 꿈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서적이지도 않고, 이상적이지도 않습니다. 깨달음은 피가 철철 흐르는 전쟁 마당입니다. 깨달음은 추억이 아니고, 미래도 아니며, 현실 자체입니다. 죽은 이야기, 곰팡이 냄새나는 베껴온 이야기는 그만 하세요. 한 치만 벗어나도 딴 동네서 놀게 됩니다. 깨달음은 지금 여기에 살아 펄펄 뛰는 "이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