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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조현병'이란 2010년 3월 이전에는 '정신분열증'이라 했는데, '분열(分裂)'이란 단어가 부정적 의미가 크다는 이유로 대한의사협회에서 개명한 것이다. 조현(調絃)이란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뜻으로, 조현병은 현악기의 줄이 너무 느슨하거나 팽팽해져 원하는 소리를 낼 수 없는 상태에 빗대어 말한 것이다. 현대의학에서는 뇌(腦)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판단해 정신과적 약을 처방하지만, 사실 자기 마음을 알아채기만 하면 쉽게 해결되는 병이다. 마음은 내가 아니며, 우리에겐 우리 마음을 바라보는 '주시자(注視者)'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은 보통 때는 있는 듯, 없는 듯 하다가 마음을 가라앉히면 조용히 드러난다. 그 주시자가 우리 본래면목(本來面目)이며, 주시자가 활성화 되면 자기 마음을 자기가 조절할 수가 있..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은 깨달음만 있으면 만사가 형통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깨닫고 난 사람들도 조만간 다시 부족함이 생겨나는 것을 안다. 늘 말하지만, 이(理), 즉 성(性)은 기(氣)가 작용을 해줘야 제대로 행세가 가능하다. 불도(佛道)에 심취하여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성명(性命)에 대하여 이야기해 줘도 무아(無我), 연기(緣起)만을 반복하여 말할 뿐이다. 그들을 억지로 설득하려 들지 말라. 하지만 그가 일단 깨달음을 얻고 나서 그것이 무미건조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스스로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깨달았어도 여전히 삶이 녹록지 않고, 소화불량에 순환장애, 혈당 불균형이 지속되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배가 고프면, 우선 밥부터 먹어야 한다. 아무리 밥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외쳐봐야, 아무 ..
세상에서 가장 인정을 받고 싶은 사람은 아마도 배우자일 것이다. 상대의 방해에 못 이겨 중도에 수행을 포기하는 사람도 많으니 말이다 학대받고 살면서도 성인위(聖人位)에 오른 사람이 있고, 공자는 오히려 괴팍함으로 아내를 구박하며 살았다고 한다. 고행을 감수하지 않고 어찌 수행을 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집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 저항하지 말고 묵묵히 인내하는 것도 공부다. 쉽지는 않겠지만, 심적 압박들을 모으고 모아 에너지(氣) 폭발의 기회로 삼아라. 그것을 공부의 동기부여로 삼으라. 그리한다면 미혼으로 살았던 예수보다, 가출했던 석가보다, 더 큰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너무 힘들다면 졸혼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수행을 제일의 가치로 생각한다면 말이다.
배고프면 먹어야 한다. 피곤하면 쉬어야 한다. 졸리면 자야 한다. 부족하면 채워야 한다. 지저분하면 치워야 한다. 더러워지면 씻어야 한다. 명상이 필요하면 그 속에 잠겨야 한다. 배가 부르면 그만 먹어야 하고, 부족한 만큼만 채우고, 더러워졌을 때만 씻으면 된다. 그런 것은 중독이라 하지 않는다. 명상은 습관화할수록 좋다. 속세의 삶은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쫄리게 하고, 쓸데없는 것으로 심신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필요할 때 단전 명상(丹田冥想)을 한다. 일과 중 피곤할 때, 정리가 잘 안되어 뒤숭숭할 때,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딸릴 때, 단전 명상으로 심신을 회복시킨다. 3분도 좋고, 10분도 좋고, 그러다 깜박 잠이 들기도 한다. 명상 후엔 너무 개운해진다. 에너지가 샘솟는다. 새로워진 나를 ..
수행자는 자신이 '나그네'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여행객처럼 산다. 그는 늘 자기 에너지(氣)를 확인하고, 소비한 만큼을 챙겨 넣는다. 애는 쓰지만, 넘치도록은 챙기지 않는다. 그가 떠날 때 필요한 것은 올 때 가지고 온 딱 그만큼이기 때문이다. 그는 여기서 얻은 것들(돈, 권력, 명예)은 떠날 때 모두 두고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욕심이 여행에 큰 장애(고통)가 된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기본 욕구(欲求) 외에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하지만 떠나기 전까지 그는 자기가 누군지 꼭 알아낸다. 그래야 저쪽 세상에서 자기 존재를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1 관심사는 자기 정체성이고, 두 번째는 에너지(氣) 보존이다. 그는 자연을 따르고, 무리하게 일하지 않는다. 가지려 한다면 ..
2030년쯤엔 로봇(AI)에게 99%의 일자리를 뺏긴다는 주장이 있다. 거의 모든 일이 자동화로 이루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직업을 잃을 사람은 단순노동자와 사무직이지만, 의사와 법관도 예외는 아니다. 자본가와 소수의 운영자, 그리고 첨단기술자들을 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업을 잃게 된다. 그런 일들은 AI가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자리가 없어도 기초생활비는 지급될 것이지만, 거의 모두가 투명 인간처럼 살게 될 것이다. 자리를 지킬 사람은 GPT를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계로서는 불가능한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뿐이다. 학력이나 지적 능력은 거의 필요 없이 창의력만이 존중받을 것이다. 2022년 기준(OECD 발표) 한국의 대졸자 비율(2, 30대 청년층)은 69.3이다. ..
먹다가 남은 것, 쓰다 남은 것, 이미 개봉한 것을 선물로 보내서는 안 된다. 사람에 따라 그것을 모욕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과거에 하인들에게나 하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부처에서는 스승이 입던 옷이나 물건을 제자에게 주는 일이 많았고, 제자는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해 소중하게 간직하다가 다시 제자에게 물리곤 했다. 그것은 제자에게 그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이었다. 스승이 사용하던 물건에는 그의 에너지(氣)가 서려 있다. 상징적이지만 않다. 스승을 찾아 곁에 자주 앉도록 하는 것이 좋다. 공(功)을 지닌 스승 주위에는 기장(氣場: Energy Field)이 형성된다. 그러므로 그와 자주 만날수록 그의 에너지를 받게 된다.
오온(五蘊:色受想行識)을 '비었다(空)'고 합니다.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四大(地水火風)도 '空 하다' 합니다. 생겨남도 없으며(不生), 사라짐도 없고(不滅), 더러움도 깨끗함도(不垢不淨), 늘어남도 줄어듦(不增不減)도,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도 없고,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도 없으며, 의식(意識)도, 어리석음도, 어두움이 사라짐도 없습니다.(無無明亦無無明盡) 왜 날아갈 듯한 깨우침 체험이 얼마 안 가서 유명무실해지며, 왜 평생을 숲속 은둔처를 떠나지 못하고 살며, 왜 선가(禪家)의 새 地平을 열은 큰 스승이 유인(孺人)으로 生을 마치며, 왜 선종(禪宗)에서 조실(祖室)로 추앙받던 분이 정토종(淨土宗)으로 노선을 바꾸었는지 생각해 보셨나요?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하지 않은가요? 왜 그럴까요? 거기에..
스승의 가르침 가운데 뇌리에 남는 것은 '좌도(左道)에 빠지면 공부를 끝까지 할 수 없다'는 말씀이었다. 그런 말씀은 선도(仙道) 속에도 좌도(左道)와 우도(右道)가 공존한단 말씀이었고, 지나면서 보니, 우도보다는 오히려 좌도가 더 많이 눈에 띄었었다. 인간의 속성(俗性) 때문인가? 좌도는 힌두는 물론이거니와, 기독(基督)과 불교(佛敎) 그리고 그 외의 것 모두를 장악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 정도다. 사람은 심심한 걸 거의 좋아하지 않는다. 우도는 거의 싱겁고 밋밋한 반면, 좌도는 다이나믹한 재미를 주기 때문이 아닐까? 좌도와 우도에 대해 늘 찜찜하였는데, 이제서라도 자명(自明)한 한마디를 할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기쁘다. 좌도나 우도 역시 말과 생각에 속해 있음은 분명하나, 일단은 좌도와 우도의 구별부터..
조선시대 선비들의 다툼은 리(理)가 우선이냐, 기(氣)가 우선이냐 였다. 그러나 그것은 남자가 먼저냐, 여자가 먼저냐를 가지고 싸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남자 없이 여자는 없으며, 여자 없이 남자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氣가 理를 따르고 있든(理發氣隨), 理가 氣를 타고 있든(氣發理乘), 그것이 문제는 아니다. 둘 중 하나가 없으면 나머지 역시 없어지기 때문이다. 자각(自覺)을 이룰 때 사람들의 공통적 경험은 상당한 에너지(氣)의 체험이다. 그러나 관리(補任)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점점 희미해지는데, 그것이 氣와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는 것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상에 에너지 없이 작동되는 일은 없다. 깨우침을 얻었던 사람이 다시 우매해져 재관(財官)을 밝히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