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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알고 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행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늘 자기 마음의 경향과 습관들을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버려야 할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수행에 방해가 되는 습관들을 과감히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마음속엔 그것을 유지하고픈 핑계가 늘 자리 잡고 있다. 피해가 되는 일을 청산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에 당하며 살아야 한다는 자기만의 핑계가 있다. 우리가 정견(正見)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해야 할 일은 당장 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은 포기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열심히 수련해도 에너지 새어나가는 구멍을 막지 못한다면 헛수고가 될 것이다. 선도수행자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에너지의 보존이다. 에너지를 낭비하는 마음, 태도 그리고 습관들을 바로잡지 못하는 사람은 단지 수행하는 흉내만 낼 뿐..

나는 수행자들에게 글을 써보라고 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것이 글쓰기이고, 자기와의 진솔한 대화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말한 것을 지키려 하는 성향이 있으며, 글은 그것을 기정사실화 한다. 우리가 계약서를 만드는 이유는 말보다 훨씬 큰 힘을 가지는 것이 글이기 때문이다. 경전을 옮겨 적는 것을 사경(寫經)이라 한다. 그것은 읽는 것의 열 배, 백 배의 신뢰 효과가 있다. 하물며 자신의 내면세계를 글로 나타낸다는 것은 그것이 이미 이루어진 것과 같다. 글을 쓰자. 그리고 친구(도반)들과 서로 나누자. 그것보다 더 큰 보시는 세상에 드물다.

소주천 요결 1. 스승(소주천을 이룬)을 만나야 한다. 2.소주천(小周天)에 대한 이해와 열망 3. 단전(丹田)이 실해져야 한다. 4. 스승에 대한 절대적 신뢰 5. 스승과의 氣 공유 ● 책이나 영상물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도반(道伴)과 함께 라면 도움이 크다. ○ 확고부동한 이해와 변치 않는 열망 ● 외단공(外丹功)은 필수적이다. 세상에 에너지 없이 되는 일은 없다. ○ 자기를 내려놓아야 한다. 아니면 의념주천에 그치고 만다. ● 의심이 생기면 氣가 그친다. ○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한다. 氣가 쇄(衰)하면 어렵다. ● 소주천은 선도의 알파와 오메가, 꽃과 열매다.

우리는 무엇에라도 우리의 생각을 고정할 수 있다. 돈에, 권력에, 이성에게 그렇게 할 수 있다. 또한 호흡에, 그리고 화두(話頭)에, 만트라(Mantra)에 생각을 고정할 수 있다. 그리하면 비록 일시적이지만, 불안이 사라지고 평온함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내 몸에 흐르는 에너지에..., 그리고 조금 어렵지만 단전(丹田)에 마음을 보내어 보라. 그것은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창조하는 일이다. 허망함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길이다.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하자. 그럴 수 있는 힘을 기르자. 자신감이 있는 사람만이 솔직할 수 있다.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에게도 솔직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보는데 왜 남의 눈이 필요한가? 무엇이 두려운가? 자기 자신에게만이라도 솔직해지자. A를 A라고 말하고, B를 C라고 말하지 말자. 과감히 벗어나 보자. 배고프면 배고프다 하고, 졸리면 졸립다고 말하자. 주입받은 모든 것에서 벗어나자. 가식을 모두 벗어버리자. 세상의 생각은 세상의 생각이고, 순간순간 아닌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당신은 깨어난다. 그리되는 순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진짜 자기를 만나게 된다. 자유를 알게 된다.

움직임(동작)과 호흡을 연결해 보라. 호흡에 의식을 두어 보라. 에너지(氣) 흐름을 느낄 것이고, 점점 실(實)해지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선도(仙道)가 차별화되는 것은 그 중심에 에너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선도를 닦으면 에너지를 느끼게 되고, 운영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컨티션을 좋게 하고, 심신을 안정시킨다.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지 않다. 존재계 모두가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기 에너지를 다스리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 단순히 아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깨달음을 얻었다 할지라도 에너지 장악이 부족하면 아직 편안함을 얻었다 할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명예는 있어도 땟거리가 부족한 것과 같다. 그리되면 비록 존재는 깨우쳤다 할지라도 에너지를 주재(主宰)할 수 없어 삶에 닥치는 불편함은 여전하다. 性(理)과 命(氣)은 서로를 도와 존재를 완성하게 되어있다. 아무리 밝게 리(理)의 세계를 깨우쳤다 할지라도 기(氣)가 받쳐주지 못하면 스스로 밝을 수 없으며, 에너지가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理가 밝지 못하면 제힘을 발휘할 수 없다. 깨달음을 얻었으면 氣의 운영을 공부하는 것이 순서이며, 축기(蓄氣)와 운기(運氣)가 되었다면 반드시 밝은 깨우침이 수반되어야 한다. 성(性)과 명(命)은 균형을 잃으면 안 된다. 어느 한쪽이 기울면 나머지 한쪽마저 흔들리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때 행복하다. 그런 이유로 누구에게나 행복할 권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행복한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행복할 수 있으며, 그것을 찾는 능력은 호기심에서 나온다. 호기심은 창의성을 부르며, 그것은 우리를 에너제틱하게 살게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지루하지 않다. 그러므로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은 자기가 게으르다는 것을 알아채야 한다. 행복은 찾는 사람에게만 다가오는 것이며, 관심의 눈을 들고 보면 세상은 행복꺼리로 가득하다. 행복을 얻는 데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에 중독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에 빠지는 순간, 그것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게 되고,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된다. 자기를 잊고 살게 될 것이고, 그..

수행이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수행은 자기를 아는 것이며, 스스로의 권리를 챙기는 것이다. 수행자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일반인들과는 전혀 다른 생활패턴을 갖는다. 수행자는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돈과 권력을 첫 번째 관심사로 두지 않는다. 그들은 조작된 교리나 사상에 휩쓸리지 않아 혹세무민에 휘둘리지 않는다. 최고의 관심사는 자기 자신이므로 자기 정체성과 함께 불로장수가 주관심사이다. 장수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것이 삶의 의미이자 인간이 가진 특권이다. 에너지 활용이 꼭 필요함을 숙지하고 있으며, 깨어있음과 건강 지킴에 시간 쓰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현인(賢人)으로 추앙받던 솔로몬은 山 같은 금은보화와 하늘을 찌르는 권력, 그리고 천하의 미색(美色)으로도 그의 마음을 달래지 못했고, 결국은 그가 섬기던 神으로부터도 버림받았습니다. 그의 글(전도서 1:2)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로 시작합니다. 금강경(金剛經)의 달인(達人)을 자처하던 일본인 '에오(EO)'는 자살로 生을 마무리한 것 같습니다. 그는 그의 허망론(虛妄論)으로 불교인(僧侶)들을 포함한 수많은 철학자들을 승복시켰기 때문일까요?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라는 詩나 "괜히 왔다 간다"는 묘비를 남긴 그들은 과연 깨달았을까요? 그들의 말처럼 인생은 허망(虛妄)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에너지(氣)를 무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