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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죽음이란 정기신(精氣神), 즉 몸과 에너지 그리고 의식이 해체(解體)되는 것이다.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에너지는 흩어지고 만다. 그런 상태에선 당연히 번뇌(煩惱)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그것을 Nirvana(涅槃)라고도 한다. 죽은 후 남은 것은 인식(神)뿐이다. 그것이 나이며, 그것은 알파와 오메가이다. 엄밀히 말해 '나'란 것은 인식력이다. 인식은 창조력이며, '나'라는 존재의 핵이다. 하지만 그것(認識)만 가지고는 살아있다고 할 수가 없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에너지이다. 죽은 자에게는 에너지가 없다. 그것은 마치 Battery가 방전(放電)되어버린 자동차와 같다. 그것은 자동차이지만 자동차라고 할 수가 없다. 자동차로서의 기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에너지(氣)가 없다면 알아차림도..
기독교 맹신자들은 명상(冥想)을 반대한다. 잘못하면 빙의(憑依)가 된다고 그들은 믿는다. 그 말이 한편으론 맞는 말이기도 하다. 자기를 내려놓고 마음에 틈을 만드는 것이 명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에너지(氣)이다. 그러므로 명상과 기 수련은 함께 해야 한다. 그것을 성명쌍수(性命双修)라고 한다. 통기(通氣)가 잘 되고 氣가 넉넉하면 귀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氣가 알아서 방어막을 쳐주기 때문이다.
공력을 한 단계 승격시키려면, 스승이나 선배와 에너지의 동기화(同期化)가 필요하다. 동기화란 서로 에너지를 조율해 비슷한 수준이 되도록 보조를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삶을 바라보는 Code가 일치해야 한다. 스승의 말이 잘 납득이 되어야 하고, 절대적인 신뢰로 스승의 Energy Field(氣場)를 이용해야 한다. 상당 기간 정기적(定期的)인 기(氣)의 교류가 필요하다. 아무리 상대가 출중한 공력이 있다 할지라도 의심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시도는 무의미하다. 에너지 동기화는 물질적인 일이 아니며, 모두가 영적(靈的)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Power)이 있다. 그 말은, 원하기만 하면 가난이나 병마(病魔)에서 벗어날 힘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내면에 있는 힘을 믿지 않거나 사용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 힘은 없는 것과 같다. 그 힘은 '생각'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 하지만 '부정적 생각' 때문에 그 힘을 거부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애써 동호인, 에너지 수련을 하는 사람들과 정규적으로 만나라. 그들은 당신과 에너지를 나누는데 인색하지 않다. 에너지는 나눔으로써 더 많은 에너지가 얻어지기 때문이다. 병(病)은 마귀(魔鬼)와 같다. 그것 역시 당신의 생각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만이 마귀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다.
나에게 "너는 어찌하여 선도(仙道)를 선택하였는가?" 묻는다면 운명적이라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그것은 마치 이과(理科)의 사람에게, "당신은 어찌하여 골치 아픈 수학을 재미있어하는가?"라고 묻는 것과 같다. 수행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바로 자성(自性)을 깨우치려 시도하는 공부법이고, 다른 하나는 일단 에너지(氣) 공부를 통해 본래면목(本來面目)과 계합(契合)하는 공부다. 자아(自我) 탐구하는 법도 여러 가지가 있으며, 에너지(氣) 수련법도 그 갈래가 수없이 많아, 문파별로 자기들이 하는 수행법이 으뜸이라고 하지만, 문외한이 볼 때는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그렇다면 세상엔 왜 수많은 수행법이 있는가? 그것은 각기 다른 많은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Mantra..
잠을 자는 이유는 부족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충분히 잠을 잤는데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단 몇 분 깜박 잠을 잔 것 같은데 온몸의 피로가 풀리고 정신이 맑아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에너지의 효율화 때문입니다. 아무리 잠을 많이 잤어도 잠자는 내내 이것저것 별 소용이 없는 잡생각들이 끊기지 않았다면 에너지를 낭비했을 뿐 잠을 자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럴 땐 잠에 집착 말고 간단한 외단공(外丹功)과 단전(丹田) 주시를 배워 보세요. 잠보다 더 깊은 에너지 효과가 있습니다. 집중이 잘되지 않는 것은 에너지 충전이 필요하다는 신호입니다. 그럴 땐 만사를 제치고 에너지 보충을 해줘야 합니다. 이 세상은 에너지 덩어리이며, 존재 역시 에너지입니다.
몸과 마음은 에너지(氣)에 의존하여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에너지가 부족치 않도록 늘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에너지가 약해지면 심신(心身) 역시 쇠잔(衰殘)해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란 에너지가 끊어진 상태입니다. 에너지가 끊기면 심신의 모든 작용이 정지합니다. 뿐만 아니라 진여(眞如)도 사라질지 모릅니다. 그 것은 Battery가 Shutdown되면 모든 전자기기 작동이 정지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범죄하는 그 영혼(soul)이 죽으리라(에스겔 18:4)." 그들이 말하는 自性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단지 에너지에 의존해 존재했던 연기체(我相)이기 때문입니다. 선도(仙道)에서 원기(元氣)를 일깨우고 연단(鍊鍛)하는 이유는 진여(眞如)의 영존(永存)을 도모하기 위함입니다.
마음의 바닥을 보지 못하면, 부귀영화도 한낱 꿈에 불과하다. 마음이 주인인 듯싶어도, 마음은 주체(自性)가 없이 인연 따라 흐르는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모두라고 하지만, 그것이 꿈이고, 그림자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깨달음이다.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그것을 깨우쳤다 해도, 깨우친 자리에 대한 확연한 파악이 없어서는 갈증이 멎지 않는다. 그 깨우친 자리가 무엇의 도움을 얻어 꿈과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지에 무관심하다면, 평생을 닦아도 애물단지 하나 금고에 모셔놓은 것과 다를 바 없다. 긴 생각(長考) 끝에 헛수(緩着) 둔다는 말처럼, 가장 간단한 것을 놓치고 있다. 이기(理氣)는 일원(一元)이란 말을 헛되이 듣지 말라! 세상에 에너지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라도 있던가? 주위에 머물며 자기 존..
운동을 하지 않고 건강할 수는 없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러하다. 약간의 땀을 흘리는 운동을 하면 몸이 새롭게 태어난다. 세포들이 Refreshing 되기 때문이다. 다음은 스트레스다.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 아니면 정신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는 상당히 해소되지만, 그루터기까지 잡히지는 않는다. 마음을 알아채고,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에너지 흐름이 좋아야 한다. 그래야 온전한 건강 생활이 가능하다.
명상을 한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선정(禪定; Samadhi)에 드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선 집중(集中)이 필요한데, 그것은 "생각을 한곳에 모으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내려놓은 것"이다. 집중을 위해 한점이나 촛불 등에 생각을 모으는 방법을 쓰기도 하지만, 곧 한계를 느껴 그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에너지의 소모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몸을 지키기 위해 알아서 자동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명상한답시고, 먹지 않고, 자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극단적인 긴장의 시도들은 알고 보면 사실 그 반대 긴장을 풀기 위한 방편이다. 긴장이 풀린 상태가 되어야 진짜 집중(Attention)이다. 사실상 이완(Relaxation)보다 쉬운 것은 없다. 그냥 힘을 빼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렵다고 애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