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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첫째, 지성인(知性人)을 자처하면서 자기가 자기를 모른다는 것은 진짜로 말이 안 되는 일이고, 둘째, 깨달음이 있어야 다음 진도(進度)가 나간다. 아니면 짐승처럼 살다 짐승처럼 죽을 수밖에 없다. '므나의 비유'를 아십니까? 누가복음 19:13부터 나오는 - 어떤 귀인이 열 명의 신하에게 각각 은(銀) 한 므나(100 드라크마. 1 드라크마는 노동자의 하루 품삯)씩 나누어 장사하라 주고 여행에서 돌아와 보고하라 한 즉, 한 신하는 그것을 열 배로, 한 신하는 다섯 배로 늘렸다 하였으나, 한 신하는 그것이 소중하다 하여 감추어두고 곱게 보존만 하였더니 열 배와 다섯 배로 늘린 신하는 칭찬을 받았으나 그대로 보존한 신하는 심한 질책과 함께 그것마저 뺏겨 버렸다는 - 이야기. 우리에게는 너 나 할 것 없이 자..
문: 깨달음을 얻으면 運도 바뀝니까? 답: 바뀌는 것은 내면입니다. 깨달음은 불안한 마음, 쓸데없는 근심 걱정을 사라지게 합니다. 이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니란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타인과 불화하지 않고 공부나 사업에 능률이 붙게 되겠지요. 그렇지만 갑자기 없던 재물이 생기거나, 승진이나 사회적 지위의 변동이 생기는 것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소수는 큰 공부터(道場)를 열어 많은 사람을 일깨워 주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지만, 다수의 道人은 평생을 알아주는 사람 없이 빈한(貧寒)하게 살기도 합니다. 그냥 놓고 사는 것이 좋습니다. 運이란 타고난 것 70, 노력 30으로(運七技三) 시절인연(時節因緣)에 따라 흐르는 것이니 마음 쓰지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우선 깨달음부터 얻고 말..
성품(性品) 자리를 찾은 사람은 쉽게 氣를 이해하고, 힘들이지 않고 소주천(小周天)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역시 그 자리를 바탕으로 해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小周天을 이룬 사람 역시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견성(見性)과 小周天은 한통속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見性만으로는 반쪽 공부이고, 小周天만으로도 반쪽입니다. 성명(性命)이 동시에 발현되어야 비로소 불퇴전(不退轉)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생각이 없는 자리에 머물면서도 그것이 진리의 자리인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無知가 가장 큰 罪이다"라고 했습니다. 생각이 없는 자리를 알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의식적으로 생각을 일으켜 보는 것입니다. 생각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생각이 없는 자리에 머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계합(契合)했다고 합니다.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산상수훈(마태 5장)에 예수의 말이다. 이 말대로라면 예수 믿는 사람은 모두 장님(盲人)이 되어 있을 것이다. 오른쪽 눈만으로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슨 뜻인가? 누구들처럼 비겁하게 책임 미루기(꼬리 자르기) 하란 말인가? 그 말도 아니다. 오른 눈이 무슨 죄인가? 오른 눈은 아무 죄도 없다. "죄를 미워해야지 사람은 미워하면 안 된다." 정말로 웃기는 말 아닌가? 죄가 무슨 죄가 있는가? 사람이 죄가 있는 것이지. 혹시라도 눈이 죄를 지었다면 그 말은 그 눈의 주인이 죄를 지었다는 것이고, 최소한 마음이란 것이 죄를 조장한 것이라 봐야 한다 그 말의 진정한 뜻은 자기를 들여다보고 심보를 고쳐먹으라는 것이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
일식(日食)은 눈으로 먹고, 한식(韓食)은 혀로 먹고, 중식(中食)은 배로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일단은 눈으로, 다음은 맛을 보고, 이어서 배불리 먹어 피가 되고 살이 되게 합니다. 眞理는 일단 머리로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해가 없으면 그다음은 없습니다. 이해가 무르익으면 그것이 가슴에 자리 잡습니다. 진리에 대한 체험이 오기 시작합니다. 체험이 반복되면서 진리에 대한 이해가 배(丹田)에 고정됩니다. 불퇴전(不退轉), 즉 도달한 수행의 경지에서 물러서지 않는 단계입니다. 仙道 용어로 기우귀가(騎牛歸家),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몸이 자동차라면 마음은 운전사이다. 몸이 없이 마음은 없으며, 마음 없이 몸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뒷자리에 몸과 마음의 주인이 앉아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목적지를 정하는 것은 자동차도 아니고, 운전사도 아니다. 주인이 목적지를 바꾸면 운전사는 핸들을 틀어야 한다. 모든 책임은 주인에게 있다.
깨달음(見性)과 得命(小周天, 胎息)은 마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관계와 유사하다. 하드웨어가 진보하면 소프트웨어가 그 뒤를 따르고, 소프트웨어가 업그레이드(upgrade) 되면 하드웨어의 기능도 따라서 향상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을 선도(仙道)는 성명쌍수(性命雙修)라고 설명한다. 반면에 아무리 하드웨어가 발전해도 소프트웨어가 그에 못 미치면 아무 소용이 없고, 아무리 첨단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할지라도 하드웨어가 그에 맞춰 구동치 못하면 그것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깨우침을 얻었다 할지라도, 에너지를 못 얻으면 어떠한 이론도 탁상공론에 불과하고, 아무리 에너지(氣)를 자유자재로 운용하게 되었다 해도 본성(本性)에 무관심하다면 소소한 이름 남기는 것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그것이 우리..
믿음이 진리(眞理)인가? 그렇다면 믿음을 가진 사람들끼리 왜 싸우는가? 같은 조상을 가진 이슬람과 유대인들은 왜 서로 죽이는가? 같은 하느님(Yahweh)을 섬기는 기독교인들끼리는 왜 서로 이단이라고 헐뜯는가? 예수가 말하기를, '진리를 알면 자유와 사랑이 생긴다'고 했는데, 믿음은 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래도 나는 내 믿음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한다면 더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믿음을 지켰던 사람들의 결말이 어떠했는지 알고 있다. 아마 당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참혹하게 처형당했거나, 아니면 바람처럼 흙이 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믿음은 옷이나 자동차와 같다. 오늘은 이 옷, 내일은 저 옷을 입듯, 어제까지 무속인이었던 사람이 오늘은 개신교, 내일은 가톨릭, 그다음은 불교, 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