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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선도(仙道)가 불도(佛道)의 허망(虛妄)과 무아(無我)를 따르지 않는다 하여, 仙道는 생명(生命)만을 추구할 뿐, 깨달음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일부의 주장은 그릇된 것이다. 사람이 생명을 추구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人之常情)이며,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야말로 허망(虛妄)한 일이다. 생명과 깨달음은 둘이 아니어서, 생명의 추구가 곧 깨달음의 추구이다. 선도(仙道)의 행법은 현학적(衒學的)이지 않으며, 만인들이 쉽게 이해하고 따를 수 있을 만큼 간단하다. 仙道의 공부는 의수단전(意守丹田)으로 시작해 의수단전으로 마무리한다. 그것은 마치 불도(佛道)가 지관(止觀)을 하나로 엮은 것과 같다. 일체(一切)를 내려놓고 단전(丹田)에만 의식을 둘 때 수행자는 의존(依存)으로 비롯된 분별과 망상에서 벗..

선도(仙道)는 마라톤과 같다. 페이스를 유지하며 뛰어야 한다. 담박 깨치고 단번에 닦아 마치는, 그런 일(頓悟頓修)은 불도(佛道)에서나 일어나지, 선도엔 없다. 쉬이 더운 방이 쉬이 식는다는 말이 있다. 처음부터 무리하는 사람은 거의 중도에 탈락한다. 반환점(四仙)을 돌 때까지는 선두그룹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처음부터 앞서려 하지 말라. 꾸준히 달리면, 기다리면 앞서 나갈 기회는 저절로 온다. 스퍼트는 결승점 4km를 남겨놓고 하는 것이 좋다. 혼자 먼저 가겠다고 코스를 이탈하면 실격이다. 스승과 선배들의 응원을 받으며 한발 한발 전진하는 것이 신선 공부의 첫 덕목이다. 서둘러 상수(上手)가 되겠다고 처음부터 열을 올리는 사람치고 지금까지 선도연맹에 남아있는 사람은 없다. 50년을 뒤돌아보니, 결국 ..

소주천(小周天)은 전체를 아우르는 통기(通氣)의 절정이다. 소주천을 얻으면, 첫째, 그동안 들쭉날쭉하던 氣 운영 시스템이 정상화된다. 氣의 통제권을 얻으므로, 내가 원하는 곳에 氣를 자유롭게 보내고 받을 수 있게 된다. 둘째는 통일성(統一性), 즉 의식(神)과 氣의 계합이다. 그 결과로 신(神)과 氣가 하나로 뭉쳐 神이 움직이면 氣도 움직이고, 氣의 작용으로 神도 제자리를 찾는다. 셋째, 다른 차원의 '나'를 만난다. 우리는 제한된 '나' 속에서 살며 차원을 달리한 '실존(實存)은 없다(無我)'라 착각하며 산다. 소주천은 선계(仙界)에 회귀하는 지름길이다. 그것을 통해 모든 번뇌로부터 해방된 신성(神性)을 만난다. 그것은 우리에게 매임이 없는 대자유를 선사한다. 소주천은 정기신(精氣神) 덩어리인 인간만의..

소주천(小周天)은 우리 몸의 중심을 흐르는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을 통하게 하는 것이다. 그 두 맥(脈)이 활성화되면 정경(正經) 십이맥(十二脈)이 제 기능을 찾게 된다. 십이맥은 오장육부(五臟六腑)의 기(氣) 흐름을 주도하는 맥(脈)으로서 그것이 원활히 제 기능을 해야 건강하게 천수(天壽)를 누릴 수 있다. 선인(仙人)이 소주천을 닦을 때는 단순히 건강만을 목적으로는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통해 연기화신(鍊氣化神), 즉 기(氣)와 신(神)을 연결하는 목적을 갖는다. 우리는 우리의 내면에 하느님(神)을 숨기고 산다는 것을 모르고 산다. 연기화신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있다. 소주천을 이루면 일단 쓸데없는 근심, 걱정(煩惱)이 사라진다. 그리고 氣가 새어 나가는 것이 다하는 누진통(..

소주천(小周天)이 어려운 이유는 자각(自覺)이 어려운 이유와 거의 같다. 첫째,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소주천을 몰라도 여태 잘 살았다. 둘째, 집심(執心)에 정성을 쏟지 않는다. 관심사가 다른 곳에 있다. 셋째, 외단공(外丹功)에 정성을 쏟지 않는다. 아비 없이 어찌 아이를 낳는단 말인가? 외단공은 축기의 기본이다. 축기(蓄氣)가 안 되면 허당인 의념주천(意念周天)으로 흘러가고 만다. 넷째, 최소 6개월 정도는 마음을 흩트리지 말아야 성공한다.

수행(修行)은 밥 먹는 것처럼 매일 거르지 말고 하는 것이다. 짧은 시간이라도 규칙적일 때 공(功)이 쌓인다. 규칙적으로 식사(小食)를 하듯이 말이다. 기분 날 때 배불리 먹었다고 며칠을 굶어서는 위장병 걸리기 딱 맞다. 修行은 마치 곰국 끓이듯 해야 한다. 불을 넣었다 뺐다 해서는 안 된다. 丹田도 마찬가지다. 그런 식으론 살려내지 못한다.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운 것을 얼마나 자기 것으로 체화(體化)하느냐에 승패가 달렸다. 하다 안 하다, 들쭉날쭉 공부하면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느니, 토끼 뿔 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낫다. 말 한마디, 몸짓 하나만 보아도, 선생은 현재 당신 상태를 알아차린다. 태극결(太極訣) 수련은 스승과 사이클을 맞추는 수련이다. 시작을 했으면 좋은 결과가 있을 때까지 매일 10..

청기와와 청자를 굽는 기술이 사장(死藏)된 이유는 비록 자식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십 년을 따라다녀도 가치를 모르는, 단지 기술만을 탐하는 사람에겐 진수(眞髓)를 줄 수 없습니다. 태극13로, 적전태극권(藉田太極拳)이라 불리는 양가(楊家) 태극권이 있습니다. 그것을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은 현재 세계를 통틀어 100인이 안 될 것입니다. 이수자(履修者)들이 함부로 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태극용호공이라 불리는 소주천(小周天)과 연관된 공법(功法)이 있습니다. 그것은 김교일님이 민정암에게만 전수한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전수받을 때 허락 없이는 가르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에게 한두 명 일부를 전수받은 사람이 있다고 하지만 그들은 아마 투로를 잊었을 것입니다. ..

단전(丹田)이 열리지 않으면 축기(蓄氣)가 불가능하며, 소주천(小周天)은 꿈꿀 수 없다. 丹田은 힘으로는 열리지 않으며, 특별한 요령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유연한 몸과 마음에 지속적인 집중이 단전 열기의 관건이다. 서둘러서도 안 되고, 들쭉날쭉한 수련으로는 부지하세월이다. 겉만 익어서는 옆길로 간다. 자기 확신이 없인 안 되고, 어려우면 스승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늘 기도하는 마음(태극결)이 필요하다. 잠들 때와 잠 깰 때 마음이 丹田에 있다면 공기(工期)를 1/3로 줄일 수 있다.

근심 걱정이 없는 고요한 자리, 하루 중 얼마를 깨어서 그곳에 머무나요? 그 자리가 자성(自性) 자리입니다. 삶에 시달려도 우리는 그 자리가 있어서 살만한 겁니다. 그 자리에 한발을 걸친 사람은 돈이나 권력, 명예에 구애받지 않고 늘 당당할 수 있습니다. 丹田을 알면 바로 그 자리로 연결됩니다. 의수단전(意守丹田)이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앉으나 서나 기운을 연단(鍊鍛) 하세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습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입니다.

주인으로 살려면 우선 자기가 누구(主人)라는 것부터 알아야 한다. 수처작주입처개진(隨處作主立處皆眞)이란 말이 있다. 어디를 가든 주인이 되면 그곳이 어디든 참된 곳이다라는 뜻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자기가 누군지를 모르는 사람은 주인으로 살 수 없다. 주인이 되면 주인 노릇을 하게 마련이며, 손님 접대도 할 줄 안다. 주인이라면 주인다워야 한다. 식솔(몸과 마음)들을 챙길 줄 알고, 환경을 아름답게 꾸미며, 남에게 좋은 것(眞)을 내어놓을 줄 아는 사람, 그가 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