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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죽음이란 정기신(精氣神), 즉 몸과 에너지 그리고 의식이 해체(解體)되는 것이다.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에너지는 흩어지고 만다. 그런 상태에선 당연히 번뇌(煩惱)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그것을 Nirvana(涅槃)라고도 한다. 죽은 후 남은 것은 인식(神)뿐이다. 그것이 나이며, 그것은 알파와 오메가이다. 엄밀히 말해 '나'란 것은 인식력이다. 인식은 창조력이며, '나'라는 존재의 핵이다. 하지만 그것(認識)만 가지고는 살아있다고 할 수가 없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에너지이다. 죽은 자에게는 에너지가 없다. 그것은 마치 Battery가 방전(放電)되어버린 자동차와 같다. 그것은 자동차이지만 자동차라고 할 수가 없다. 자동차로서의 기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에너지(氣)가 없다면 알아차림도..

단전이 엔진(engine)이다. 엔진 출력이 좋아야 안정적으로 차가 움직이듯이, 선도(仙道) 수련도 단전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혹시 단전이 깨어났다 할지라도 활성화되지 않으면 시동이 꺼진 차를 움직이려 하는 것과 같다.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외단공과 내단공이 5:5의 콤비네이션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되어야 축기(蓄氣)가 가능해지고, 운기(運氣) 역시 원활해지게 된다. 혼자의 노력만으로 단계를 향상하기는 쉽지 않으며, 그것을 위해서는 스승이나 수련 동기들의 적극적 후원이 필요하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되기 위해선 상호 간의 사상적 코드와 에너지의 동조(同調)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는 믿음을 강조했으며, '너의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고 한 것이다.

건물을 지을 때, 일단 기초공사를 하고, 외장공사를 한다. 그리고 지붕을 올리고, 어느 정도 집 모양이 만들어지면, 내부공사를 시작한다. 내부공사는 주인의 취향에 따라 고가의 자재들이 사용되기도 한다. 선도(仙道) 수련도 마찬가지다. 일단 몸 수련을 하는데, 그것을 '연정화기(鍊精化氣)'라고 한다. 氣를 알아야 수련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진행하는 공부를 '연기화신(鍊氣化神)'이라 하는데, 그것은 의식(意識)과 氣를 일체화하는 공부이며, 그것을 통해 에너지체가 만들어진다. 그 과정을 양신(養神)이라고 하며, 그것이 선도(仙道)에서 말하는 장생불사(長生不死)의 기초가 된다. 仙道수행자는 밝아짐과 소주천으로 인해 매일 매일 에너지와 의식이 일체화되는 것을 실감하면서 모든 의심을 걷어낸다. 그것은..

깨달음을 일별(一瞥)하였다 할지라도 신뢰하는 스승에게 귀의(歸依)가 없는 한, 그야말로 일별에 그치고 만다. 그것은 거의 모든 각성자(覺醒者)들의 공통적 의견이다. 여기서의 스승은 물론 살아있는 선지식(善知識)만을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살아 숨 쉬지 않는 경전(經典)이나 어록(語錄), 그리고 매체(媒體)는 깊숙한 곳에 자리한 진여자성(眞如自性)을 작용시키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물론 움직이기 어려운 귀한 인연(因緣)을 타고난 수행자에게는 예외이지만 말이다. 그것은 소주천(小周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의념주천(意念周天)이라면 모를까, 단전(丹田)이 깨어나고 여실(如實)한 기운에 의해 주도되는 소주천이라면 꼭 이미 주천을 이룬 스승의 도움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분명히 깨달음의 인..

에너지 운행(小周天)이 자연스러워지면, 단전이 무르익어 태식(胎息)을 알게 되고, 온몸을 싸고도는 에너지가 확대되기 시작한다. 그것을 에너지場(Energy field)이라 한다. 처음엔 그 영향권이 한계가 있지만, 점차로 몸을 넘어서서 외부로까지 펼쳐지게 된다. 소주천(小周天)은 그 영향권이 3차원에 머물지만, 대주천(大周天)은 그 영향권이 시공(時空)을 초월한다. 대주천이 시작되면 에너지 장(場)은 무한히 확장되어, 말이나 문자로 표현이 불가한 자리(言語道斷), 신성(神聖)한 영역에 도달한다. 그것을 선도에선 천선(天仙)이라 하며, 불가(佛家)에선 환지본처(還至本處), 열반(涅槃)이라는 자리이다.

선도(仙道)는 신선(神仙)의 세 단계(人仙, 地仙, 天仙)를 말하고, 불교(佛敎)는 깨달음의 네 단계(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를 말하며, 화엄경(華嚴經)은 일지(一地)에서 십지(十地)까지 보살(菩薩)의 자리를 말합니다. 왜 그런 단계가 필요할까요? 인간은 진화(進化)하는 존재이며, 누구를 막론하고 더 나은 삶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진화하게 하나요? 그것은 타인에 대한 사랑(관심)입니다. 그것을 보시(布施)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중의 제일은 법보시(法布施)입니다. 법보시란 타인이 제일 좋아하는 것, 즉 행복해지는 소식(밝음과 에너지)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존재의 목적을 달성합니다. 타인에 대해 자비심이 없는 사람은 진화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많이 갖는 ..

우리는 기(氣)가 가득한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느끼려고만 한다면 누구라도 氣를 느낄 수 있다. 생명 자체가 氣이기 때문이다. 나름 氣 전문가로 알려져 있어서 가끔 氣의 강도를 감별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대개는 자기 상품에서 氣가 많이 나온다는 증언(證言)해달라는 요구다. 나는 보통 "많은 氣를 머금고 있군요. 하지만 식물이든, 광물이든, 氣를 머금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사실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LA에 머물고 있을 때 초청을 받아 애리조나의 세도나를 방문한 적이 있다. 氣가 특별히 강하다고 소문난 곳이다. 하루를 있어 본 결과 다른 곳에 비해서 색다른 기감(氣感)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특별하게 좋다는 점은 발견키 어려웠다. 초청자들은 물론 실망했겠지만.... 氣感이 강하기로 말하..

완전한 깨달음은 죽음과 같다. 그래서 그것을 열반(Nibvana)이라 한다. 선도(仙道)는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자리를 지키는 것은 퇴보이다. 그것이 仙道와 불도(佛道)의 차이다. 仙道는 무상(無常)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바람직하게 생각한다. 그것을 고(苦)가 아니고 낙(樂)이라 생각한다. 머무름이 없어야 한다. 발을 떼어 놓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는 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의 여정(旅程)은 끝이 없다. 가고, 가고, 또 갈 뿐이다.

재물도 본인이 관리할 능력만큼만 소유해야지, 그 이상이 되면 그것이 해가 되듯이, 축기(蓄氣)를 위한 과다한 노력은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단전(丹田)이 깨어나고 소주천(小周天)을 이루면, 그것으로 더 이상의 축기는 필요하지 않다. 삼단전(三丹田)과 무한한 에너지가 상호 연결되었으므로 앞으론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는 자동으로 충전된다. 그 후부터는 다른 사람의 공부를 돕는 데 氣를 사용하며 살아야 한다. 베풀면 베풀수록 나의 용량(用量), 나의 가능성은 늘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선도(仙道)의 행법(行法)은 크게 나누어 통기(通氣), 행기(行氣), 축기(蓄氣), 운기(運氣)의 네 단계로 나뉜다. 우선 통기는 활기 있게 사는 데 더할 나위 없이 큰 도움이 된다. 氣만 잘 통하게 되어도 병(病) 없이 천수(天壽)를 누리며 편안하게 살 수 있다. 기감공(氣感功)과 회춘공(回春功)만 배워도 통기는 가능하다. 행기는 氣의 운행이며, 한 단계 높은 통기라 할 수 있다. 팔단금(八段錦), 태극 13세 등의 외단공(外丹功)이 필요하며, 행기가 이루어져야 통기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다. 축기란, 氣를 모아 주는 것으로 운기, 즉 소주천(小周天)을 이루는 데 필요한 기본적 氣를 하단전(下丹田)에 모으는 것을 말한다. 태극양생장(太極養生樁)과 의수단전(意守丹田)을 연공한다. 소주천이란 임맥(任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