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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임독맥(任督脈) 유통(流通)에 앞서, 다소 힘이 들어도 확실한 축기(蓄氣)가 필요하다. 거저먹으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축기는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태산(太山)이 아무리 높기로 못 오를 리는 없기 때문이다. 일부 선도(仙道)단체에서는 의념(意念)으로 임독맥 돌리는 법을 그것도 5초 만에 빨리 돌리라고 가르친다. 마음(想像)으로 돌리는 것이므로 얼마든 가능하고, 빨리 돌리지 않으면 중도(中道)에 유실(遺失)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예로부터 상상으로 돌리는 것을 가리켜 '공차(空車)를 돌린다', '빈 솥을 달군다'라고 했다. 상상(想像)으로 돌리라는 것부터가 망발(妄發)이다. 과일은 잘 익혀 먹어야 하며, 설익은 밥은 맛이 없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귀를 묶어 바느질할 수는 없다. 귀찮다고 상상 속 ..

선도(仙道)란 신선(神仙)으로 가는 길(Way)을 가리킵니다. 신선이란 대자유인을 가리킵니다. 그는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는 나그네입니다. 그에겐 집착이 없으며, 근심 걱정도 물론 없습니다. 세상에 있을 때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삽니다. 그리고 돈과 권력, 명예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단전(丹田) 수련이 생활입니다. 그것을 통해 의식(神)과 에너지(氣)를 개합시켜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불멸의 몸을 만듭니다. 그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만 살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가 누구란 것을 깨우치고 있으며,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체화(體化)하며 삽니다.

압축되면 열이 올라갑니다. 그 열에 연료(氣)를 분사하면 폭발이 일어나며, 그때 열에너지가 운동 에너지로 전환합니다. (Diesel engine의 원리) 그럴 때 연료 유통에 장애가 있으면 Engine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통기(通氣)를 우선한 가운데 축기(蓄氣)를 하여야 부작용 없는 원활한 운기(運氣)가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그 중심이 되는 운기(小周天)가 어려운 이유는 충분한 通氣와 蓄氣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通卽不痛 不通卽通) 또한 通氣가 부족한 가운데 지식(止息)을 하면 이상(異狀)이 생깁니다. 과격한 운동을 한 사람이나, Relax(통기) 없이 止息을 밀어붙인 사람이 요절(夭折)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유기(留氣)도 본격적인 숨 멈춤은 아니나, 결국은 止息과 비슷한 결과를 냅니다. ..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분명히 다르지만, 어제와 오늘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전혀 다르다고만 할 수 없으며,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옮겨붙은 촛불이 먼저의 촛불은 아니지만,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라는 이치와 같다. 석가는 단견론자(斷見論者) 취급을 받았었다. Atman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도 윤회를 전혀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의 무아(無我) 주장은 Atman이 없다는 것이지만, 죽어도 영멸(永滅)하지는 않는다는 것인데, 그것을 그들은 중도(中道)라고 부른다. 인간은 정기신(精氣神)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것이 '나(自我)'다. 과학은 정(精)에 기초하여 기(氣)와 신(神)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유물론이다. 그러므로 그 차원에선 죽고 나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 석가가 단멸론자가 아닌..

깨달음은 무위법(無爲法)입니다. 그것을 위해선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깨달음에서 멀어집니다. 소주천(小周天)은 유위(有爲)로 시작해 무위(無爲)로 마무리합니다. 축기(蓄氣)가 필요하고, 집중(集中)이 필요하고, 자기 제어(Self-control)가 꼭 필요합니다. 처음엔 땀 흘려 끌고, 밀어주어야 하지만, 나중엔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소주천은 유위와 무위의 협업(協業)입니다.

힌두사상을 모르고서 불교를 안다고 하기는 어렵다. Hindu가 불교의 뿌리라는 것은 사실상 부정할 수 없다. Brahman(梵)의 다른 의미는 힘, 즉 에너지요, Atman은 아상(個我)이다. 범아(梵我)는 하나(緣起)이므로, 일여(一如)를 알아야 비로소 실존(實存)을 이해할 수 있다. 죽음이란 梵我 연결고리의 해체이며, 그것으로 공부가 확인된다. 부처의 가르침은 당시의 시대 상황과 연결되어 있다. 그는 윤회를 부정하지 못했지만, 최종 목표를 남김 없는 소멸, 열반( Nirvana)에 두었으며, 그것을 해탈(Moksha)과 동일화했다. 선도(仙道)는 인간의 정체성을 성(性)과 명(命)으로 보고 있으며, 그 둘이 하나인 상태를 사람(生者)이라 한다. 仙道 수련은 한마디로 말하면 성명쌍수(性命双修)이다. 여..

우리는 태어날 때, 살아가는데 기본이 되는 에너지(氣)를 받아 지니는데 그것을 선천지기(先天之氣)라고 합니다. 그것은 마치 사업의 초두자금과 같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운영했느냐에 따라 사업이 성공하기도, 실패하기도 하듯, 우리의 기운 운영도 마찬가지입니다. 氣를 잘 운영하면 새로운 기운이 생겨나는데, 그것을 후천지기(後天之氣)라고 하며 그것을 선천지기화(先天之氣化) 할 수 있으며, 그것을 연정화기(鍊精化氣)라고 합니다. 후천지기 10을 정제(精製)하여 선천지기 1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수련입니다. 생을 마치고 돌아갈 때 기운을 얼마나 남겼느냐에 따라 그것이 그 사람의 등급(等級)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늘 연정화기에 힘써야 합니다. 선도(仙道)에는 그 구체적인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의수단전(意守丹..

仙道는 통기(通氣)로 시작한다. 축기가 첫 과정이지만, 그것을 위해 사전에 꼭 필요한 것이 通氣이기 때문이다. 통기를 건너뛰고 결코 축기(蓄氣)부터 시작하여서는 안 된다. 마음대로 잘 되지도 않거니와, 적(積)이라 하는 氣 뭉침을 뱃속에 생기게 하며 수행은 물론 건강에도 해로움을 주기 때문이다. 귀찮고 더러 힘이 들어도 움직이는 행공(動功), 즉 외단공(外丹功)으로 선도를 시작하는 것은 그런 피치 못할 이유 때문이다. 선도의 동작이 요가와 차별되는 것은 자세(Asana)보다는 초식(招式), 즉 연결된 동작들을 사용해 연공한다는 것이다. 보통 20분 정도를 진행하는데, 그 이유는 통기를 위해 최소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주로 굳어진 근육과 척추 골반 관절들을 푸는 간단한 동작들로 시..

부처 가르침의 핵심이 '자기를 깨우치라는 것(性)'이라 한다면, 선도의 가르침은 '생명 깨우치는 것(命)'을 우선한다. 선도는 '생명'을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자기 깨우침을 '돈오(頓悟)'라 하여 순간적 일이라 한다면, 선도의 생명 깨우침은 '점수(漸修)', 즉 상당한 시간을 요한다. 생명의 구성 요소들을 하나하나 훑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선도는 그 요소를 정기신(精氣神)으로 규정하고 단계적 과정을 통해 그것을 깨우쳐가는데, 그것이 연정화기, 연기화신, 연신환허이다. 결론적으로 불교와 선도의 최종적 자리(空과 虛)가 거의 일치하는 데서 선불합종이란 말이 나온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

'성명쌍수(性命双修)'란, 성(性)과 명(命)을 동시에 닦아간다는 선도(仙道) 용어이다. 性이란 깨달음의 자리, 즉 본성(本性)을 말하며, 命은 목숨과 사명(使命), 즉 보고, 듣고, 느끼는 현실 세계를 말한다. 불도(佛道)는 性을 중심으로 닦고, 그 외의 것들은 모두 허망한 것으로 간주하지만, 仙道는 다르다. 희노애락(喜怒哀樂), 먹고, 자고, 쉬고, 놀고, 즐기는 생생한 이 삶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性 공부를 중시하지 않는 이유는 애써 찾아 나서지 않아도 命 공부를 진행하는 가운데 깨어있기만 하면 저절로 담박 밝아 보여주는 것이 자성(自性)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命 공부(백일축기, 시월양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닦아 가야 하는 점수법(漸修法)이기 때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