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虛其心 (211)
谷神不死
사람에게 삶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죽이겠다"는 말보다 더 무섭고 충격적인 것은 없다. 진짜 그럴 것 같은 낌새를 보였을 때 말이다. 한국인의 자살률이 OECD 1위란다. 어떨 때 사람은 자살을 택하는 것인가? 사람은 이성(理性)을 가진 동물이다.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할 때 자살한다. #자살의 이유 1. 심신(心身)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지속될 때. 생활고나 불치병, 그리고 심한 자존감의 손상. 누구나 이해가 가능한 일반적 이유이고, 많은 사람이 이 부류에 속한다. 2. 문제의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 이것은 사고방식의 문제이다. 멘탈이 여린, 대체로 감성적인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긍정적 사고의 사람은 오히려 비관적인 상황에서 더 힘을 낸다. 여기까진 이해가 어렵지 않다. 3...
1.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자유로워진다. 그저 그럴 뿐, 집착하지 않게 된다. 2.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장 눈만 감아도 세상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3. 내가 있음은 세상이 있기 때문임을 인정하게 된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도 있다. 4.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감사함이 절로 나온다.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 5. 그 당연한 이치들을 무시하고 사는 뭇사람들에게 이 깨달음의 소식을 전하고 싶어진다. 우리 모두 속에는 덕(德)을 베풀려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다.
그 자리는 생각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생각이 없이 보고, 듣고, 느낍니다.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그 자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생각에 주인 자리를 뺏겼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생각처럼 허망(虛妄)한 것이 없지만, 생각이 없이는 밍밍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더욱더 그러합니다. 그 지식이란 것은 생각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인일수록 깨닫는 것에 더 어려움을 느낍니다. 모든 것을 생각으로 해결하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원한다면 그냥 생각을 내려놓고 보고 들어보세요. 그것이 자각(awareness), 깨달음의 자리입니다.
"심령(心靈)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이다." 너무나 의미심장한 말이며, 예수의 핵심적 가르침이다. "心靈이 가난하다"란 무슨 말인가? 오스왈드 챔버스(Oswald Chambers)는 그의 책(Studies in the Sermon on the Mount)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향해 심령이 가난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한 하느님은 아마도 그가 신앙하는 예수(여호와)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를 이해한다. 믿음을 강조하는 것이 그의 일이기 때문이다. 心靈의 가난함(poor in spirit)이란, 마음을 내려놓고 산다는 말이다. 마음을 비워 본 사람들은 그 자리에 하느님(천국)이 자리하고 있음을 안다. 그렇게 편안하고, 그렇게 은혜가 충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예수의 산상수훈은..
한가한 道人은 일을 억지로 만들어서 하는 법이 없습니다. 순리(順理)를 따르고 역행(逆行)하지 않습니다. 그저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잘 뿐입니다. 길이 열리면 가고, 길이 아니면 가지 않습니다. 비가 오면 젖고, 바람 불면 흔들립니다. 배고픈 자를 만나면 밥을 주고, 병든 자에게는 약을 줍니다. 그는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낭패가 없습니다. 만사(萬事)는 도수(度數)대로 흘러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견처(見處)를 얻었다'라고 하는 것은 밖으로만 치닫는 관심사를 본원(本源)으로 되돌릴 수 있게 된 것을 말합니다. 일명 '회향(廻向)'입니다. 보이고 들리는 현란한 것들에 빼앗기던 마음을 보는 주체, 듣는 주체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회광반조(回光返照)'라고도 합니다. "흙덩이를 던지면 개는 그것을 쫓지만 사자는 던진 사람을 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이고 들리는 것의 원래 자리, 일어나고 꺼지는 것의 바탕 자리에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된 것, 그것을 가리켜 견처(見處)를 얻었다고 합니다. 요령은 간단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가치를 단지 배설물로 여기고 담박 내려놓기만 하면(廻向) 됩니다.
"그것"은 많은 이름으로 불리웁니다. 그리고 무어라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名可名) 하지만 이름이 그것이라고만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非常名) 본래면목(本來面目), 진아(眞我), 주인공, 부처, 성령(聖靈), 하느님 ... 부르고 싶은대로, 마음대로 부르십시오. 하지만 한가지만은 결코 잊지 마십시오. 당신이 없으면 그것도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인즉천(人卽天)이라 했습니다. 사람이 하늘입니다.
선도의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라"는 말은 지금 여기에 충실하라는 말이다. 그리 생각하고 살면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다. "지금 이것"이 아니면 모두가 망상(妄想)이다. 과거나 미래는 단지 생각 속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에 충실하노라면 탐심도, 성냄도 일어날 여지가 없다. 그것이 바른 견해(正見)이며, 그것 외에 팔정도(八正道)나 육바라밀(六波羅蜜)은 잔소리에 불과하다.
깨달음이란 자기가 누군지를 아는 것입니다. 세상에 자기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기 때문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기 있는 나를 두고 다른 데서 나를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가상(假像)을 만들어 그것으로부터 무언가 신통(神通)한 것이 와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는 평생 깨닫기 어렵습니다 그냥 여기 있는 나를 보세요. 석가는 별빛을 보고 깨달았다 하며, 예수는 비둘기를 보고 깨달았다 하며, 누구는 닭 우는 소리, 누구는 시계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佛像, 소, 원숭이, 십자가 등 보이는 것, 들리는 것을 통해 깨달으려 합니다. 정말 신통한 것은 지금 여기 있는 "나", 보고 듣고 알아채는 "나"인데 말입니다.
'망상(妄想)'이란, 망령된 생각을 말합니다. "망령되다"는 말은 사리(事理)에 맞지 않는 헛된 일을 가리킵니다. 우선, 과거가 망상입니다. 지나간 일을 되새기지 마십시오. 아무리 후회한들 돌이킬 수 없으며, 에너지(기운)만 낭비될 뿐입니다. 이 순간만이 실재합니다. 미래를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쓸데없는 망상입니다. 생각이 일어나면 안정된 모습으로 대체하십시오. 미래는 지금 이 순간의 변형일 뿐입니다. 실현 가능성은 지금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은 조짐이 있는 법이니 말입니다. 그저 현재에 머물러보세요. 생각을 쉬세요. 그러면 드러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과 만나세요. 그것이 모든 것을 일으키고 사라지게 하는 중심자리입니다. 그것을 깨달음이라 하고, 그 자리가 본래면목(本來面目)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