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虛其心 (213)
谷神不死
깨달음이란 자기가 누군지를 아는 것입니다. 세상에 자기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기 때문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기 있는 나를 두고 다른 데서 나를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가상(假像)을 만들어 그것으로부터 무언가 신통(神通)한 것이 와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는 평생 깨닫기 어렵습니다 그냥 여기 있는 나를 보세요. 석가는 별빛을 보고 깨달았다 하며, 예수는 비둘기를 보고 깨달았다 하며, 누구는 닭 우는 소리, 누구는 시계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佛像, 소, 원숭이, 십자가 등 보이는 것, 들리는 것을 통해 깨달으려 합니다. 정말 신통한 것은 지금 여기 있는 "나", 보고 듣고 알아채는 "나"인데 말입니다.
'망상(妄想)'이란, 망령된 생각을 말합니다. "망령되다"는 말은 사리(事理)에 맞지 않는 헛된 일을 가리킵니다. 우선, 과거가 망상입니다. 지나간 일을 되새기지 마십시오. 아무리 후회한들 돌이킬 수 없으며, 에너지(기운)만 낭비될 뿐입니다. 이 순간만이 실재합니다. 미래를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쓸데없는 망상입니다. 생각이 일어나면 안정된 모습으로 대체하십시오. 미래는 지금 이 순간의 변형일 뿐입니다. 실현 가능성은 지금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은 조짐이 있는 법이니 말입니다. 그저 현재에 머물러보세요. 생각을 쉬세요. 그러면 드러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과 만나세요. 그것이 모든 것을 일으키고 사라지게 하는 중심자리입니다. 그것을 깨달음이라 하고, 그 자리가 본래면목(本來面目)입..
그것은 어떠한 모양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그것의 모양은 '공적(空寂)'이요, 그것의 주체는 '영지(靈知)'이다. 그래서 그것을 '空寂靈知'라 부르는 것이다. 空寂이란 텅 비어(空) 있고, 고요(寂)하다는 뜻이다. 한계가 가늠이 되지 않아서 잡으려야 잡을 수 없지만, 모든 相과 소리가 쉼 없이 생성되는 자리가 空寂이요, 이를 알아채고 있는 신령스런(靈) 알음알이(知)가 靈知이다. 나(眞理)는 누구인가?
그냥 허전하다, 우울하다, 하지 말라. 왜 외롭고 우울한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돈을 좀 잃었다고 가슴 아파하고, 사랑하던 사람이 떠났다고 속상해한다. 그러나... 나 자신(自性)에 대해 무지(無知)하다는 것으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는가? 세상 모든 이치를 다 안다고 해도, 내가 누군지를 모른다면, 그것이 바보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깨달음을 위해서는 돈도 필요 없고, 총명함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저 간절(懇切)함만 살아있으면 된다.
깨달았다는 것은 분별심을 벗어난 자리, 견처(見處)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경전(經典)을 참구(參究)하거나 수행을 통해 깨우치는 자리가 아닙니다. 어떻게 말한다고 할지라도 그 자리를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자리는 마치 절벽 끝 나뭇가지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리듯, 자기(ego)를 포기했을 때 예기치 않게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직접 체험으로만 얻어질 수 있는 자리입니다.
소리(話頭) 속으로 나를 던져보세요.눈에 보이는 것 속으로 나를 녹여 넣어 보세요. 냄새와 감각, 그리고 지금 이 맛 속으로 스며들어 보세요. 생각을 끊고 조용히 그것에 머물러 있어 보세요. 역대의 선지식들이 밝음을 얻었던 방법입니다. 그때 그 자리, 견처(見處)가 펼쳐집니다.
당신에게 제1의 가치(價値)는 무엇인가? 돈인가? 권력인가? 명예인가? 가족인가? 일인가? 사랑인가? 신앙인가? 만약 그것들을 제1의 가치로 믿고 있다면 매우 불안정하다. 하나같이 변하는(無常)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에겐 단 하나 "변치 않는 것"이 있으며, 그것을 알아챈 것을 견성(見性)이라 한다. 그것 외에 모든 것은 바람처럼 지나간다. 그것(自性)은 사실 이미 가지고 있어서 찾을 것도, 지닐 것도 없지만 말이다.
우리가 담배, 술, 마약... 섹스, 돈, 권력... 명예, 신앙... 쇼핑... 하다못해 드라마나 고양이에라도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들이 무언가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딱히 말로 표현키는 어렵지만 말이다. 그런 것들은 무언가를 힐끗 보게 해준다. 그것은 일시적일지라도 안정을 주는 묘약(妙藥)이다. 나는 그런 것들 모두를 싸잡아 중독(中毒)이라 부른다. 근원적 처방이라면, 자기를 깨우치는 것(見性)밖에는 달리 수가 없다. 밝음만 얻으면 그런 것들의 도움 없이도 늘 그 자리(本性)와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시적이 아니라 여유롭게 말이다. 자꾸 생각나서 나를 빠져들게 만드는 것, 그것이 중독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내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알고 보면 내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들 뿐입니다. 우선 내 자식, 내 남편(아내), 돈, 권세, 명예 그리고 내 몸과 마음도 내 맘대로 안됩니다. 속았습니다. 모두가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세상에 내 것은 없나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유하지 않으며 어찌하려고 하지 않는 기본 속성(無爲自然)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순리(順理)와 인과(因果)에 따라 움직일 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성(自性)'이며, '우주심(宇宙心)'이며, 그것을 알아채면(見性)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