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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삶이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중요할지에 대해서는 타인이 관여할 바가 아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돈을 많이 가지는 것일 수 있고, 누구는 권력을 잡는 것, 또 누구는 학문적 성공일 수 있고, 누구는 예술적 성취일 수 있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영원한 무엇을 쫓기 위해 명상을 할 수 있으며, 호흡이 멈추는 것(쿰바카), 또한 초능력을 얻는 것, 그리고 쿤달리니의 상승을 꾀할 수 있다. 선도(仙道)는 그 무엇도 추구하지 않지만, 호흡이 멈춰지는 것은 빼고는 그 무엇도 거부하지는 않는다. 모든 시간에 자기의 본성(本性)과 만나는 것을 즐기면서, 에너지(氣)에 장애가 생기거나 부족하지 않도록 늘 챙기며 살지만, 애씀이 없이 자연스럽게 그리되기(無爲自..
우리에겐 태어날 때 지니고 나온 에너지(先天之氣)가 있고, 살면서 노력해 만드는 에너지(後天之氣)가 있다. 타고난 에너지는 살아가면서 조금씩 소모되고 노후한다. 그러므로 필히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보충해야 한다. 그것을 가리켜 우리는 축기(蓄氣)라 한다. 수행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쿤달리니처럼 선천지기(先天之氣)만을 사용해 에너지를 운용하는 법이고, 축기를 통해 후천지기(後天之氣)를 길러 수행을 완성하는 기법이 있다. 선도(仙道)는 살아가며 부족해지고 노후한 에너지(精)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가르친다. 쿤달리니와 다르게 축기가 없이는 이루지 못하는 것이 소주천(小周天)이다. 6살 전, 즉 선천지기가 온전할 때 좋은 스승을 만나 수련을 마치지 못한다면 말이다.
인간에게 다가오는 괴로움은 크게 나누어 두 가지, 즉 외적인 상실감과 "자기(自己)"라 할만한 마음(ego)의 상처, 그리고 육체적 어려움이다. 깨달음이 왔을 때 견디기 쉬운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외적인 상실이다. 그것은 재물, 권력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것들은 생각의 조절만으로도 해결이 가능하므로 견뎌내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그것들이 떠나갈 때 허탈감이 없지는 않지만, 진정 깨달았다면 그런 것들이 못 견딜 고통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음 단계, 즉 "나(自己)"의 일부분이라 생각하는 것, 즉 권위와 명예가 더럽혀졌을 때는 조금 더 어렵다. 그것은 나와 더 가까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존심이 상처를 입었을 때 선선히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아라한이라 할지라도 무심(無心)하..
"1,700 공안(公案) 하나하나는 모두가 본성(本性) 자리,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가리키는 것이다"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를 보았다면(見性), 화두(話頭) 1,700개 모두를 타파한 것이며, 또한 그 자리를 깨우친 사람은 경전(經典) 모두를 읽은 셈이나 다름없습니다. 말씀들은 모두 그 자리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는 진여(眞如) 자리이며, 그것은 결국 '나 자신'입니다. 나를 벗어난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자리를 보고 나면 한가한 도인(道人)이 됩니다. 그 후부터는 뭇 중생(衆生)들을 깨우치는 과업만 남습니다. 衆生이 불행하면 우리 역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일은 힘든 일이 아니라 보람 있고 즐거운 놀이가 됩니다.
선도(仙道)는 신선(神仙)의 세 단계(人仙, 地仙, 天仙)를 말하고, 불교(佛敎)는 깨달음의 네 단계(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를 말하며, 화엄경(華嚴經)은 일지(一地)에서 십지(十地)까지 보살(菩薩)의 자리를 말합니다. 왜 그런 단계가 필요할까요? 인간은 진화(進化)하는 존재이며, 누구를 막론하고 더 나은 삶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진화하게 하나요? 그것은 타인에 대한 사랑(관심)입니다. 그것을 보시(布施)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중의 제일은 법보시(法布施)입니다. 법보시란 타인이 제일 좋아하는 것, 즉 행복해지는 소식(밝음과 에너지)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존재의 목적을 달성합니다. 타인에 대해 자비심이 없는 사람은 진화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많이 갖는 ..
작은 것을 탐하느라, 큰 것을 잃는 것을 가리켜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작은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선도(仙道) 수련자가 에너지(氣)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은 다양합니다. 일단 수련은 '연정화기(鍊精化氣)'로 시작합니다. 그것을 통해 존재는 氣라는 것을 알아챕니다. 그것은 상당한 에너지를 확보해 줍니다. 그 이후, 그것을 어느 쪽으로 사용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당사자의 취향입니다. 그것으로 근력(筋力)을 강화하여 강한 무술인(武術人)이 될 수 있으며, 또한 氣 치료사가 되기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어리석은 일입니다. 에너지(氣)는 존재의 핵(核)입니다. 그것으로 필히 자기를 깨우치고, 자기 안의 신성(神性)을 알아채야 합니다. ..
감정조절이 어렵다면... 쉽게 우울해진다면... 체중이 걱정된다면...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다면... 집중력이 떨어진다면... 부정적 내적 경향이 되기 쉽다면... 혼자서는 행복해지기 어렵다면... 원인 없이 근육 경련이 일어난다면... 그리고 병의 회복이 너무 늦다면, 도파민 부족을 의심해야 합니다. 도파민 부족으로 생기는 증상은 매우 다양합니다. 파킨슨병은 그 중의 극히 일부입니다. 선도(仙道) 수련을 제대로 했다면 도파민 걱정은 없습니다. 내외단공(內外丹功) 하나하나는 모두 도파민의 안정적 분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仙道는 몸과 마음, 근육과 관절, 그리고 생각, 감정, 의지를 조절하는 데 매우 큰 효과가 있습니다. 혹시라도 배운 것들이 헷갈린다면 꾸준히 수련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해결책..
자기(自己)를 깨우치면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는 눈이 생깁니다. 다소 불미스러운 것을 본다고 할지라도 저절로 좋은 쪽으로 보게 됩니다. 또한, 온몸에 기운이 잘 흐르면 너그러운 마음이 생깁니다. 넉넉한 가운데 인심(仁心) 난다고 말입니다. 깨우침과 에너지(氣)는 늘 함께하게 되어 있습니다. 행여나 깨달음을 얻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물이 부정적으로 보이거나 에너지에 문제가 생겨서 기운이 없고 이유 없이 여기저기 아픈 데가 있다면 깨달음을 재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선도(仙道)에서 성명쌍수(性命双修)를 말하는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
선도(仙道) 특히 태극권을 배우는 사람들은 흔히 그들이 알아차린 모양새를 말로 표현하려고 하고, 나는 "그냥 보여 주기만 해. 말하려 하지 말고."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나의 시범(示範)을 본인이 직접 캐치하기보다는 말로 해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그래서는 나에게서 얻을 것이 없다. 말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와 내가 말을 포기하게 되었을 때, 그때부터 공부가 시작된다. 눈으로 캐치하는 것이 어느 정도 되고 나면 나는 다시 요구한다. "보려 하지 마, 몸으로 느껴봐."라고 한다. 그때쯤 되었을 때 단전(丹田)이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며, 축기가 이루어지고 소주천(小周天)을 할 준비가 된 것이다. 仙道의 진수(眞髓)를 맛보기 위해선 소주천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이후에나 태식(胎息)을 알게 되고, 양신..
이제 웬만한 수행자(修行者)는 거의 알고 있습니다. 명상(冥想)은 하나의 요식행위(要式行爲)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왜 싯다르타는 명상을 뒤로하고 고행(苦行)을 위해 히말라야로 갔는지를 말입니다. 그는 고행을 통해서도 깨달음을 완성치 못했습니다. 명상을 하면 잠이 올 정도로 평안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명상에서 다시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다시 온갖 번뇌와 망상이 밀려옵니다. 바른 깨달음을 위해서 그치고(止) 볼 수 있어야(觀) 합니다. 그리고 필수적인 것이 하나가 더 있는데, 그것은 에너지(氣)입니다. 에너지가 없으면 모든 작용(作用)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도(仙道)에서는 성명쌍수(性命双修)를 권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깨달음과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위한 흔들리지 않는 방편이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