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和光同塵 (572)
谷神不死
같은 칼이라도 맛난 음식을 만드는 데 쓰기도 하고, 사람을 위협하는 데 쓰기도 하듯이 태극권(太極拳)도 비슷합니다. 재주와 기운을 익혀 겨루기 상대를 이겨 먹는 데 쓸 수도 있지만, 쉽지만은 않아도 자기(自己)를 깨우치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자성(自性)을 알아채는 방향으로 효과적으로 틀 잡힌 太極拳을 선도(仙道) 태극권이라고 합니다. 원래의 太極拳은 신선(神仙)들의 행공법(行功法)이었습니다. 비단 수건을 걸레로 쓰지 마십시오. 太極拳은 싸움기술이 아닙니다. 격투기를 원한다면 특공무술이나 타이 복싱(Muay Thai)이 훨씬 낫습니다. 기운(氣運)의 운용에 太極拳보다 유리한 수행법은 세상에 없습니다. 공격 방어 동작 몇 개를 흉내 내기보다는 그 안에 숨어있는 태극 사상(太極思想)을 받아들이십시오. 그..
새로운 문화(文化)를 받아들일 때는 먼저의 문화를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 그림을 그릴 때는 먼저 그림이 지워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화판(畵板)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공부법이 많은 이유는 사람들의 취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무슨 공부이든지 6개월을 지속하면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에너지가 일어나지 않는 공부를 6개월 이상 밀어붙이는 것은 바보짓입니다. 아무리 공부를 지속해도, 잡히는 것이 없이 늘 허공(虛空)을 맴돈다면 그 공부를 지속해 무엇하겠습니까? 본인이 원하는 목표가 존재의 완벽한 소멸, 즉 '무여열반(無餘涅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누구나 애쓰지 않아도 에너지를 잃는 순간 혼비백산(魂飛魄散)하고 맙니다.
스승 밑에서 배우다가 그를 떠나게 되거나 파문(破門)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없으면 못살 것 같이 살다가도, 헤어질 인연이면 헤어지는 것이 인생사이니 떠나야 할 일이 생기면 떠나고, 보내야 하면 보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떠한 사정(事情)으로 인해 헤어지더라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법은 지켜져야 한다. 배운 것 중에 허락 없이 타인에게 전하지 않는다고 한 약속은 무엇보다 먼저 지켜야 한다. 스승에 따라서 가르침이 이치에 맞지 않거나 독선적일 때, 그리고 그 밑에서는 더 이상의 진보를 기약하기 어려울 때 조용히 스승을 떠날 수 있다. 그리고 제자가 사고(思考)가 반듯하지 못해 종지(宗旨)를 어기고, 공부 외에 잡사(雜事)를 쫓으며, 오만(傲慢)하여 문중(門中) 내에 분란을 일으..
숨은 생명이고 에너지이다. 출처(出處)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그것을 따라가면 자유를 얻게 된다. 깨우침은 단박에 오는 것이다. 혹시 깨우치지 못했다면 마음먹고 일주일만 숨을 따라가 보라. 수많은 선지식(善知識)이 숨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당신이라고 안될 리는 없다. 깨우침이란 자기가 누군지를 아는 것이다. 깨달음이 있어야 사물을 바르게 보고 정견(正見)을 이루면 육바라밀(六婆羅蜜)은 자연히 따르게 되어 있다.
건축주가 업자에게 삼층집을 발주(發注)하고 한 달이 지나 공사장에 가보니, 겨우 기반(基盤)을 다지고 일 층을 짓고 있었다. 건축주는 업자를 불러 말했다. "나는 분명히 삼층집을 지으라 했는데 당신은 왜 일층집을 짓고 계시오?" 업자는 말하길, "나는 일 층 없이 삼층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런 집을 지을 수 있는 다른 업자를 찾아보십시오" 건축주는 삼층을 지어준다는 업자를 찾아 그에게 공사를 맡겼다. 그의 말대로 한 달 후 공사장에 간 건축주는 그럴듯한 삼층건물을 볼 수가 있었다. 너무 기분이 좋은 건물주는 단숨에 삼층에 올랐는데, 무너지는 집에 깔려 겨우 목숨만을 부지할 수 있었다. * * * 공부의 삼단계는 단계를 밟아 쌓아 올려야 합니다. 순서는 몸, 숨, 마음입니다. 물론, 몸 공부와 숨 공부를..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글도 "만 번만 읽으면 뜻이 통한다"는 말이 있다. 몇 번 수련회에 참가해 보았지만, 도통 단전(丹田)이라는 것이 실감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섣불리 물러서지는 말자. 요즘은 누구나 아는 신기한 이야기가 있다. 인디언은 기후제만 지내면 꼭 비가 온다는 이야기 말이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말도 있고, "태산이 높아도 하늘 아래"라는 글도 있다. 전생부터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면 몇 번의 지도로 丹田(玄牝一竅)이 열리기도 하지만, 일반인에게는 몇 년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나 역시 스승님이 안 계셨다면 지금도 소주천(小周天)은 꿈도 꾸지 못할 테니 말이다. 일단 목표를 정하고 가입하였다면 열리는 수련회에 빠져서는 안 된다. 핑계야 만들면 얼마든지 있겠지만 말이다. 스승..
한국의 의료진을 가리켜 의통(醫通)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읽었다. 한국의 의료기술은 세계 최고이다. 그러므로 의통이 한국서 시작된다는 예언도 일견 이해는 되지만, 아직 썩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의통이란 말은 강일순 증산(甑山) 선생의 일대기 대순전경(大巡典經)에 나오는 내용이다. 거기엔 향후(向後) 치명적 역병(疫病)이 세계를 강타할 때, 조선에 "대두목"이란 칭호의 인물이 하늘의 명(命)으로 의통을 손에 들고 나타나 인류를 구원하고 지구에 신선(神仙)의 나라를 창건한다고 되어있다. 삼일운동 직후, 조선의 인구 1/3이 증산을 숭배하는 민속신앙 보천교(普天敎)에 빠져들었다. 국호를 시(時)라 하고, 교주 차경석은 천자(天子) 자리에도 올랐다. 신자(信者)들은 일본이 망하고 새 나라가 세워질 것..
있는 것을 없다 하는 것이 좋을까? 없는 것을 있다고 믿는 것이 더 유리할까? 무아(無我)냐 진아(眞我)냐를 따지기 전에, 무아를 믿는 것과 진아를 믿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삶이 풍부해질까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무아론자(無我論者)에게 자살률이 높습니다. 깨달았어도 허망(虛妄) 속에 빠지기가 더 쉽기 때문입니다. 진아론자(眞我論者)는 당장 깨달음이 없어도 만족스런 미래의 자기 모습을 그리며 삽니다. 스승이 있으면 더욱 그러합니다. 그는 확신을 가지고 꾸준히 정진(精進)합니다. 늦추지 않고 공부하는 이를 이길 길은 없습니다. 결국 그는 안정적인 깨달음의 자리에 이르고 맙니다.
항노화(Anti-aging)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요즘에 와서 "디톡스(Detox; detoxification)라는 말이 흔해졌고, 그것을 위한 식이요법이나 디톡스 물질을 먹어 청혈(淸血)을 한다는 제품들이 앞다퉈 출시되고 있다. 디톡스란 대사작용으로 생겨난 인체 유해물질을 몸 밖으로 배출한다는 말이다. 배출하는 방법으로는 손쉽게 무언가를 다시 먹어서 해결하는 방법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가격이 만만치 않고 일시적 효과는 기대할 수는 있겠으나 근본적 영구적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우리는 숨 쉬고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숨은 생명이며, 먹는 것보다 더 기쁨을 주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흐르는 물은 저절로 정화(淨化)된다는 것이 예로부터 확인된 사실이다. 피를 구석구석 잘 흐르게 하기만 하면 우리 몸..
"나는 날마다 죽노라." 바울의 오도송(悟道頌)입니다.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이라(殺佛殺祖)'라 하신 선지식(善知識)의 어록에도 있듯 자기를 죽이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죽이는 일은 자기 믿음을 내려놓기 전에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믿음이란 관념의 고정화이기 때문입니다. 금색 입힌 우상(偶像), 십자가, 마리아는 진리(眞理)가 될 수 없습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하기에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오도송은 자기 깨달음의 경지를 후학들을 위해 허물을 감수하고 말이나 글로 나타낸 것입니다. 요새 오도송은 영어로도 짓습니다. 음률을 맞춰 한자(漢字)로만 짓던 시대는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어쭙잖지만 매일 오도송을 짓습니다. 짓는다기보단 저절로 나옵니다. 그것이 어연 1000편 가까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