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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에너지(氣)를 길러 태식(胎息)을 이루면, 에너지와 식(識)을 동시에 지닌 양신(陽神)을 얻습니다 陽神은 단순한 생각(識) 덩어리인 유체(幽體)와는 다르게 작용력이 있습니다. 양신(養神), 출신(出神)은 보통 말하는 유체 이탈과 개념(槪念)부터 다릅니다. 양신(陽神)과 대별되는 것으로 음신(陰神)이 있는데, 그것은 작용을 위해 남의 에너지를 빌려 사용하는 존재입니다. 자기 것이 아니므로 당연히 신앙(信仰) 중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에너지 수행을 통해 양신(養神)을 얻으려 하는 무리를 우도방(右道房), 음신 차원에서 주문(呪文) 기도 등으로 타력(他力)을 빌려 행사하는 무리를 좌도방(左道房)이라고 합니다.
노자는 말했습니다. 깨달음이란 "지식(知識)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줄어드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세간(世間)에서 깨달았다는 것은 몰랐던 것을 알아 분별이 늘었다는 말이지만, 출세간(出世間)의 깨달음은 앎을 포기하고 자연무위(自然無爲)와 합일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통찰(通察)이나 직관(直觀)같은 생각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 자리와 만나는 순간, 모두 녹아 하나( 理氣一元)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상락아정(常樂我淨)과 통합니다. 생사(生死)와 고락(苦樂), 유아(唯我), 무아(無我), 선악(善惡)을 모두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깨달은 이를 절학도인(絶學道人)이라고도 부르는데, 일 없는 가운데 몸과 마음은 늘 편안함이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이 풍진(風塵)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말입니다.
사람에겐 분별심이 있으며, 유도(儒道)는 시비지신(是非之心)을 지(智)라 하였다. 불문(佛門)에선 깨닫고 나면 분별심(分別心)이 사라지며, 그것을 망상(妄想)이라 한다. 분별심이란, 너와 나, 좋고 싫음, 옳고 그름을 헤아려 판단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그것이 없이 어찌 세상을 살 수 있을까? 그것은 무상(無常)을 대각(大覺)한 아라한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세상 속에 살지 않으며 시각(視覺)이 전혀 다르게 된 사람에게나 가능하다. 결국 세상에 살고 있는 한, 갈등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궁극적 바램은 무여열반(無餘涅槃)일 수밖에 없다. 무여열반이란 무엇인가? 결국 불교의 가르침은 무어라 설명한다 할지라도 세상의 삶을 버리라는 것일 뿐이다. 어찌 그들을 가리켜 염세적(厭世的)이 아니라고 할..
붓다의 사념처(四念處) 중, 첫째가 몸(身)이며, 두 번째는 느낌(受)이다.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관찰하는 것만큼 훌륭한 공부도 드물다. 우리 몸의 느낌을 통해 마음(心)을 관찰할 수 있으며, 그것은 그대로 세상(法)과 통한다. 무엇을 하든... 명상을 하든, 댄스를 즐기든, 좋다. 깨어있기만 하다면 말이다. 거기서 일어나는 느낌들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수행이다. 얼마 안 가서 누구나 몸과 마음에 흐르는 에너지(氣)를 감지할 수 있게 된다. 베이징(北京)에 갔을 때 태극권 금메달리스트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가 氣를 모른다는 말을 듣고 의아해한 적이 있다. 알고 본즉, 그는 표면적 움직임에만 관심을 쏟았을 뿐, 내적 에너지 흐름엔 마음을 두지 않았었다. 외단공(外丹功)을 수련할 때는 물론, 평..
최고의 名品을 파는 사람은 자신감으로 장사를 한다. 그는 호객하지 않으며, 상품의 가치를 아는 고객만을 귀하게 모신다. 그에겐 재고가 없다. 물론 세일도 하지 않는다. 시즌이 지나면 그는 남은 상품들을 불태워 버리므로 가치를 높인다. 스승 역시 인연 있는 제자(弟子)만을 거둔다. 그에겐 미련도, 아쉬움도 없다. *유머* 손님 : 아줌마 이 수박 한 덩이 얼마요? 주인 : 네, 하나에 만 이천 원입니다. 손님 : 좀 비싼데 깎아줘요. 만 원에 주면 안 될까요? 주인 : 냅둬유~ 소나 주게유~
상상이 실재(實在)인 이유는 상상한 것들을 모두 이루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상상(想像) 한 번 했다고 모두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을 가리켜 망상(妄想)이라고 합니다. 발명가, 초능력자의 상상은 일반인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그들에게는 그리될 것이라는 믿음과 집중력, 그리고 에너지가 있습니다. 또한 집중력과 에너지가 없이 세상에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발명가나 초능력자라고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일반인도 믿음으로 집중력 훈련을 받으면 발명가도 되고 초능력자도 될 수 있습니다. 관찰해보면 숨을 쉰다는 것 생각한다는 것 두 발로 선다는 것부터가 초능력입니다. 깨달음, 소주천(小周天) 그리고 행복에 대해 늘 상상하십시오. 시간문제일 뿐, 꼭 그리 이루어질 것입니다.
기(氣)는 파동(波動)이면서 입자(粒子)이다. 氣 수련이 무르익으면, 파동이 일어나고, 입자가 움직이는 것을 누구나 실감한다. 氣 치료란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마음이 일으키는 긍정적 파동에 약(藥)이 되는 입자를 실어 보내는 것이다 . 그러므로 몸을 맡길 때는 믿음과 성심(誠心)이 있어야 하며, 그것이 양자의 마음에 콜라보레이션를 이루게 한다. 보내는 파동과 입자가 환자와 동조(同調)를 이루면 기적이 일어난다. 파동이 강화되면서 치유의 입자(藥)를 많이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것에 따라 치료 효과가 결정되고, 거기에서 氣의 실제성이 드러난다. 스승과 함께 수련할 때도 마찬가지다.
소출(所出)이 적다고 섭섭해하지 말라! 딱 씨 뿌려 가꾼 만큼만 거두게 되어있다. 누가 날 섭섭히 대할 때는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한다. 만사는 내가 정성 들인 만큼만 돌아오게 마련이니 말이다. 적게 심고 많이 거두려 하지 말라. 평년작만 되어도 대박이다. 잘못해서 밭을 통째로 갈아엎는 사람도 있다. 조그만 것에도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늘은 감사하는 사람에 더 많은 것을 선사한다. 늘 스승을 따라 게으름 피우지 말고 꾸준히 닦아야 한다. 세월은 결코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어린 시절, 자전거 타기를 며칠 배웠는데, 환갑이 지나서도 안장에 오르면 넘어지지 않고 운전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치매에 걸려 아들도 못 알아보는 노인네가 자연스런 뜨개질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識見)을 얻었고, 인가(認可)까지 받았다는 사람이, 시간이 지나며 갈팡질팡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말로는 대자유를 얻었다고 하면서... 정작 경계를 만나면 속인(俗人)과 다를 바가 없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몸이 아니라 머리(알음알이)로 된 공부여서 그렇다. 단전(丹田)을 복뇌(腹腦)라고 부른다. 깨달은 바가 머리에 머물지 않고 뱃속(몸)까지 무르익어야 한다는, 즉 자기화(自己化)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말이다. 성명쌍수(性命双修)란 공부가 알음알이 정도에 머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