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和光同塵 (568)
谷神不死
명상(冥想)을 서양 말로 Mindfulness라고도 합니다. Mind는 "정신" 혹은 "마음"을 가리키는 말이며, ful은 "가득 찬(빈 공간이 없이)", "경계가 없는"이란 의미입니다. 명상(Meditation)은 스트레스(마음의 끄달림)를 해소하는 약(Medicine)으로 요즘은 의사가 처방하게 되었지만, 깨우침(자기에 대한)을 위해서 매우 유용한 방편(方便)입니다. 명상을 가지고 우열을 따질 수는 없습니다. 각기 자기에게 맞는 것이 최선입니다. "꿩 잡는 것은 매"이기 때문입니다. 민족마다 기법(技法)은 달라도 각각 자기들의 명상이 있습니다. 인도의 Mantra명상, 중국불교의 선(禪), 유도(儒道)의 거경(居敬), 선가(仙家)의 의수단전(意守丹田), 기독교의 관상(觀想), 이슬람의 Sufism, ..
고혈압이나 당뇨, 심장병, 암 등 만성질환에 태극권(太極拳)이 효과적이라는 논문이 해외로부터 속속 발표되고 있으며, 국내의 많은 의사들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 태극권의 효과는 태극권이 가진 무술적 내용보다는 기공적(氣功的) 요소 때문이다. 사실상 태극권은 무술적 특성을 내려놓은 지 오래되었으며, 호흡과 연결되는 부드러운 움직임, 골반과 척추에 미치는 좋은 영향, 말초까지 흐르는 에너지 순환, 그리고 근육과 관절에 생기는 제반 질환에 대한 치료 효과가 크다. 태극권은 신선(神仙)들의 행공법으로 알려져 있다. 움직이는 선(禪)이라 불릴 만큼 깨달음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그 뿌리에는 선도(仙道)의 기본요소인 수승화강(水昇火降)이 주효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1950년대에 국민건강을 위하여 전통적 ..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서 당당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다. 그것이 자부심(自負心), 즉 머리 들고 살게 하는 힘이다. 하지만 이유 없이 자기를 고정하고, 위축시키며 사는 사람이 있다. 자기의 가치와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혹시 당신이 그러하다면 크게 깨우쳐야 한다. 세상에 있는 무엇도 필요에 의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혹시 자신에게 자부심이 없다면 자기를 닦아서 해결해야 한다. 그리하여 진면목(眞面目)이 드러나게 해야 한다. 쓸데없이 타인을 시기 질투하는 것은 큰 손해다. 스스로 열등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얼치기 자부심은 내려놓아야 한다. 나보다 나은 사람이 있으면 누구라도 찾아가 배워야 한다. 자기를 폐쇄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자부심을 지니며 당당하게 사는..
상기병(上氣病)으로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너무 힘들어 수행을 포기했던 간화선 수행자도 있었다. 상기병이란 기운이 난조로 생기는 병이다. 두통뿐만 아니라 우울증 등 심리적 장애도 있을 수 있다. 과유불급이다. 몇초를 들이고 몇초를 참는 식의 지식을 하거나 의식의 중심을 머리에 두는 수련을 지속할 때 생긴다. 선승들에게 하단전을 관하도록 가르치는 큰스님(송담 지유)이 있다. 상기병의 메커니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만 선도에 입문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낫는 병이다. 억지로 하던 지식을 자연 호흡으로 바꾸고, 외단공을 통해 상하의 기운을 상통시키면 된다. 사람 몸에는 알아서 정상을 찾는 자동 시스템이 있지만 한계를 넘어 자연을 역행하면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있다. 무슨 일이든 무턱대고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수행자라는 것이 자랑스러운 사람이라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수행이 아닐 수 없다. 감추고 싶은 일이라도 말이다. 알고 보면 세상에 수행이 아닌 일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가 자기 스승역을 할 수 없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수행자는 핑계를 대지 않는다. 비틀거리며 걸어도 호랑이는 호랑이이듯, 한번 수행자는 평생 수행자이다. 늘 당당하고 의젓해야 한다. 세상을 내려보며 살 수 있어야 진정한 수행자이다.
명상 중 하느님(?)을 만났습니까? 가슴이 뻥 뚫리는, 허공(虛空)과 내가 합해지는 체험을 했습니까? 그리고 나선 생각과 생각 아님을 구별하는 눈이 생겼습니까? 그런 상태를 '눈을 떴다'는 뜻의 '개안(開眼)'이라고 합니다. 눈이 생기지 않았다면 아직은 아닙니다. 눈이 밝아지지 못하다면 공부를 좀 더 해야 합니다. 그 눈으로 진리(眞理)를 보았다면 한번 말해 보세요. 그 진리란 놈이 어떻게 생겼습디까? 운전자가 되어야 합니다. 운전자는 산도 보고, 강도 보고, 다리도 봅니다.
명상(Meditation)은 잠과 비슷하다. 그것이 무슨 대단한 일 같아도, 알고 보면 생각을 보류하는 일일 뿐이다. 그것의 가짓수나 그것으로 인한 체험적 현상은 너무 다양하니 굳이 그것에 대한 평가는 뒤로 미루자. 골치 아픈 일이 많거나,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을 명상이라 해도 과히 벗어나지는 않는다. 한자로 명상(冥想)을 어두울 冥, 생각 想으로 쓴다. 분별심을 내려놓는 데 유용한 것이니 "생각을 어둡게 하는 것'이라 해도 틀리진 않겠다. Medi란 중간(中間) 혹은 의료라고 해석된다. 그러니 생각을 중간에 두는 것, 그리고 요즘은 정신과에서 심리치료용으로 쓰고 있으니 그것도 일리가 있다. 수많은 신앙단체에서 그것을 끌어다 쓰고 있지만..
언어(言語)는 사람끼리의 약속입니다. 개를 하느님이라 부르기로 약속하면 그날부터 개는 하느님이 됩니다. 개벽(開闢)이란 Open & Open입니다. 모든 것이 열려, 더는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그것을 "세상 끝", "천지개벽", 혹은 "아마겟돈"이라 하며 혹세무민(惑世誣民)합니다. 그들끼리 그리 정한 거니 그들끼리 실컷 가지고 놀라고 그대로 두십시오. 그런 일은 새롭지 않습니다. 언제, 어느 시대나 그런 사람들이 있었고, 추종자들은 언제나 영육(靈肉)간에 착취당해 왔습니다. 언어에 휘둘리지 말고, 휘둘리는 그 당체(當體)가 누구인지에나 관심 두십시오. 그 자리는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엄마 젖을 빨면서 "이것이 없으면 나는 죽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아기는 없습니다. 무위자연(無爲自然) 속에 살기 때문입니다. 비가 내리는 것을 보면서 고마움을 표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심한 가뭄을 겪지 않으면 말입니다. 우리는 그 자리(無爲自然)에 의지하여 일하고, 재산 모으고, 번식하고, 잘난 척하며 살지만, 그 자리를 중히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깨우침 얻기가 그리 어려운 것은 너무나 당연(當然)하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는 알아도, 늘 그 자리 속에서 숨 쉬며 살기는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스승이 있는 사람을 행복하다 하는 겁니다. 그는 늘 그 자리를 상기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구원, 천국, 열반(涅槃) 해탈(解脫)은 모두가 그 자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나그네는 주막에 도착해 자기 허기(虛飢)만 해결하지는 않습니다. 말에게도 넉넉히 먹이를 줍니다. 자기만 밥을 먹고 말을 굶기면, 말이 움직이지 못해 부득이 여정(旅程)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나그네는 리(理)이며, 말은 기(氣)입니다. 소식(消息)을 들었던 수행자들의 대부분이 낙오(落伍)하고 마는 것은 말에게 먹이를 주지 않아서입니다. 여행길에 말을 버리고 갈 수 없듯 이기(理氣)는 일원(一元)입니다. (氣發理乘) 한 소식을 했으면 그다음부턴 필히 氣 공부에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그래야 무난히 공부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