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和光同塵 (568)
谷神不死
자유는 말이나 정책에 있지 않다. 자기를 믿어야 자유롭게 된다. 헛된 믿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자유를 말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믿음은 괴로움(苦)의 원인이다. 그것은 폭력으로 변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비록 사랑과 자비라 할지라도 그것이 강요되는 것이라면 쓰레기와 다를 바 없다. 세상에 믿음처럼 악취를 풍기는 것도 없다. 그것은 자유의 적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믿음을 저울에 올릴 수 없다면, 그것이 이미 고정화되었다면, 당신은 깨달을 수 없다. 주시(注視)하라. 당신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
지혜를 가진 자는 늘 마음 편히 지낸다. 곤궁할 때도 풍요로울 때도... 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근심이 떠나지 않는다. 곤궁할 때도, 풍요로울 때도... 소인(小人)은 외부환경에 좌지우지(左之右之)되지만, 대인(大人)은 곤궁함과 즐거움이 단지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의 평온한 내면은 외부환경에 영향받지 않는다. 하루 중 내면에서 올라오는 즐거움을 느낄 때가 몇 번인가? 단 한번만 느낀다 해도 당신은 大人이다. 즐거움은 내면의 것이므로 가난함이나 부유함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지혜자는 어떤 이유로도 타인을 미워하지 않는다. 단지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일어날 뿐이다. 大人은 큰 재산을 모을 기회가 와도 부정한 방법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 얻은 재산은 늘 가슴 속에 빚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
당신의 바람이 돈과 권력이라면, 그것을 위해 나머지 것들은 내려놓으라.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이 지나간 추억이라면, 새 삶을 짜라. 버스가 떠나면 다음 버스가 오는 법. 지나가 버린 것은 전조(前兆)에 불과하다. 지금 당신에겐 더 큰 것이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존재(存在)의 확인이요, 그것과 함께 하는 멈추지 않는 생명력(生命力)이다.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음과 함께 말이다. 선도(仙道)와의 인연 역시 스치고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 속맛을 보고 보내라. 그처럼 달콤한 것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꼭 해야 할 일은 하지만, 무리하지는 않는다. 세상을 좋은 쪽으로 바라보며 혐오하지 않는다. 과거사에 아쉬움이 없으며, 미래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돈과 명예에 마음을 두지 않고, 나그네처럼 산다. 늘 자성(自性)을 지키며, 관심사는 돌아갈 세상(仙界)에 맞춰져 있다. 늘 깨어서 고요함을 잃지 않고 산다. 일이 마무리되면 미련없이 떠날 것이다. 그것이 인선(人仙)의 삶이다.
나는 누군가가 자성(自性)을 보았다고 자랑할 때 일단 인정한다. 그리고는 그 사람의 언행(言行)을 보아가며 다시 하나 하나 질문해 들어간다. 그러면 그 사람이 처음에 일별(一瞥) 했을 때와 다른 현재의 상태를 알 수가 있다. 돈오돈수(頓悟頓修)를 말하지만, 공부가 담박 끝나는 것으로 나는 보지 않는다. 신통방통한 말을 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는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 질문을 이어가면 감정통제를 못하는 것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끝나도 끝난 것은 아니라는 말이 있다. 그것을 수행에 적용하면 그대로 들어맞는다. 수행이야말로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다. 가고, 가고, 또 가지 않는다면, 확철대오(廓澈大悟)는 멀다. 늘 자기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무슨 일을 하며, 머무르고 있는 곳이 어딘지를 안다면, 내가 어떤 류(類)의 사람인지를 곧 알 수가 있다. 스스로 어떤 것에 가치를 두고 사는지에 대해선 굳이 말을 안 해도 말이다. 하루 중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 정성 쏟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당신의 미래(未來)다. 생각과 믿음이 사물을 끌어오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것이 바로 당신의 가치다. 무슨 옷을 입고, 어떤 집에 살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자기를 바꾸려면 먼저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당신의 일, 만나는 사람, 그리고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르는 장소는 생각이 바뀌면서 자동으로 바뀐다. 하늘은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심는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단전(丹田)은 우리 몸 중앙에 자리하는 에너지(氣)의 핵심입니다. 그곳은 자연과 통하는 선천지기(先天之氣)의 저장고입니다. 지금은 휴면(休眠) 중인 단전을 깨어나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에너지(氣) 부족을 겪지 않고 살게 됩니다. 사람은 기(氣) 막힘으로 병에 걸리고, 氣가 고갈되어 죽습니다. 丹田이 제 기능을 찾게 되면, 건강이 회복되고 불로장생하게 됩니다. 당장 착수해야 합니다. 너무 미루면 깨어나기 어렵습니다. 병 없고 에너지 넘치는 노후를 원한다면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해야 합니다. 丹田呼吸은 복식 호흡과는 다릅니다. 쉽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어렵지도 않습니다. 丹田呼吸에 정통한 선생을 찾아 정성을 쏟는다면, 1~2년의 노력으로 丹田을 활성화시켜 신선(神仙) 반열에 들어갈 수있습니다.
'눈빛만 보아도 안다'는 말이 있고, 몸짓으로도 말할 수 있다. “오늘 좀 거시기한데, 거시기 먹을까?” “거시기 해야 하니까, 거시기 들고, 거시기 앞으로 나오소.” 아침에 스피커에 나오는 동네 이장(里長)의 말이다 대강 무슨 이야기인지 파악이 된다면 이건 어떤가? “부처가 무엇입니까?” “뜰 앞에 잣나무." 상대의 이야기를 알아들으려면 상대와 수준을 맞춰야 한다. "가고, 가고, 또 가면 알게 된다(去去去中知)"는 말도 있다. 말이 안통하면 묻고, 또 묻고, 하면 결국은 알게 된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직접 찾아가 며칠만 같이 공부하면 알아듣게 된다. 선인(仙人)되는 단전(丹田) 공부도 마찬가지다. 성의를 가지고 자꾸 가까이하면 열리게 된다. 몸으로 말해야 빠르다.
다짜고짜 멱살을 잡고, “일러라, 일러라.” 공부처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이겁니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수행이 무르익어 터질 때가 다된 사람이라면 모를까, 일반인에겐 너무 버거운 말이다. 추상적으로 말하지 말자. 상대의 눈 높이에 맞춰 말해야 한다. 수행 길에 나선 많은 사람들이 헤매는 이유는 알아듣기 어려운 추상적인 말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라. 진리(眞理)는 어렵지 않고, 추상적이지도 않다. 깨달음을 위해 신앙에 귀의하거나, 굳이 생업과 가족을 버리고 산으로 갈 필요는 없다. 그것이 우리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가치가 없다. 수행자라 할지라도 역시 생활인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