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和光同塵 (568)
谷神不死
1. 건강 관리 건강을 잃으면 노후가 힘들다. 명상과 운동을 생활화 하라. 2. 자존감(自尊感) 함양 자존감의 결여는 외로움, 우울, 두려움을 가져온다. 자기(自性)가 누군지를 알아채(깨달음)야 한다. 3. 경제적 안정 과소비를 버리고 기초 소비로 만족한다. 남과 비교하는 마음을 버린다. 4. 심도(深度)있는 대화를 나눌 친구나 연인 자기 안의 친구를 찾는 것도 바람직 하다. 5. 잡동사니 정리 나이들수록 버리는 것이 힘들다. 버리는 것에 과감해야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수행을 하려면 세간(世間)의 일들을 잠시 보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리없는 실생활을 위해선 世間의 일처리에도 밝아야 합니다. 삶의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누구에겐 아들이지만, 누구에겐 남편, 자식 앞에선 아비가 되어야 합니다. 기름에서 얻던 동력(動力)을 전기로 바뀌 움직이는 자동차를 하이브리드(Hybrid)라고 부릅니다 수행자도 그때 그때 하이브리드여야 합니다.
유위법(有爲法)이 없으면, 무위법(無爲法)은 없다. 무위법을 깨치기 위해 스승이 필요하다지만... 찾아헤매는 유위법이 없이 어디 가서 옳은 스승을 만날 것인가? 구하고 두드려야 한다. 구하는 자는 얻을 것이요, 문은 두드리는 자에게 열린다. 감나무 밑에 몇 년을 누워 있어야 과연 감 하나가 입에 들어갈까? 무위법만을 숭상하고 유위법을 무시한다면, 백 년을 산속에서 고생한다 해도 손에는 허망함만 남을 것이다. 우선 바른 스승을 알아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것은 무위와 유위를 넘어서 있다.
당신이 네이버 카페 화도(선도연맹)에 가입하려 한다면 나름대로 목표를 가져야 한다. 첫째, 단순히 깨달음과 소주천을 이론적으로 알고자 한다면 올려진 글들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 둘째, 자성(自性)을 깨우쳐 건강하고 자유롭게 살기를 원한다면 고요함(入靜) 수련에 참여할 수 있다. 그것은 강화에서 Off- line으로 진행한다. 셋째, 단전을 열고 소주천까지 진행코자 한다면 간단치는 않다. 최소 주 1회 개인지도(태극권)를 받아야 한다. 지도는 회장 만정암의 감독 하에 자격있는 사범이 진행한다.
마음의 바닥에 깨달음(깨닫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술을 마시고, 여인과 함께 있어도 그는 선인(仙人)이고, 마음의 바닥에 색욕(물질 우선 주의)만이 자리잡아 있으면 명상, 참선(參禪)을 일 삼고 산다 할지라도 그는 속인(俗人)이다. “아차, 또 속았네” 하면서 즉시 마음을 추스릴 수 있으면 그는 도인(道人)이고, 말로만 ‘내가 부처’라고 자만(自慢)한다면 그는 무도인(無道人)이다. 도(道)말고 과연 이 세상에 다른 얻을 것이 있는지 살피고 또 살피라. 남들도 그리 사니 나도 그리 살겠다 하지 말라. 그들이 좋다고 불구덩이로 들어간다고 따라 들어갈 것이냐?
말과 글만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면 실수할 수 있다. 행동이 따르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기(詐欺)이다. 누구로부터 인정받아야 하는가? 평가는 그 부분에 정통한 사람으로부터여야 한다. 누가 나를 몰라본다고 해서 마음 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 사람의 한계이다. 사람을 평가하려면 그 사람의 정신세계를 들어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행동으로 옮기는가(다소 손해가 난다 할지라도), 또한 얼마나 타인들의 어려움에 관심이 기울이는가를 알아보아야 한다. 사라질 것들엔 조금만 마음을 주어도 된다. 사라지지 않을 것을 매일 갈고 닦아야 한다. 지혜자는 타인의 평가에 연연치 않는다. 오직 지혜에만 마음을 쏟는다.
명상(冥想)이란 생각을 끄는 행위입니다. 생각을 멈춰야 의식의 방향을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편해지기 위한 목적만은 아닙니다. 신앙단체의 명상은 그들 식대로, 생각을 그들 좋은대로(비관적)으로 조정합니다. 그것이 그들이 사업(영업)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어느 쪽으로도 바꿀 수 있습니다. 그것 것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특권입니다. 변속기 레버를 중립에 두어야 자동차 방향을 전진에서 후진으로 바꿀 수 있듯이 우리 생각을 바꾸려면 생각을 멈춰줘야 합니다. 자기를 낙관적인 사람으로 만들지, 비관적이 되게할지는 자기의 선택입니다. 자동차의 방향을 운전사 마음대로 바꾸듯이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 마음이고, 마음의 기능입니다.
'깨달음'이 세수하다 코만지기보다 쉽다는 말이 있듯, 단전(丹田) 호흡도 마찬가지입니다. 번뇌 망상에 시달리고 있다면 백날을 다리 꼬고 앉아있다 할지라도 깨달음의 갈피조차 잡지 못하듯이, 丹田 활성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을 물가까지 끌고 갈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돈과 권력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사람을 단번에 깨달음으로 이끌 수 없듯이 단전 살려내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중 얼마나 깨달음에 마음 쓰고 사는지, 얼마나 의수단전(意守丹田)에 성(誠)을 다하는지 스스로 살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당신 자신의 미래입니다. 아무도 대신 신경 써줄 수 없으며, 아무도 대신 공부해줄 수 없습니다. 선도(仙道)는 이론이 필요 없습니다. 먼저 丹田부터 열고 이야기 해야 합니다. 오죽하면 불문(佛門)..
불가(佛家)의 공부가 사념처(四念處)라면 선가(仙家)의 공부는 의수단전(意守丹田) 하나로 집약된다. 丹田 意守는 자연스런 사념처(身受心法) 공부이기 때문이다. 깨달음 공부의 어려움이 일념(一念)이듯이 선도(仙道) 공부는 丹田이 Open되어야 한다. 一念이 견지(堅持)되면 깨달음은 저절로 오듯이 단전(丹田)이 활성화 되는 순간 仙道공부는 순풍(順風)을 얻게 된다. 불도(佛道) 공부와 仙道 공부는 낙처(落處)가 다르다. 불도는 윤회(輪迴)도 끊긴 완벽한 소멸(涅槃)이 목표지만, 선도는 생사(生死)를 초월한 신선(神仙)이 되어 만락(萬樂)을 누리는 것이다. 어느 것이 더 좋은지는 말할 수 없다. 단지 당신의 선택일 뿐이다.
단전호흡을 하려면 먼저 단전(丹田)을 깨어나게 해야 합니다. 복식호흡을 단전호흡이라 해서는 안 됩니다. 丹田없는 선도(仙道)는 선도가 아닙니다. 당신이 40세라면 당신의 丹田은 가동되지 못한지 40년 된 것입니다. 상당한 각오가 없이 丹田은 열려주지 않습니다.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론 헛수고입니다. 전심전력을 한다면 6개월 정도 노력으로 가능합니다. 단전이 열리면 몸과 마음에도 힘이 붙습니다. 쓸데없는 번뇌 망상에 시달리지 않게 됩니다. 사는 것 같이 살게 됩니다. 집중력이 크게 향상됩니다. 에너지(氣) 운용이 한결 수월해집니다. 견성(見性)과 소주천(小周天)이 눈 앞에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