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和光同塵 (568)
谷神不死
사람에게 '자유의지(自由意志)가 없다'는 말은 '이성(理性)이 없다'는 말과 비슷합니다. Youval N. Harari라는 유대인 교수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설(說)은 기독교가 만든 신화(神話)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그 누구도 인간의 죄를 벌해서는 안 되며, 神이라 할지라도 그를 지옥에 보내서는 안 됩니다. 자유의지는 神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을까요? 잘라 말하여, 그 길은 오직 견성(見性), 즉 깨달음뿐입니다. 깨닫기 위해선 생각을 모두 내려놓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은 경전(經典)을 외우거나 명상(冥想)만을 통해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깨달음을 원한다면 당신이 가진 모든 선입견을 내려놓고 깨우침을..
나는 복을 많이 타고난 놈이다. 아버님 같은 이동현 선생님을 비롯하여 봉우(鳳羽) 선생님, 북경체대의 장문광 교수님, 홍콩 경찰의 무술사범(태극권)이셨던 조 선생님, 뉴욕의 김 선생님, 그리고 나에게 소주천을 열어주신 김교일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인사동서 국내 최초로 태극기공과 태극권을 가르치는 조그만 도관(道觀)을 열었던 시절, 꽁지머리에 날렵한 몸의 50대 남자(김교일)가 찾아왔다. 저녁으로 막걸리를 대접했는데, 대뜸 "민 선생은 아직 소주천(小周天) 전이요, 내가 도와드리겠소."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한편으론 창피스럽기도 하였지만, 90도로 허리를 굽히고는 "잘 부탁합니다"하며 가르침을 청했다. 그날부터 6개월간 매일 오셔서 빡세기 짝이 없는 태극용호공(太極龍虎功)과 함께 소주천을 직접 몸..
나에게 "너는 어찌하여 선도(仙道)를 선택하였는가?" 묻는다면 운명적이라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그것은 마치 이과(理科)의 사람에게, "당신은 어찌하여 골치 아픈 수학을 재미있어하는가?"라고 묻는 것과 같다. 수행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바로 자성(自性)을 깨우치려 시도하는 공부법이고, 다른 하나는 일단 에너지(氣) 공부를 통해 본래면목(本來面目)과 계합(契合)하는 공부다. 자아(自我) 탐구하는 법도 여러 가지가 있으며, 에너지(氣) 수련법도 그 갈래가 수없이 많아, 문파별로 자기들이 하는 수행법이 으뜸이라고 하지만, 문외한이 볼 때는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그렇다면 세상엔 왜 수많은 수행법이 있는가? 그것은 각기 다른 많은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Mantra..
스승은 제자가 필요하고, 제자 역시 필요에 의해 스승을 만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스승에겐 제자가 필요하지만, 제자는 스승의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된다. 스승이 가진 것을 모두 나누어 주어 얻을 것이 점점 없어지기 시작해 나중엔 그에게서 더 이상 얻을 것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럴 때, 스승은 빨리 눈치를 채고 제자에게 "더 이상 줄 것이 없으니 이제 내 곁을 떠나거라" 하거나, 아니면 자기가 그 자리를 선선히 떠나줘야 한다. 그리되었을 때 스승과 제자의 좋은 관계는 영원히 지속된다. 하지만 그리되지 못하면 스승과 제자는 원수처럼 된다. 이것이 스승과 제자의 묘한 관계다. 하지만 스승도 공일만은 아니다. 스승은 언제나 제자의 몇 m 앞을 달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깨달음을 회복했다 할지라도, 단번에 세간(世間)을 떠나 출세간(出世間)에 안주하는 일은 쉽지 않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껴지는 것이 비록 무상(無常)하고 꿈같은 일임을 잘 알고 있다 할지라도, 세간의 감각적 재미를 완전히 포기한다는 것이 그리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백장야호(百丈野狐) 이야기가 있다. 전생(前生)에 나름 한소식을 했었던 한 도인(道人)이 하루는 백장을 찾아와, "대수행인(大修行人)은 인과(因果)에 떨어지지 않느냐"는 학인(學人)의 질문에, "떨어진다(不落)"라고 잘못 대답하여 500생 여우 몸을 받았다며 백장의 바른 답을 구했고, 그것에 단지 "어둡지 않다(不昧)"는 말로 간단히 해결해 주었다는 무문관(無門關)의 글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지만, 내면에 진보..
태극권(太極拳)을 중국의 것이라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오래전 白頭山(長白山) 신선(神仙)들로부터 전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미국처럼 합중국(合衆國)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문화 역시 거의가 타민족으로부터 흡수된 것입니다. 중국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두 개의 신령(神靈)한 山이 있습니다. 하나는 장백산(白頭山)이고, 하나는 곤륜산(에베레스트) 입니다. 지금 그들은 두 산을 모두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아시다시피 30만 이상의 중국군을 잃고(마오쩌둥 아들도 전사) 반쪽을 얻었고, 하나는 티벳을 이유 불문 침략해서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세계로부터 비난을 받아도, 그들에게는 그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종종 태극권 앞에 中國이란 글을 붙여 씁니다. 중국의 것이라 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런..
몸과 마음은 에너지(氣)에 의존하여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에너지가 부족치 않도록 늘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에너지가 약해지면 심신(心身) 역시 쇠잔(衰殘)해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란 에너지가 끊어진 상태입니다. 에너지가 끊기면 심신의 모든 작용이 정지합니다. 뿐만 아니라 진여(眞如)도 사라질지 모릅니다. 그 것은 Battery가 Shutdown되면 모든 전자기기 작동이 정지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범죄하는 그 영혼(soul)이 죽으리라(에스겔 18:4)." 그들이 말하는 自性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단지 에너지에 의존해 존재했던 연기체(我相)이기 때문입니다. 선도(仙道)에서 원기(元氣)를 일깨우고 연단(鍊鍛)하는 이유는 진여(眞如)의 영존(永存)을 도모하기 위함입니다.
금강경(金剛經)을 연구하신다는 유명한 분이 계십니다. 그는 방송에 출연하여, "여인을 보고 음심(淫心)을 품는 것조차 불사음(不邪淫) 죄에 해당한다"고 하시면서, 소싯적 몸 파는 여인의 손이 몸에 닿았을 때 흡사 뱀이 스치는 것 같았다는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그 경험을 할 즈음, 그는 장교가 되는 군사 훈련을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국민(國民)으로서 국방의 의무가 우선이라는 것은 상식이지만, 그것이 혹시 불살생(不殺生)의 계(戒)를 범한 것은 아니었는지 궁금합니다. 군인(軍人)이 되면 유사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죽이라고 명령을 할 수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범소유상개시허망(凡所有相皆是虛妄)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등 금강경의 말씀을 그분은 어떻게 적용하고 ..
세간(世間)을 떠나서 도(道)를 논(論)한다면 반쪽짜리 견성(見性)입니다. 체험이 없는 미사여구(美辭麗句)는 사상누각(砂上樓閣)입니다. 이 몸과 숨을 무시하는 견성 역시 반쪽짜리 깨달음입니다. 에너지를 모르고 깨어있음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이 그 자리 생명(生命)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에고는 버릴 수도, 죽일 수도 없습니다. 이 몸과 마음을 지니고 있는 한,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내가 담배를 피워야 하고, 술을 마셔야 합니다. 담배가 나를 피우고, 술이 나를 마시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말과 문자, 그리고 논리(論理)가 나를 굴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경전(經典)이라 할지라도 내가 굴릴 수 있어야 바른 경전입니다. 눈이 열려야 합니다. 혜안(慧眼)이 열리지 않고는 그 무엇도 불가능한 ..
깨달음이 없는 수행은 수행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주소 없이 서울 김 서방을 찾는 것이다. 손에서 책을 내려놓아라. 책은 많이 읽을수록 망상에서 벗어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시작점에 한 끗발만 어긋나도 도착점에 가면 그 오차가 감당키 어려울 만큼 벌어진다. 믿을만한 스승 문하에 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길을 한번 잘못 들어서면 간 만큼 되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돈오돈수(頓悟頓修)냐 돈오점수(頓悟漸修)냐로 다툴 뿐, 수행이 먼저라는 생각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지금 당장 깨달을 수 있다. 깨달음은 수행이 필요치 않고,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당신은 이미 깨달아 있다는 말은 아무리 해도 부족하다.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당신에게 깨달음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깨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