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和光同塵 (572)
谷神不死
미신(迷信)이란, 글자 그대로 미혹(迷)하게 하는 믿음(信)입니다. 이치 없이 믿는 것은 모두가 미신입니다. 그런 것은 그냥 말로 흘려버릴 수 있어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관상불여심상(觀相不如心相)'이라 하였으며, 마음 다스림 용심(用心)이 최선이라 하였습니다. 사주, 관상, 성명학, 풍수는 단지 마음 작용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 밝은 사람은 그런 것들을 신봉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장소와 사람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것이므로 믿고 따를 것이 못 됩니다. 세세토록 변치 않는 진면목(眞面目), 자성(自性)을 찾아 지녀야 합니다. 믿을 것은 오직 실재(實在), 즉 현실(Reality)뿐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어려운 질문이 "왜 사느냐?"라고 한다. 자기가 "살아가는 제일의 가치"에 대한 물음일 텐데,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 밝히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혹자는 자기의 가치가 현 체제와 맞지 않아 그것을 말하면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여 꺼린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다면 그 사람은 분명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으로 분류해도 될 것이다. 가치관이 없이 남이 하는 대로 그냥 따라 사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자기 가치관이 뚜렷하지 못한 사람은 타인에 대한 이해도 빈약할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일수록 자기 의견은 내지 않고 그냥 비판 없이 남의 말을 따라 살게 마련이다. 깨어있는 삶이란 뚜렷한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다는 것이며, 그것에 기초한 가치 기준이 서 있다는 것이다.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소신 있는 삶...
"지금 여기"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것을 깨어있음이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지금 여기"를 놓치고 산다. 그 이유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온통 빨간색 가운데서 빨간색을 찾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 여기"라 했을 때, 지체하지 말고 바로 "지금 여기(Here & now)"로 들어서야 한다. 생각을 굴리면, 순간에 몇백 리 밖으로 물러난다. 빨간색을 찾으려 하지 말고, 빨간색 알아보는 놈 쪽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지금 여기"이다.
깨달음은 낭만(浪漫)이 아닙니다. 깨달음은 현실(現實)을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깨달음은 판타지(fantasy)가 아닙니다. 깨우침에서 초월적인 것, 환상적인 것을 찾지 마십시오. 깨달음은 시끌벅적한 난장(亂場)입니다. 깨달음은 꿈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서적이지도 않고, 이상적이지도 않습니다. 깨달음은 피가 철철 흐르는 전쟁 마당입니다. 깨달음은 추억이 아니고, 미래도 아니며, 현실 자체입니다. 죽은 이야기, 곰팡이 냄새나는 베껴온 이야기는 그만 하세요. 한 치만 벗어나도 딴 동네서 놀게 됩니다. 깨달음은 지금 여기에 살아 펄펄 뛰는 "이것"입니다.
석가의 첫 출가(出家) 동기는 견성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질병과 죽음을 본 후,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목적으로 지위를 버리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 후 수많은 공부 여정(旅程)과 스승들을 통해 Samadhi(定)야말로 평화를 주는 길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요새 말로 명상(冥想)입니다. 그러나 최고봉(滅盡定)까지 힘들게 올랐지만, 일시적 평화를 줄 뿐, 지속적 안정(安定)을 가져오지는 못했습니다. 다시 그는 히말라야에 올라 수년간의 고행(苦行)으로 몸을 혹사했지만, '혹시나'는 '역시나' 였습니다. 결국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샛별을 보고 깨쳤다고 역사는 전합니다. 혹자는 그동안 쌓은 수많은 공덕이 보리수나무 아래서 단번에 꽃 피웠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말도 물론 일..
2019년은 한국에게 특별한 해이다.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기는 해라는 것은 정신개벽(精神開闢)의 시금석(試金石)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물질보다 마음이, 건강이 더 중요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내심(內心)은 다르다. 그들의 마음속엔 무엇보다 돈이 최상위에 자리하고 있다. 생활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3만 불의 시대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최소한 먹고 입는 문제로부터는 벗어난다는 뜻이다. 상당히 가슴 벅찬 일이지만, 반면에 부정적인 측면도 피할 수는 없다. 나태함도 나타날 것이고, 알코 중독이나 자살률도 늘어 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에 국한할 것이다. 사람들은 비로소 위장된 자기보다는 정체성(正體性)에 관심을 돌리게 되고, "나는 누구인가?" 하는 명..
세상에 종교(宗敎)가 이렇게 많은 것은 각기 다른 생각(敎理)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성교단에서는 신흥교단을 이단(外道)이라고 폄하하지만, 신흥교단 역시 기성교단이 경전(經典)대로 따르지 않는다 하여 역시 이단(異端)이라고 부릅니다. 종교개혁 이후 일어난 신교(新敎)는 그 후에 일어난 교단들을 이단(外道)이라 핍박하지만, 新敎 역시 舊敎(가톨릭) 입장에선 이단이며, 나아가 예수 역시 유대교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단이기는 매일반입니다. 그런 일은 불교(佛敎)에도 동일합니다. 근본불교(Theravada)는 대승(大乘)불교의 경전들을 부처님 말씀이 아니(非佛說)라 하여 논외(論外)로 하고 있으며, 대승불교 역시 근본불교를 소승(小乘)이라 부르며 폄하합니다. 근본불교, 대승불교 그리고 티벳불교로 불교가 세 ..
"道에 이르기는 어렵지 않다(至道無難)"는 말이 있습니다. 깨우침을 얻은 분의 명징(明徵)한 말씀입니다. 함께 공부를 하는 분 중에 상대성이론의 연구가이신 물리학 박사님이 계십니다. 명문대 교수이셨던 그 분은 지금 3개월에 運氣(小周天) 공부 마치는 연구를 하시고 계십니다. 혹시 의념주천(意念周天)이라면 모를까, 10년도 더 걸리는 사람이 많은데 말입니다. 그분의 주장은 "세상은 변했다. 과거 무지(無知)했던 시절엔 자동차 운전 하나를 배우기 위해 고생 고생하며 10년을 조수로 따라다녔다. 그러나 지금은 한 달이면 면허까지 받을 수 있다"입니다. 그렇다면 개벽(開闢; Open & Open)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3개월 견성(見性)은 전혀 도전하지 못할 일도 아니지 않겠습니까? 오래된 말 중에 "上才는 ..
"생겨나지 않아야 사라지지도 않는다." "생자(生者)는 필멸(必滅)이다." 참으로 멋스런 말이기는 합니다만, 그런 것을 가리켜 희론(戲論)라 합니다. 생겨난 것 같아도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요? 이미 생겨났는데 그런 말들이 무슨 소용인가요? 태어났으니 한번 아름답고 멋지게 살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길이 있다면 한번 찾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밑져봐야 본전이지 않습니까?
"상상(想像)하라. 그러면 이루어질 것이다." 달콤하지만 실망을 줄 수도 있는 말이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이루어진 것으로 믿으라. 그러면 그리될 것이다." 예수의 말이다. 하지만 상상(visualization)한다고, 그리 믿는다고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여러 가지 조건들이 협업(collaboration)을 이루어야 한다. 그중 하나만 부실해도 원하는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조건들 중 으뜸은 단연 이완(relaxation)이다. 그리고 그것은 몸과 마음 양쪽에 동시에 이루어져야 헌다. 문은 두드린다고만 열리지 않는다. 비밀번호를 알면 아무 걱정이 없다. Amen Hallelujah만을 외친다고 만사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열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