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和光同塵 (568)
谷神不死
행복은 뒤로 미루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행복하지 못하면, 내일 행복할 수 없습니다. 늘 낙천적으로 생각하며 사세요. 낙천은 타고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몫의 수련은 오늘 해야 합니다. 오늘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이 기회입니다.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한적한 곳에 막걸릿집이 있었고, 그 집 벽에는 "오늘은 현찰, 내일은 외상"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한 주객(酒客)이 주모(酒母)에게 "오늘은 현찰을 낼 테니, 내일은 정말 외상 주는 거지?"라고 묻자, 똑똑한 주모는 "거야 내일이 되어봐야 알지"라고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오늘을 즐기며 사세요. 내일은 가상(假像)입니다.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깨달음을 사모하고, 에너지(氣)의 중요성을 깨친 사람 1%만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개벽이라 하며, 열 개(開), 열릴 벽(闢)이라 씁니다. 개벽은 세상을 망하게 하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닙니다. 개벽은 세상을 살리기 위해 있습니다. 개벽은 사악(邪惡)한 신앙단체의 교세(敎勢) 확장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개벽은 신앙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먼저 신앙부터 내려놓아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더 이상 속지 않습니다. 신앙은 그 뿌리에 이기주의와 폭력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깨달음과 무한한 에너지를 함께 닦아야 사랑과 평화, 그리고 번영을 동시에 누리게 됩니다. 그리되어야, 나누어도 나누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재물과 권력이 깨달음보다 더 중요한 사람을 중..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알고 싶은 것만 알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어 있다.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동일하게 진행된다. 자본주이냐 사회주의냐, 개인소득중심경제냐 전체소득중심경제냐, 수구(守舊)냐 개방(開放)이냐 등등 말이다. 그것은 신앙(信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기독(基督)을 말하자면 구교(舊敎), 신교(新敎), 불도(佛道)라면 상좌부(上座部), 대승(大乘) , 아니면 선불교(禪佛敎), 이슬람이라면 시아파, 수니파로 나누어 이견(異見)이 분분하다. 사람은 완전한 깨우침을 얻기 전에는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도록 구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열반(涅槃)과 해탈(解脫)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자. 이 사안(事案)은 전에도 다룬 적이 있으나, 엄연히 다른 두 단어의 의미..
선도(仙道)에는 금기사항(계율)이 없다. 술, 담배도 끊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단, 담배가 나를 피우고, 술이 나를 마시게만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왜 우리는 술 담배를 멀리하지 못하는가? 가슴 속에 생긴 아쉬움 때문이다. 그것은 돈으로도, 벼슬로도, 명예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 아쉬움을 채울 수 있는 길은 밝음, 즉 견성(見性) 뿐이다. 밝음을 얻은 사람은 자기가 주인으로 산다. 결코 심심해서 담배 피우고, 마음을 달래려 술 마시지 않는다. 그는 아쉬운 것이 없으며, 심심하지도 않다. 특별한 사람만 그리되는 것은 아니다. 당신도 깨달으면 곧 그렇게 될 수 있다.
치매에 제일 좋은 치료법(약)은 운동이다. 운동은 근육만 살려내는 것이 아니다. 뇌에 충분한 산소를 보내고, 뇌를 젊게 만드는 호르몬을 생성한다. 젊은이에게는 그들의 운동이 있고, 시니어(seniors)에게는 시니어의 운동이 있다. 노인에게는 기록경기나 승부를 다투는 운동이 적합하지 않다.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부상으로 오래 운동을 못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태극권을 권한다. 움직이는 명상(禪)이라 불리며, 노약자에게 그것보다 더 좋은 운동은 없다. 하지만 젊은이에게도 쉬운 운동은 아니다. 일반 운동과 달리 에너지를 살려내는 디테일이 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을 동시에 살려내는 특징이 있으며, 서양에서도 유행한다. 세계선도연맹에 오면 누구에게나 개인지도를 해 준다.
어설프게 마음공부를 한 사람의 병폐는 무엇이나 두루뭉술하게 생각하려 하고, 그렇게 말하려는 경향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른 식견(正見)이 아니며, 깨어있음 역시 아닙니다. 그것을 무기공(無記空)에 빠졌다고 합니다. 見性을 했다고 '술에 술 타고, 물에 물 타는 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역시 둥근 것은 둥글고, 세모난 것은 세모나며, 부처는 부처고, 중생은 중생입니다. 분별심이 없어졌다는 것은 쓸데없는 머리를 굴리지 말라는 것이지, 대강 얼버무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더러는 면도날보다 더 날카롭고, 청양고추보다 더 매울 수 있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역시 하늘은 하늘이고, 땅은 땅이지만, 그것에만 집착하지 않고 사는 것, 그것이 깨달음의 속성입니다.
'조현병'이란 2010년 3월 이전에는 '정신분열증'이라 했는데, '분열(分裂)'이란 단어가 부정적 의미가 크다는 이유로 대한의사협회에서 개명한 것이다. 조현(調絃)이란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뜻으로, 조현병은 현악기의 줄이 너무 느슨하거나 팽팽해져 원하는 소리를 낼 수 없는 상태에 빗대어 말한 것이다. 현대의학에서는 뇌(腦)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판단해 정신과적 약을 처방하지만, 사실 자기 마음을 알아채기만 하면 쉽게 해결되는 병이다. 마음은 내가 아니며, 우리에겐 우리 마음을 바라보는 '주시자(注視者)'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은 보통 때는 있는 듯, 없는 듯 하다가 마음을 가라앉히면 조용히 드러난다. 그 주시자가 우리 본래면목(本來面目)이며, 주시자가 활성화 되면 자기 마음을 자기가 조절할 수가 있..
싯다르타는 완벽주의자였다. 그래서, 고생을 벗어나려면 그를 따라 비구(比丘)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인생은 고생, 영원한 안정은 없다. 모든 만족은 모든 불만족을 필연적으로 동반하며, 지금의 만족도 결국은 고통으로 변한다." 그것이 그가 주장한 일체개고(一切皆苦)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의 주장, "고(Suffering)의 근본적 해결은 무(無)로 돌아감 밖에는 없다" 그 말에도 일리(一理)는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석을 달든, 열반은 빈대 한 마리 잡자고 초가삼간을 모두 태우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해탈(Moksha)이지, 열반(Nibvana)이 아니다. 열반(涅槃)은 소멸(blowing out; extinguish), 즉 생명의 불이 꺼져 흔적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을 가리키기 때..
농사지을 때, 원하는 만큼의 수확을 위한다면 충실한 밑거름이 필요하다. 수행도 마찬가지다. 수행자에게 밑거름은 몸의 관리다. 효과적 외단공(外丹功)을 배워 기(氣) 흐름(機通)이 잘되도록 해야 한다. 氣 흐름이 불량하면 고도의 수련을 몸이 이겨내지 못해 심각한 부작용이 생긴다. 심폐(心肺)에 문제가 생겨 氣의 난조나 상기병(上氣病)이 생길 수 있다. 특히 움직임과 호흡의 콤비네이션이 중요하다. 그것을 통해 단전(丹田)의 활성화가 되고 소주천(小周天)의 기초가 마련된다. 氣 흐름과 축기(蓄氣)에 효과적인 태극기공(太極氣功)을 권한다. 태극기공은 태극권에서 무술적인 요소를 줄이고, 축기를 강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