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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본질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외롭고 우울하고 불안한 것은 현상(現象)을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현상은 무상(無常)합니다. 그것은 수시로 변합니다. 그것은 잠시도 우리를 안정시키지 않습니다.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모든 현상은 그림자와 같습니다. 일어났는가 하면 꺼져버리고, 있는가 하면 곧 사라집니다. 하지만 모든 현상은 본질(本質)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본질을 찾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삶은 늘 편안하고 감사가 절로 납니다. 날마다 좋은 날입니다. 그렇게 살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현상만을 쫓는 삶은 허탈합니다. 그것은 순간적인 만족 밖에는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선지자(先知者)들은 인생을 온통 고통(一切皆苦)이라고 말합니다. 현상을 잠시 미루어두고 본질을 찾아가는 것을 수행(修行..
세상이 많이도 변했다. 명상(冥想)을 주제로 박람회(주최: 조계종. 11/14~17. 강남구 SETAC)까지 한다니 말이다. 그러나... 하기로 한다면 명상이 주제가 아니라 "깨달음"을 주제로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거기엔 40년을 명상했다는 외국인 의사가 출연하여 마음 챙김과 자기 연민을 지도한다는데... 덧글을 보니 무례하지만 "무슨 명상을 따로 배워?" "교습료 3만 원으로 고기나 사 먹지"라는 안티(anti) 댓글도 달렸다. 물론 명상이 필요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마음 챙김이 어렵고 자기 연민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렇게 빙빙 돌아갈 정도로 시간이 많지 않다. 직지인심(直指人心)! 주제로 바로 질러 들어가야 한다. 명상에 대한 정보라면 박람회를 가지 않더라도..
라는 말은 너무 용감하다. 자기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며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존재감을 느끼고 산다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것 역시 하나의 관념(觀念)이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존재감이 진아(眞我)이다"라고 말하기에 앞서, 그 존재감이 어떤 도덕관(道德觀)을 가지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속단(速斷)하기 전에, 그것이 어떠한 선악(善惡) 개념을 가졌는지, 또한 펼쳐지는 대상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觀)으로 대처하는지 숙고해 보아야 한다.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그냥 "나"라는 것은 존재감이라고 쉽게 규정해 버리거나,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놈을 대략 '진여자성(眞如自性)'이라는 주장하는 것은 곤란하다. 본래면목(本來面目)은 볼 수도,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
자성(自性) 자리로부터 만물(萬物)이 나오고, 만사(萬事)가 이루어지고, 마무리된다면, 우리는 그 자리를 무엇이라 생각하고 불러야 옳을까? 그냥 순수의식(純粹意識), "참나"라고 알고만 넘어가도 될까? 단순히, "그런 게 있어. 그 자리에만 들어가면 편안해지고, 자신감이 생겨"라고 말하면 그만일까? 지금 그 자리를 보고 살고 있다면,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우리는 무엇을 가리켜 하느님, 하나님, 성령(聖靈), 혹은 상제(上帝)라고 부르는가? 만물이 그곳으로부터 나오고, 만사가 그것의 허락하에 이루어지고, 마무리되는, 알 수 없는 그것을 가리켜 그렇게 부르지 않는가? 그렇담 그 본래면목(本來面目) 자리를 무엇이라 불러야 옳을까? 그 자리를 깨우쳤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당신이 그 자리를 어..
많이 안다고 스승이 되는 것은 아니요, 깨달음을 얻었다고 모두 스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제자란 자신을 비우고 스승 아래 공손히 엎드리는 사람이며, 스승이란 자기의 깨달음을 쉽게 풀어 실감나게 전해주는 사람이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도 코드(code)가 맞아야 한다. 아무리 道가 높은 스승을 시봉(侍奉)하며 살아도, 코드가 맞지 않으면 50년이 지나도 깨닫기 어렵다. 임제(林悌)는 황벽(黃蘗)에게 의탁하여 3년을 지내며 깨달음을 구했으나 실컷 얻어 맞고 그를 떠났다. 그러나 대우(大愚)를 찾아 가서 "너의 스승이 너의 깨우침을 위해 얼마나 성의를 다했는지를 그렇게 모르겠느냐? 이 철없는 오줌싸개야!" 소리에 퍼득 깨달았다. 예나 지금이나, 세간(世間)이나 출세간(出世間)이나, 일을 이루려면 상호 코드가 ..
"오직 예수"라는 피켓을 보고 불편하거나 반감이 일어난다면 당신은 깨닫기 어렵다. 그 피켓대로 "오직 예수"의 심정(心情)이 되는 순간 당신은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가 되었을 때 이 세상에 무엇이 남을까? 거기에 오직 예수인들 남을 것인가? 세상도 사라지는데 거기에 예수는 남아 무슨 소용인가? 그러나 분명히 하나 남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무엇"이다. 그것이 바로 자성(自性), 즉 본래면목(本來面目)이다. "예수 천국"이란 말처럼, 그때 당신은 천국에 살게 된다. "불신 지옥"도 마찬가지다. 이 간단한 이치를 깨우치지 못한다면 당장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 진실(眞實)을 모르는 채, 여태껏 지옥에서만 살았었지만 말이다.
깨어있기만 하면, 바로 '성령(聖靈)'이 임한다. 당신은 성령으로 뭉쳐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깨어나기만 하면, 당신은 당신의 본체(本體)가 '성령'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당신이 다른 생각, 즉 돈, 권력, 명예를 생각하고 있는 동안은 성령의 발현이 가려진다. 성령은 당신이 순수했을 때 나타난다. 깨끗한 마음으로 "오직 예수"를 찾아보라.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은 순수해지기 시작하고, 바로 성령이 체험된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있을 때 유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 앞에 절을 하며 숭배를 바쳤다. 그것은 하느님을 크게 노하게 하는 일이었다. "오직 예수"를 통해, 십자가가 아니라 심령을 가난하게만 하면, 하느님이 크게 기뻐하셔서 성령을 내리신다. 거창한 건물을 짓고, 떼로 ..
로마에 본부를 둔 한 신앙단체는 신도(信徒)들에게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라고 말하라고 가르친다. 맞는 이야기다. 부모 잘 만난 것도 내 탓이요, 학교 잘 다닌 것도 내 탓이요, 배우자 잘 만난 것도, 효자 자식 둔 것도 모두 내 탓이다. 그런데 가슴 두드리던 신자(信者)들이, 진짜 일이 잘 안 되는 것을, 배우자가 대드는 것을, 세상이 이리 어지러운 것을 내 탓이라고 과연 생각할까? 그것은 잘 모르겠다. 정말 맞는 말 아닌가? 내가 없으면 예수도, 석가모니도, 세상도 없지 않은가? 한 덜떨어진 부자 아비가 있었다. 하루는 자식들을 불러, "너희들이 이렇게 호의호식하고 사는 게 모두 이 아비 잘 둔 덕인 줄 알아라"라고 말했다. 그 말은 들은 오빠와 언니는 아버..
담 너머 은행나무 잎새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을 보면 "바람이 분다는 것"을 아는 법이고, 아침에 암탉이 "꼬꼬댁"거리면 "알을 낳았는가?"하고 둥지를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고, 으슬으슬 춥고 콧물이 나면 "감기 걸렸는가?" 하는 것이 보통이다. 깨달음 마당에서 체험을 유난히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깨우침의 '예고(preview)'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존재감을 알게 된 사람에게 "깨달았구나!" 할 수는 있으나, 무엇이 되었든 간에 체험이 없다면 의심을 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가 깨달아 있다는 것은 틀림이 없으나, 너무나 오래 눈 못 뜨고 살아온 처지들이라 아주 사소한 체험이라 할지라도 큰 힘을 얻는 법이다. 선지식(善知識)이 학인(學人)에게 "견처(見處)를 ..
먼저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세상 모두가 내 품속에 들어옵니다. 깨달음이 있으면 '육바라밀(六波羅蜜)'이 무엇인지 몰라도, 저절로 베풀게(① 布施) 됩니다. 또한 법을 지키게(② 持戒) 됩니다. 악법(惡法)이라 할지라도 현행법(現行法)을 지키고, 독재자라 할지라도 그를 무시하거나 헐뜯지 않고 조용히 그를 받아줍니다. 투표는 국민이 하지만 王은 하늘이 낸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의 통치 방법이 하늘의 뜻에 거슬린다면 하늘이 알아서 갈아 치울 것입니다. 여태껏 그래 왔습니다. 요즘은 에너지를 너무 엉뚱한 데 낭비하는듯합니다. 그리하지 마십시오. 물론, 살자면 많은 인욕(③ 忍辱)이 필요하지만, 독재자 밑에 사는 것처럼 참을성이 필요한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는 세상이 어찌 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