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나'라는 존재감 본문
자기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며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존재감을 느끼고 산다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것 역시 하나의 관념(觀念)이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존재감이 진아(眞我)이다"라고 말하기에 앞서, 그 존재감이 어떤 도덕관(道德觀)을 가지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속단(速斷)하기 전에, 그것이 어떠한 선악(善惡) 개념을 가졌는지, 또한 펼쳐지는 대상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觀)으로 대처하는지 숙고해 보아야 한다.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그냥 "나"라는 것은 존재감이라고 쉽게 규정해 버리거나,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놈을 대략 '진여자성(眞如自性)'이라는 주장하는 것은 곤란하다.
본래면목(本來面目)은 볼 수도,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감각의 세계로는 도무지 표현하기 난해한 언어도단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려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때 드러나는 것이 '자성(自性)'이다.
금강경에 나오는 <'모든 것이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우쳤을 때'가 진정한 깨달음이다>라는 의미의 '약견제상비상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卽見如來)'라는 가르침, 곱씹고 백번만 또 곱씹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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