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虛其心 (212)
谷神不死
엉거주춤 살지는 말자.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며 살자. 최소한 자기가 누군지는 알고 살자. 세상엔 뒤로 미룰 일이 있고,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지금 여기 실재(實在)에 대하여 우선 생각하자. 검증이 불가능한 윤회나, 천당 지옥이나, 귀신의 세계는 뒤로 미뤄도 아무 지장이 없다. 무엇보다 重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누가 나를 비난하더라도 주눅 들지 말자. 일단은 멈춰서서 심각하게 나를 비추어 보아야 하며, 나와의 관계를 지속해 온 비교적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적정한 평가를 받아보도록 하자. 그 결과, 내가 비난받을만하다는 답이 나온다면 깊은 반성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내 양심 점수가 높고, 타인들의 나에 대한 평가가 비교적 긍정적이라면, 나를..
“그놈은 개념이 없는 놈이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놈이 개념(槪念)이 있는지 없는지는 차치하고, '개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사전에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이라고 나와 있고, 사회적으로는 “구체적인 사회적 사실들에서 귀납하여 일반화한 추상적인 사람들의 생각”, 철학적으로는 “언어로 표현되며, 일반적으로 판단에 의하여 얻어지는 여러 관념 속에서 공통된 요소를 뽑아내어 종합하여서 얻은 하나의 보편적인 관념”이라고 정의합니다. 여기서도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되는가 봅니다. 그렇다면, 갈릴레오도 개념이 없는 인간이며, 소크라테스, 예수 등 선각자(先覺者)들은 영 개념이 없는 인간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라 할지라도 개념이 없다고 무시해선 안 됩니다. 누구나 자기 나름의 개..
왜 사람들은 죽은 자들에게 그리도 집착하나요? 현재의 삶이 불편하기 때문일까요? 그들이 그런다고 죽은 자가 살아올 수 있나요, 눈곱만큼이라도 그들의 형편이 나아질 수 있나요? 꿈 깨세요. 그들은 스스로가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당신도 그들을 따라 헛짓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 넣겟습니까? 실재(實在)는 오직 ‘지금 여기’뿐이며, 오직 당신뿐입니다. 그들은 시간과 함께 과거가 되어 버렸습니다. 깨어나십시오. 미래는 오지 않습니다. 오는 순간, 그것은 바로 현재로 변하고 맙니다. 삽질 그만하십시오.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 낭비하지 마십시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대로 그대로 두십시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하십시오. 당신이 그들에 대하여 어떻게도 할 수 없으며, 그들 역시 당신에게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
걱정거리(煩惱)가 많다고요? 그거 습관적으로 그런 거 아닌가요? 일단 걱정거리가 생기면 해결이 가능한 것인지, 걱정해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인지부터 구별하세요. 그리고 걱정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라 판단되면 당장 걱정을 그만두세요. 바보 아니잖아요? 게다가, 역사 이래 걱정해서 문제 해결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알죠? 그녀(그)가 내 말을 안 듣는다고요? 왜 그녀(그)가 내 말을 들어야 하는데요? 나도 그녀(그) 말 안 듣잖아요. 그냥 제 맘대로 하게 두세요. 대신, 내 일에도 참견하지 말라고 하세요. 돈이 문제이긴 하지만, 돈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어요. 문제 일으키는 재벌들 보세요. 세금 안 내려고 수 쓰다가 콩밥 먹게 되잖아요. 재산을 몇조나 갖고 있으면 무엇하나요? 내가 살아보니까 정부서 매달 주는 용..
인간의 기본 욕구 중심에 성욕(性慾)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이 일어나면 적절히 해소되어야 하는데, 그 방법에 대해선 정해진 법이 없다. 각자에게 맡겨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 독실한 불자(佛者)가 있었다. 불경을 읽다 우연히 여인의 거시기(?)를 독사의 입으로 생각하라는 구절을 읽게 되고 나서부터 거시기가 서지 않게 되었다. 결국 이혼(다른 이유일 수도 있었겠지만)을 하게 되었지만, 그다음에도 섹시(sexy)한 여인만 보면 마음은 여전히 동(動)하고 있었다. 산중기도를 하던 한 신학생(神學生)이 있었다. 젊은 나이인지라, 기도 중에도 물건이 불끈불끈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느님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 고민하다가, 마침내 그것(?)을 잘라내 버렸다. 하지만 경건해지지는 않았다. 욕망은 불길처럼 더..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깨달은 자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욕구(欲求)라고 합니다. 깨달은 자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욕망(慾望)이란 헛것이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배고프지도 않은데, 졸리지도 않는데, 먹으려 하고, 자려고 합니다. 이어서 그것은 소유욕과 성욕, 그리고 지식욕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을 욕망이라 합니다. 하지만 욕망은 충족될 수가 없습니다. 또 다른 옷을 사고, 차를 사고, 또 다른 여자를 만나고, 만권의 책을 읽을지라도, 그 결핍은 해결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외부(外部)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 평생을 소비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착각이며, 그것을 깨우친 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명상(冥想)..
사람하는 그녀(그)가 요즘 들어 시큰둥해하거나, 알고 보니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울해하거나 복수를 결심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소유욕이다. 초딩 때 우리 반에 흑인 아이가 하나 있었다. 아이들이 왕따를 놓는 바람에 내가 그의 ‘베프(best friend)’가 되었다. 서로 의리(?)를 지키며 양쪽 집을 왔다 갔다 하며 밥도 먹고 했는데, 그 녀석 아버지의 그 아이에 대해 사랑은 매우 특별했다. 그 녀석은 전쟁 때 어머니가 흑인으로부터 강간을 당해 낳은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형이 하나, 동생이 둘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오히려 둘째인 그 녀석을 유난히 더 챙겼다. 궁금해서 나중에 그 연유를 물었을 때,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낳은 아이는 무조건 ..
확신(確信)은 어디서 나오는가? 많이 듣고, 많이 읽은 것이 확신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더 망설여질 수도 있다. 큰 확신은 오히려 거부감을 불러올 수도 있다. 소심하게 살아온 사람에게라면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그 확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그 내면세계를 조금만 정확히 들여다보았다면 의심의 고삐를 늦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너무 쉽게 확신에 이르는 사람들이 있다. 남의 이야기 몇 마디에 마음을 정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몇십 년의 각오와 반복되는 체험, 그리고 의심에 의심을 거듭한 끝에 나온 확신이었다면 일단은 지지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깨달음보다 소주천(小周天)은 확신을 가지기가 오히려 어렵지 않다. 당사자는 여실한 기운의 움직임을 보고, 듣고, 느끼며, 그 에너지는 관..
깨어있지 않으면 늘 외롭고, 우울하고, 두렵다. 그에게 세상은 온통 고(苦)의 연속이다. 보고, 듣고, 느끼는 그것이 '자기(ego)'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뒤에 조용히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이 진아(眞我)인가? 하지만 그 뒤에 전혀 요동하지 않는 무엇이 자리 잡고 있음을 그는 안다. 지켜보는 자는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서, 견문각지로 인해 기뻐하고, 슬퍼하고, 마음 상하는 그것과 여여(如如)하게 지켜보는 자 사이에 있다. 어떤 것이 진실한 나인가? 생각이 사라지기 전에는 그 자리를 알 수가 없다. 생각이 뚝 끊어졌을 때 그 자리는 나타난다. 그것을 알아챈 것을 가리켜 깨달았다고 한다.
깨달음을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오직 주님" 품에 머무는 것입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조금 어렵습니다.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를 깨우쳐 고(苦)에서 벗어난 것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에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 깨달음입니다. 심지어 "나"도 거기에 개입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무념무상(無念無想)이라 합니다. 그러나 무념무상을 알고 있는 그놈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놈이 없이는 무념무상도 힘을 쓰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기독교식이 더 편할지도 모릅니다. 코로나만 아니라면 정말로 푹 빠져 버리기 쉬운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양쪽이 다 불만입니다. 그 허전함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도(仙道)에 귀의했는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