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虛其心 (211)
谷神不死
세상에서 무엇보다 가치있는 것은 "자기가 누군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을 걸림 없이 당당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기 이름이나 가문, 그리고 학벌, 능력, 그리고 현재 나의 위치는 내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언제든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알아야 할 것은 그런 군더더기가 아니라, 변치 않는 나의 '정체성(正體性)'입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가족을 버리고 고행을 할 필요가 없으며, 하는 일들을 모두 그만 두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알게 된 사람을 "깨달았다"라고 하지만, 자기를 안 것에 불과한데, 그것이 무슨 그리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그것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으며, 당신 자신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선 너무..
금강경을 보면, 제일 많이 나오는 말이 아상(我相)이다. 아상은 "나라고 하는 생각" 정도로 알아도 된다. 자연스러운 말이며, 특별하지는 않다. 아상과 비슷한 말이 '에고(ego)'인데, 그 말 역시 기피할 말이 아니며,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아상(ego)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그런 사람이라고 아상에서 벗어나 있지는 않다. 죽은 사람에게만 아상이 없다. 진정으로 아상을 버린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아상을 버린다는 그놈도 아상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아상 덩어리라는 것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세상을 나 중심으로 보면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남들이 안 보는 데서..
깨닫기 위해서는 남의 이야기에는 신경 쓰지 마세요. 바른길을 찾았다면, 그저 내 갈 길 꿋꿋이 가세요. 마음을 과거로도, 미래로도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안다는 것도, 모른다는 것도, 금수저 흙수저도, 지켜야 할 계율도, 하지 말라는 것도, 모두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학벌, 체면, 점잖음, 상스러움, 누가 나를 칭찬하든 비난하든, 내가 누구라는 것도, 네가 누구라는 것도, 모두 내려놔야 합니다. 달마(達磨)가 혜가(慧可)에게 그 마음 한번 내어놓으라 할 때 그에겐 무엇이 남아 있었을까요? 비를 피해 처마 끝에 선 혜능(慧能)에게 금강경(金剛經)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以生其心)" 구절이 들려올 때 그의 생각은 어디를 향했을까요? 깨달음을 묻는 공부자에게 구지(俱胝) 선사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릴 ..
노력했는데,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는 말을 듣는다. 노력 역효과의 법칙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왜 출가한 지 30년이 됐는데, 단전호흡을 20년을 했는데, 아직 견성(見性)도 소주천(小周天)도 멀기만 할까? 이유가 무엇일까? 간단하다. 무턱대고 노력만 했기 때문이다. 눈에 드는 여자(남자)를 발견했다고 하자. 어떻게 하면 그가 날 사랑하게 할 수 있을까? 무작정 그의 뒤를 따라다니면 될까? 매일 퇴근길 그의 직장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서 있으면 성공할까? 그의 집 앞에 엎드려 108배, 백일기도를 드리면 성공할까? 장담하거니와 잘못된 노력은 역효과로 나타나고 만다. 여유를 가지고 먼저 그녀(그)에 대해서 알아봐야 한다. 그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과 친해야 한다. 우연을 가장하고라도 그 사람에게 얼굴도장..
"수행(修行)한다는 분이 어떻게 나와 너를 구별하느냐?"고 저를 힐난(詰難)한 분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당신과 나는 구별돼야 합니다. 나는 분명히 나이고, 당신은 누가 뭐래도 당신입니다."라고 말했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에게 말했듯 그와 내가 하나라면 대화(對話)인들 어떻게 이루어지겠습니까? 물론 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모두가 하나(oneness)라는 깨우침을 받기도 합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려면 그는 그이고, 나는 나여야 합니다. 그래야 보시(布施)도 가능해집니다. 타국(他國)에 가면 그 나라 언어(言語)로 말해야 합니다. 그들이 나의 모국어(母國語)를 모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타(自他)는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서..
깨닫기 위해서는 남의 말에는 신경 쓰지 마세요. 마음이 과거로도 미래로도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안다는 것도 모른다는 것도, 금수저도 흙수저도, 지켜야 할 계율도 가려야 할 것도,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학벌, 체면, 점잖음, 상스러움, 누가 나를 칭찬하든 욕을 하든, 내가 누구고 네가 누구라는 것도 모두 내려놔야 합니다. 달마(達磨)가 혜가(慧可)에게 그 마음 한번 내어놓아 보라 할 때 그에겐 무엇이 남아 있었을까요? 비를 피해 처마 끝에 선 혜능(慧能)에게 금강경(金剛經) "應無所住以生其心" 구절이 들려올 때 그의 생각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구지(俱胝) 선사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릴 때 학인(學人)의 눈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요? 깨닫고 싶으십니까? 깨달으려면 깨달음에 필요한 조건과 깨닫지 못하는 ..
''나'라는 생각(존재감)'이 '나'인가? 그것은 너무 잔잔하여 마치 없는듯하다가, 무언가 보이고, 들리고, 감각할 때 깨어 일어난다. (見物生心)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이 있다. 생각이 없을 때는 나 역시 없는가? 그때도 나는 존재하지 않는가? 나는 없다(無我)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것은 없지 않으며, 묘(妙)하게 있다. 한없이 텅 비어 있고, 고요(空寂)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안에 세상 모두가 담겨있다. 인연이 닿기만 하면 즉시 에고(自我)로 변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되게 하는 것, 역시 '나'이다. 색(色)과 공(空)이 하나라는 것, 그리고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이 나로부터 연유했다는 것을 느끼며 사는 것이 인간이다.
최근 기자 한 명이 법정 구속되었다. 그가 쓴 기사 하나가 허위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고 사실은 밝혀지고 만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아직도 그 기사가 사실일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안다는 하는 것은 얼마나 사실(事實)에 가까운가? 눈으로 직접 본 것이라 할지라도 사실이 아닌 것이 많지만, 눈으로 직접 보지도 못한 것들을 사람들은 열심히 믿고 산다. 우리는 안다고 할 수도 있고, 그것을 믿을 수도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다. 믿음이란, 알아도 몰라도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래서 성인(聖人)들은 항상 "깨어 있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붓다는 "많은 사람이 믿고 있다 해서, 오래 믿어 왔던 것이라 해서, 심지어 경전..
생각할 수 있다면, 생각을 내려놓을 수도 있습니다. 생각을 내려놓기가 어렵거나 생각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면, 일단 한 생각을 떠올려 보십시오. "밀고 싶으면 당기고, 당기고 싶으면 먼저 밀어보라." "뺏고 싶으면 먼저 주고, 주고 싶으면 먼저 뺏으라." 자연스러운 우주의 법칙입니다. 유위(有爲)를 알아야, 무위(無爲)도 알 수 있습니다. 생각 없음을 모르겠거든, 몇 날 며칠 생각 떠올리기 연습을 해보십시오. 고집하지 마십시오. 길이 막히면 돌아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고 하다 보면, 생각과 생각 사이의 비어있는 공간들이 보이게 됩니다. 이제는 그 지겨운 생각들을 모두 내려놓고, 그 공간에 그냥 머물러보십시오. 그것을 '정정(正定)'이라 합니다. 그때부터 공부가 시작됩니다. 무엇이 생각을 ..
엉거주춤 살지는 말자.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며 살자. 최소한 자기가 누군지는 알고 살자. 세상엔 뒤로 미룰 일이 있고,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지금 여기 실재(實在)에 대하여 우선 생각하자. 검증이 불가능한 윤회나, 천당 지옥이나, 귀신의 세계는 뒤로 미뤄도 아무 지장이 없다. 무엇보다 重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누가 나를 비난하더라도 주눅 들지 말자. 일단은 멈춰서서 심각하게 나를 비추어 보아야 하며, 나와의 관계를 지속해 온 비교적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적정한 평가를 받아보도록 하자. 그 결과, 내가 비난받을만하다는 답이 나온다면 깊은 반성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내 양심 점수가 높고, 타인들의 나에 대한 평가가 비교적 긍정적이라면,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