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虛其心 (211)
谷神不死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지혜가 있습니다. 그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그의 말은 언제나 핵심을 찌릅니다. 의식(意識)이 긍정적으로 조정되어 있어 늘 집중력과 자신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물을 바르게 보고(正見), 바르게 처신(正業)합니다. 미신(迷信)에 속지 않으며, 비현실적인 것을 따르지 않고, 올바른 믿음을 가집니다. 자기의 신앙(信仰)만을 고집하지 않으면 그것을 결코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언제나 나와 남을 동일선상(同一線上)에 놓고 생각합니다. 몸이 비틀려 있듯이 마음도 비틀릴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인생을 밝게 보지 않고 만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자기까지도 믿지 않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스스로 패배자 대열에 서게 합니다. 심해지면 사이..
건강(健康)이란, 몸의 건강과 마음의 건강으로 말할 수 있다. 몸의 건강은 첫째, 아픈 데가 없으며, 소화와 배설이 잘 되고, 몸 움직임이 수월하여 며칠 정도의 여행에는 별 불편을 느끼지 않는 상태를 말하며, 걱정거리가 없으며, 늘 사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시간이 있는 대로 남에게 어떤 유익한 말과 일을 해 줄까 생각한다면 마음의 건강도 지녔다 할만하다. 귀찮은 일이 생겼을 때 덜컥 걱정부터 난다면 몸 상태가 어떤지를 조사해 봐야 한다. 남의 이야기나 글을 읽으면서 흠집을 잡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심리상담을 한번 받아 보아야 한다. 하지만 모두가 잘 되기를 바라고, 혹시 타인에게 어떤 지적을 할지라도 그것이 진정으로 그 사람의 평안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바람직하다. 선도(仙道)에서 이야기하는 건강은..
요즘 부쩍 “삶과 죽음은 하나야. 옷만 바꿔 입는 것이야!”라는 말을 듣는다. 예수교나 불교 논리에 따르면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던 사람 역시 사고를 당하거나 불치병 선고를 받으면 허둥지둥 몹시 불안해하는 것을 본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생이 좋다”는 말이 있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쓴 책을 보니 “5년만 더 살게 해준다면 평생을 한발로만 서 있으라고 해도 그리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요즘 무척 느긋하다. 누가 죽인다 해도 눈만 껌벅껌벅할 것 같다. 나 자신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니 최소한 “죽어도 죽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쪽으로 마음의 방향이 51% 나왔기 때문이다. 그 근거로 오랫동안 선도(仙道)를 닦은 공으로 이젠 호흡(呼吸)과 의식(意識)이 하나로 뭉쳐 돌아가는 것을 꼽고 싶다...
생각을 하는 것과 생각을 하지 않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 당신이 만약 생각하지 않기가 더 쉽다고 말한다면 당신에게 깨달음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생각을 안 할 수 있습니까?”라고 난감해한다. 왜냐하면 평생을 생각만을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잠을 자면서도 생각을 한다. 명상(冥想)으로는 깨닫지 못한다. 만약 주력(呪力)이나 간화선(看話禪), 그리고 위빠사나로 깨닫고자 한다면 당신은 100% 실패한다. 그런 것만으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고한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그들이 그런 우스꽝스러운 것에 매달리는 이유는 그것들이 생각을 내려놓도록 돕기 때문이다. 깨달음을 위해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 모두라면 굳이 머리 깎고 출가(..
가급적 실현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사는 것이 좋다. 그런 것을 헛소리라고 한다. * 집착을 버리라고요? 깨달음에 대해서도, 소주천(小周天)에 대해서도 집착을 버리라고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묻고 싶다. “임자! 해 봤어?”라고 말이다. 집착을 버리려면 최소한 집착이 무언지를 알아야 한다. 아이도 낳아보지 사람에게 아이에 대해 묻는 바보는 없다. 직접 해보지도 않은 사람을 귀찮게 하지 말라. * * 인류 역사상 집착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는 석가모니였다. 그는 제자들에게 집착을 버리는 최선의 방법을 가르쳤다. 그것은 아무런 생산적 일을 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 숲속에서 조용히 사는 것이었다. 집착이란 죽어야 끝나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리켜 무여열반(無餘涅槃)이라 한다. 그들처럼 하고 싶으..
"깨달았다"는 것은 자기가 누군지, 자기 정체성이 무언지를 알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누군지 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자기 이름, 자기 몸, 자기 마음을 "자기"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불안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사는 이유이며, 담배, 술, 약물, 섹스에 중독되어 자기를 잊고 사는 원인이다. 나의 이름, 나의 몸과 마음은 내가 아니다. 그것은 용도가 다하면 폐기하는 문패나 명함, 옷이나 자동차, 컴퓨터처럼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선 먼저 나라고 생각했던 이름이나 몸과 마음이 과연 나인지부터 알아봐야 한다. 자기를 찾는 데는 약간의 시간만 할애하면 된다. 내가 나를 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은 큰 축복이다. 깨달음을 얻고 나면 몸과 마음이 건강..
불안하고, 위축되고, 자존심 상하는 불쾌한 일이 펼쳐질 때, 그 책임을 외부로 돌려서는 안 된다. 책임은 모두 나에게 있다는 태도, 그야말로 가장 권장할만한 일이다. 나를 상하게 하는 일들이 지나갈지라도 또 다른 나를 괴롭힐 사건들이 나타날 것이다. 불쾌한 일이 일어날 때는 그 출처(出處)가 어디인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 불안하거나, 위축되거나, 자존심 상하게 하는 일은 모두 생각에 불과하며, 내가 허락지 않는 한 그것은 나에게 어떠한 피해도 주지 못한다. 모든 일은 나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이 “깨어있음”이다. 언제나 관심(觀心)의 초점을 오롯이 내부에 돌릴 일이다. 깨닫기가 어려운 이유는 그 관심이 외부(外部)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관(內觀), 즉 내면을 보고, 거기서 나는 소리에 귀..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치 꿈에서 깨고 나면 나를 포함 꿈속 세상이 남김없이 헛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듯이 죽고 나면 나를 포함하여 세상 모든 것들이 말끔히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죽어도 세상은 그대로가 아니냐고 말합니다. "아버지가 죽고 누군가 죽었어도 남아있는 세상은 변함없이 유지되지 않더냐?"고 반문합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오해입니다. 그 말은 죽은 당사자의 관점이 아닌 살아 있는 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없으면 세상이 없듯 세상이 없으면 나도 없습니다.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는 말씀, 결코 흘려들을 말은 아닙니다.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grave)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
말로만 무소유, 무소유 하지 말라. 말하는 당신이 먼저 무소유(無所有)가 되어보라. 우리는 소유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무소유를 이야기하는 사람치고, 무소유를 실현하는 사람은 없다. 정말 당신이 가진 것을 모두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는가? 아내(남편)와 아이들까지 모두? 아니라면 무소유는 생각조차도 하지 말라. 무소유가 되기 위해 버려야 할 첫 번째 것은 '무소유라는 생각'이다. 남들이 모두 무소유를 실현하면 그들이 소유했던 것들은 누구의 것이 될까? 한 사이비 교주는 곧 개벽이 온다며 신도들 모두를 무소유가 되라고 협박했다. 그래야 구원받는다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들의 소유를 모두 교주에게 바쳤고, 교주와 그 가족은 부자가 되었다. 개벽은 헛소리였고, 결국 그 교주는 무소유(시체)가 되고 말았지..
깨어있기 위해 철야기도를 할 필요도, 용맹정진(勇猛精進)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작용(作用)을 일으키는가?" 하루에 세 번만 자기에게 위의 질문들을 하고 산다면 그것이 바로 깨어나게 하는 징표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잠자리에 들었을 때, 그리고 낮 동안 잠시 쉬는 시간에... 그리고 몸이 아프거나 삶이 답답할 때, 위의 질문을 하고 있다면 깨어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그것들이 궁금해지면 눈이 열립니다. 그리고 조만간 확연하게 그 해답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깨달음의 메커니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