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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이해해야 하는 것이 있다.그것은 종교(宗敎)이다. 부자든, 권력자든, 지식인이든 막론하고, 우리 모두는 갈팡질팡하며 사는데,그 이유는 '종교'를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종교란 으뜸(宗)이 되는 가르침(敎)이다.그렇다면 자신에게 으뜸이 무엇인지를 물어봐야 한다.사람마다 으뜸으로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종교를 논(論)하는데 있어서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그것은 진리의 입장에서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신앙의 입장에서 바라볼 것인가이다. 보통 사람들은 종교와 신앙을 동의어로 생각한다.하지만 그 둘은 전혀 다르다. '신앙(信仰)'이란, 믿어(信) 우러르는(仰) 것이다.우리는 무엇도 신앙할 수 있다.하늘 땅, 가공한 신(神)이나 돌부처에서 시작해 살인자, 마귀, 동물이나 나무 어떤..

"학교폭력을 없애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학교를 없애는 것이다"라는 농담이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적 모순 속에서 삽니다. 석가는 "'나'라는 것은 없다"라는, 이전에 없던 진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의 고통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일체가 고통(一切皆苦)이라고도 말합니다. 없는 '나'에 어떻게 고통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인간은 신(神)을 찬양하기 위해 존재한다." 인간은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면서도 어떤 일을 당해도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인간을 창조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사랑이다"라고 뇌까리며 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너무 잔인합니다. 그의 자식들의 편을 가르고 한 놈은 천당, 한 놈은 지옥으로 ..

도(道)와 마(魔)는 한통속 고르지 못한 날씨로 모종을 재구매하는 농가가 많습니다. 심은 오이, 호박, 고추, 강낭콩, 도마토 등등이 축 늘어졌습니다. 곡우(穀雨)를 지났지만, 갑자기 닥친 영하 가까운 기온 때문입니다. 하지만 직파(直播)한 작물들은 거의 피해가 없습니다. 식물들이 눈치껏 알아서 싹을 틔우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수행하기 적합지 않다는 티베트 승려의 글을 읽었습니다만, 나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러 나라를 다녀 보았지만, 한국보다 수행하기 좋은 나라는 없다고 늘 생각합니다. 저절로 수행이 무르익지는 않습니다. 수행(修行) 역시 배고픔, 추위를 견디며 잡초처럼 닦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단체에 적을 둔 수행자들은 예외입니다. 그들에겐 집 걱정, 먹을 걱정이 없습니다. 스님(?) 소리 들어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알고 싶은 것만 알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어 있다.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동일하게 진행된다. 자본주이냐 사회주의냐, 개인소득중심경제냐 전체소득중심경제냐, 수구(守舊)냐 개방(開放)이냐 등등 말이다. 그것은 신앙(信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기독(基督)을 말하자면 구교(舊敎), 신교(新敎), 불도(佛道)라면 상좌부(上座部), 대승(大乘) , 아니면 선불교(禪佛敎), 이슬람이라면 시아파, 수니파로 나누어 이견(異見)이 분분하다. 사람은 완전한 깨우침을 얻기 전에는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도록 구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열반(涅槃)과 해탈(解脫)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자. 이 사안(事案)은 전에도 다룬 적이 있으나, 엄연히 다른 두 단어의 의미..

신앙(信仰)이란, '믿어(信)' '우러른다(仰)'는 뜻입니다.사람들이 사이비에 빠지는 것은 무지(無知)와 통하기 때문입니다. 아는 자, 가진 자는 믿지 않습니다.모르기 때문에 믿고, 구할 것이 있어 믿습니다. "우러른다"는 말은 "위를 향하여 정중히 고개를 쳐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어떨 때 우러릅니까? 돈을 우러르고 권력을 우러른다면...먹을 것을 우러르는 짓을 하고 있다면 개돼지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세상은 깨어나고 있습니다. 왜 신(God)들의 세력다툼에 우리가 이용당해야 할까요?지금은 깨달음의 시대입니다. 이것이 개벽開闢(Open & Open)입니다.

수행자(특히 인도 수행자)가 苦行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업(Karma)을 털어내기 위해 그리한다. 싯다르타도 처음엔 그들을 따라 산에 올라 오랜 시간 고행(苦行)을 해 뼈와 가죽만 남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총명함은 그것이 고(suffering)를 소멸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苦를 소멸시키는 원리를 깨달았다. 그의 알아낸 것은 내가 없다면 苦가 있을 수 없다는 원인무효법, 즉 무아(無我)이다. 그것은 불교의 기둥 교리가 되었다. 그 말대로라면 모든 것은 허망하다. 우리는 어떤 노력(수행)도 할 필요가 없다. 산다는 것이 코미디이다. 그들의 말은 다분히 논리적이어서 반박에 쉽지 않다. 우리는 혼란에 빠진다. 논리적이 아니라 실제로 나는 없는가? 그것은 그치지 않을 토..

생각하는 것보다 깨달음은 쉽다. 자기가 자기를 아는 것이 왜 어렵겠는가? 문제는 깨달음의 유지다. 우리가 선도(仙道)를 닦는 이유, 매일 기운 점검을 하고 단전(丹田)에 기운을 모으는 이유는 깨달음(自性)을 놓치지 않고 살기 위해서다. 그 간단한 깨달음을 왜들 그리 어려워하는가? 첫째, 너무 오래 마음이 잊고 살았기 때문이고, 둘째는 깨달음에 이르는 효과적인 방법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신앙단체에서는 신도(信徒)들의 깨달음을 반기지 않는다. 깨닫고 나면 그들의 정신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신(神)도 아니고, 신앙도 아니고, 바로 당신 자신이다. 그것을 위해 당신의 시간을 더 사용하라. 현명(賢明)하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요즘 하느님(JMS)의 출현으로 새삼스레 세상이 떠들썩하다. '신앙(信仰)'은 시작부터 불합리한 구조이다. 그러므로 거기서 '합리(合理)'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마치 개가 사람처럼 두 발로 걷는 것과 같다. 개는 네 발로 걸어야 편하다. 신앙은 그냥 신앙하면 된다. 신앙(信仰)은 종교가 아니다. 신앙이란 단지 몸 바쳐 믿어(信) 우러르기(仰)만 하면 된다. 그 앞에 '신학(神學)'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그것엔 논리(論理)도, 이치(理致)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좀 바람직하진 않아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믿으면 된다.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그것은 신앙이 아니니 말이다.

당신은 어떤 종류의 믿음이 있는가?국어사전에서는 믿음에 대한 정의를 아래와 같이 두 가지로 하고 있다.1.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2. 대상(종교)에 대한 신자로서의 태도로서 두려워하고 경건히 여기는 마음 사실이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이므로, 믿고 말고 할 필요가 없다.믿음이란 첫째로는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사람 사는 데 필요한 일이며,두 번째는 신앙조직에서 상정한 절대자를 대상으로 사용한다.하지만 신앙단체의 유지에 필수적인 것으로, 믿음이 없으면 조직은 무너진다.보통 신앙과 종교를 동의어로 사용하지만,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무식의 소치이거나 자기 신앙에 대한 과포장이다.믿음처럼 모호하고 안정적이지 못한 것은 없다.그것을 위해 목숨도 바치지만, 그것처럼 배신이 흔한 것도 없다.김기석 ..

세상에 종교(宗敎)가 이렇게 많은 것은 각기 다른 생각(敎理)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성교단에서는 신흥교단을 이단(外道)이라고 폄하하지만, 신흥교단 역시 기성교단이 경전(經典)대로 따르지 않는다 하여 역시 이단(異端)이라고 부릅니다. 종교개혁 이후 일어난 신교(新敎)는 그 후에 일어난 교단들을 이단(外道)이라 핍박하지만, 新敎 역시 舊敎(가톨릭) 입장에선 이단이며, 나아가 예수 역시 유대교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단이기는 매일반입니다. 그런 일은 불교(佛敎)에도 동일합니다. 근본불교(Theravada)는 대승(大乘)불교의 경전들을 부처님 말씀이 아니(非佛說)라 하여 논외(論外)로 하고 있으며, 대승불교 역시 근본불교를 소승(小乘)이라 부르며 폄하합니다. 근본불교, 대승불교 그리고 티벳불교로 불교가 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