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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성공적인 삶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볼 수 있어야 한다. 시끄러움을 잠시 멈추고, 마음속을 들여다보자. 한 번에 결론이 나지 않으면, 몇 번이라도 반복해서 꼭 자기가 인생을 바칠만한 가치 있는 일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남들과 다른 욕구(慾求)를 일으켜야 한다. 그것이 없이 세상에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나는 너무 일찍 인생이 무상(無常)함을 알았고, 다소는 엉뚱하지만, 신선(神仙)이 되어야 한다는 욕망(慾望)을 일으켰다. 그다음엔 그것을 위해 어떤 조건들이 구비(具備)되어야 하는가에 정신을 모았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이 단전(丹田)이었고, 이어서 소주천(小周天)이 필수라는 깨달음을 얻었고, 그때부터는 나의 삶이 방향이 그쪽으로 틀이 잡혀갔다. 사람의 미래는 그 사람 마음..
송담(松潭) 선사(禪師)는 최근 공개된 불교방송의 2020년 5월2일 법문(法文)에서 '夕陽西去水東流 暑往寒來春復秋'라는 게송(偈頌)을 읊었다. https://youtu.be/Wxz74w2FwhQ 석양이 서쪽으로 가든, 물이 동쪽으로 흐르든,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더위가 지나가고, 추위가 오든, 봄이 다시 가을이 되든 말든,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는 과연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소크라테스가 언급했듯, '나'를 빼고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무엇을 깨달아야 한단 말인가? 내가 없다면, 석양(夕陽)도, 물도, 동쪽도, 서쪽도, 없을 것이며, 더위도, 추위도, 봄, 가을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의 게송이 가리키는 곳은..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아무나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며, 나하고는 관계가 없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먼저 깨달은 자(善知識)들은 왜 그것을 "세수하다 코 만지기보다 쉽다"고 했겠는가?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금강경(金剛經)은 말한다. '약견제상비상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卽見如來)'라고 말이다. 그 말은 '만약 모든 상(相)이 상이 아님을 보면 즉시 깨닫는다'는 뜻이다. 혹자(或者)는 여기에서 '상(相)'은 오온(五蘊 : 色受想行識)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말은 쉬운 깨달음을 어렵게 만드니 피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말을 하니 깨달음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 말은 영어로 그냥 "Don’t Think, Just Look"라고 나는 해석한다. 한자어는 ..
예수는 "마음(心靈)이 가난하면 천국에 간다"'고 했습니다. 아주 간단한 가르침이지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 마음은 무언가 잡동사니를 자꾸 거두어들이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붓다는 "바른 견해(正見)"를 첫 번째로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못한 일입니다. 천국과 깨달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깨달음은 그대로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바른 견해를 갖기 위해선 축적된 지식들을 포함한 모든 생각들을 내려놔야 합니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깨닫기 어려운 것은 내려놓을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신앙이란 놈은 흡착력이 강해서 좀처럼 떨어지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누군지를 모르는데, 천국은 무슨 소용이며, 세상을 다 가진들 무슨 만족이 있겠습니까? 성인의 말..
수행자와 일반인의 차이는 생각에 있다. 수행자는 자기 생각을 자기가 하고, 일반인은 남의 생각에 의존한다. 수행자는 남의 생각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남의 생각에 좌지우지되는 순간, 그는 생각의 노예가 되고 만다.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이 깨달음이다. 생각으로 생각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거기서 초능력도 나온다.
생각하는 것보다 깨달음은 쉽다. 자기가 자기를 아는 것이 왜 어렵겠는가? 문제는 깨달음의 유지다. 우리가 선도(仙道)를 닦는 이유, 매일 기운 점검을 하고 단전(丹田)에 기운을 모으는 이유는 깨달음(自性)을 놓치지 않고 살기 위해서다. 그 간단한 깨달음을 왜들 그리 어려워하는가? 첫째, 너무 오래 마음이 잊고 살았기 때문이고, 둘째는 깨달음에 이르는 효과적인 방법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신앙단체에서는 신도(信徒)들의 깨달음을 반기지 않는다. 깨닫고 나면 그들의 정신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신(神)도 아니고, 신앙도 아니고, 바로 당신 자신이다. 그것을 위해 당신의 시간을 더 사용하라. 현명(賢明)하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깨달음은 무위법(無爲法)입니다. 그것을 위해선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깨달음에서 멀어집니다. 소주천(小周天)은 유위(有爲)로 시작해 무위(無爲)로 마무리합니다. 축기(蓄氣)가 필요하고, 집중(集中)이 필요하고, 자기 제어(Self-control)가 꼭 필요합니다. 처음엔 땀 흘려 끌고, 밀어주어야 하지만, 나중엔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소주천은 유위와 무위의 협업(協業)입니다.
깨닫는 일 외에는 세상에 할 일이 없으며, 깨닫고 나면 아무 할 일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칭 '깨달았다'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매일 태극권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몸과 마음을 떠나야 하는데, 그런 건 왜 하느냐?"고 시비를 걸어왔다. 나는 답했다. "그리 말하는 그대도 밥은 먹지 않는가? 이해될는지 몰라도, 나에게 태극권은 밥 먹는 일과 같다." 깨달음 흉내를 내느라 목욕도 안 하고 지내던 사람 몇을 나는 알고 있다. 옆에 가면 악취가 진동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저세상으로 떠났다. 깨달은 사람에게도 몸과 마음이 있다. 그러므로 먹어야 하고, 목욕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하고, 사랑도 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하느라 바빠서 깨달음에는 관심조차 없는 것이 문제는 문제지만 말이다.
사촌이 땅을 샀을 때 일어나는 반응을 대략 세 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첫째, 아무렇지도 않은 경우: 비록 사촌이라 해도 나하곤 아무런 이해 상관이 없는 사람인 경우이다. 둘째, 기쁘다, 축하하고 싶다, 안심이 된다: 이제 그에게 도움을 주지 않아도 되거나, 막연하기는 하지만 혹시 내가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셋째, 불편하다, 속상하다: 이유는 그와 내가 비교되기 때문이다. 내 것이 아니라서 속상하고, 내 것이 있어도 그의 것이 더 좋으면 불편하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이유는 세상에 나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동일한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첫째는 아무 감흥(感應)이 없다. 깨달음이 무언지도 모르고, 안다 할..
깨달음은 당신 자신의 것이다. 누구의 말이나 글 속에 있지 않다. 그것은 당신 스스로 해결할 문제다. 神이든 부처든, 그 누구도 깨달음을 줄 수 없다. 까닭 없이 추상적이면 100% 실패한다. 그것은 교리(敎理)나 어떤 신앙 속에 있지 않다. 그것을 위해 가족과 생업을 버릴 필요는 없으며, 어디론가 가지 않아도 된다. 체험에 의지하지 말라. 그런 것은 깨달음이 아니며,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 그것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다. 그것은 당신의 알아차림과 연결되어 있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당신뿐이다. 적어도 그것을 위해선 애쓸 필요가 없다. 그저 생각을 줄이고, 주시자(注視者)로 남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