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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경제적 문제나 정치 문제, 전쟁 등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문제는 통(通)하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다.우리 마음과 몸에 생기는 문제 역시 다르지 않다.불안과 우울은 물론이거니와, 면역력에 문제가 생기고, 병으로 고통받는 것 모두가 기(氣)의 문제다.氣가 통하지 못하면 일단 불쾌해지고 몸이 무거워지는데, 그 이유는 말단까지 흐르는 기혈(氣血)이 장해를 받기 때문이다.무슨 수를 쓰든, 氣를 통하게만 만들어주면 사회 전반의 모든 문제도 해결된다.경제에서의 氣는 돈이며, 정치에서의 氣는 대화와 이해이다.문제 해결은 통기(通氣)에 있다. 그것 하나면 만사 오케이다.선도(仙道) 공부는 氣를 통하게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축기(蓄氣)나 운기(運氣), 선도의 꽃 소주천(小周天) 역시 모두가 통기 이후에나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는 여기 이렇게 있다.잃어버리는 물건이 아니다.어제도 나는 있었고, 오늘도 나는 있으며, 내일도 나는 있을 것이다.돈과 권력(직업)을 잃어도, 명예가 사라져도, 나는 있다.이름이 내가 아니며, 내 일이, 내 사명(使命)이 나는 아니다.이 몸도, 마음도, 나는 아니다.나는 누구인가를 알려면 위에 열거한 모든 것을 제거해 보라."이것이 '나'일 거야"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말이다.그러면 당신은 즉시 '부처'가 된다.자기가 누군지를 아는 사람을 부처라 한다니 말이다.어려운 일인가?

꿈이 꿈인 줄 알고 있는 사람은 깨어있는 사람이다.꼬집어 아프다고 해서 그것을 생시라고 생각하지 말라. 꿈은 속이는 전문가다.소유 다툼과 자리다툼을 하느라 가진 시간 모두를 소비하지 말라. 헛것을 잡는 것이다. 말로만 무소유를 말하지 말라.꿈은 순간이다. 꿈속에서 부자가 되고, 대통령이 되었다 한들, 꿈에서 깨는 순간 모든 것은 신기루처럼 사라진다.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겐 현실도 꿈이다.무엇이 나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지를 모르고 산다면 말이다.먼저 자기가 누군지부터 밝히고 사는 것이 순서다.그것이 꿈에서 깨어나는 첩경이다.

싯다르타가 출가(出家)한 목적은, 늙고 병들고 죽는 문제 때문이었다. 그는 수많은 스승을 만났으나, 그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할 수 없었다.물론 잠시 동안 임시변통은 가능했지만... 결국 그는 기존의 방법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매우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는데, 그것을 '깨달음'이라 한다. 그 방법이란 것은 늙고 병들고 죽는 문제는 잠시 내려놓고,그 당체(當體)를 알아차리는 것이었는데,그 이후 그는 모든 번뇌(늙고 병들고 죽는 문제)가 해결되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내가 누군지를 알아차리는 것, 즉 해탈이었다.내가 없다면, 늙고 병들고 죽는 문제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富)와 권력만을 추구하는 것이 목표인 사람에게 내가 누군지를 알아차리게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

돈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는 몰라도 된다.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관리하면 돈이 모이고, 수중에 돈이 떨어지지 않는지 알면 된다.권력도 마찬가지다 .허세와 집착을 조절한다면, 몰락하지 않고 추앙을 받을 것이다.기운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몰라도 된다.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관리하면 기운의 주인이 되는지 알면 된다.그리하면 기운이 부족해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깨달은 자는 생명을 안다.그러므로 즐겁게 사는 법도 안다.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생명(기운)을 기르는지를 안다.어찌하면 영세토록 생명의 주인으로 살 수 있는지를 안다.

깨달음이란, 자기가 누군지를 아는 것이다.그것이 쉽지 않은 것은 모두들 관심사가 외부로만 달리기 때문이다..얼떨결에 일별(一瞥)을 할 수는 있다.하지만 그것을 지키며 사는 사람은 매우 적다.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늘 주시력(注視力)이 살아 있어야 한다.그러므로 그는 쉽게 에너지(氣)를 알아챌 수도 있다.마음만 먹는다면, 소주천도 쉽게 달성할 수 있다.자기를 안다는 것은 자기 전체를 아는 것이다. 에너지도 자기에게 속한다.그 모든 것의 중심에 주시력이 있다.

신앙(信仰)은 이성적이지 않다.논리적이지도 않다.그럴듯해 보이기 위해 이성과 논리를 잠시 차용한다. 이성과 논리가 개입하면 신앙은 힘을 잃는다.신학(神學)이라는 말도 적절하지 않다. 신(神)은 학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따지면 따질수록, 神(?)은 인간들에게서 멀어진다.그것은 인간들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신앙단체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들은 이성적(理性的)으로만은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理性)은 늘 부족함을 느끼며, 무언가가 그것을 채워주기를 바란다. 비논리적이지만, "보지 않고 믿는 자가 진복자(眞福者)", 그리고 무념무상(無念無想)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런 이유 때문이다. 문제는 신앙을 종교라고 믿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인간이 동물처럼 된다. 종교(宗敎)와 신앙을 구별하는..

구원이란 고통과 죄악으로부터 건져지는 것, 그것의 결과로 영생을 얻는다. 믿음이 없이는 구원도 없지만, 그렇다고 "믿습니다" 라는 말을 반복한다고 구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행위가 따라야 한다. 성경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야고보 2:26)'라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기를 알아야 진정한 구원이 있다. 구원받을 대상자가 바로 '자기'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누구란 걸 알려면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누구에게 배워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다. 얻어 들은 자기는 자기가 아니니 말이다. 자기를 알려면 깨달아야 한다. 깨달아야만이 제대로된 자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교리를 이해하게 된 것을 깨달음이라 하는 교파가 있지만 그것은 온전한 깨달음이 아니라고 믿는다. 깨달음은 지식에서 얻는 것이 ..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니란 것을 이해했다고, 그것을 깨달음이라 해서는 안 됩니다. 외로움, 우울함, 그리고 불안감에 자주 휩쓸린다면... 또한 ‘인정받음’에 우쭐하고, ‘인정 못 받음’에 마음이 흔들린다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시각(視覺)이 늘 내면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멍하게 있어서는 마음에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선도(仙道)는 의수단전(意守丹田)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기운을 모으는 것에 그치지 않으며, 시각을 내면으로 향하게 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의수단전은 마음이 단전(丹田)에 모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선 우선 단전을 잠에서 깨어나게 해야 합니다. 막연한 것에 우리 시선을 향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복식호흡(腹式呼吸)을 단전호흡(丹田呼吸)이라고 오해해..

깨달음이란 즉시 알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돈오(頓悟)'라고 합니다. 깨달음은 단지 '내가 누군지를 아는 것'입니다. 교리(敎理)가 아니며, 배우거나 믿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배운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깨달음은 멀어집니다. 학문으로 덮으려 하기 때문에 내가 점점 괴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다리를 틀고 앉을 필요도 없고, 가족을 버리고 산속으로 숨을 필요는 더더구나 없습니다. '지금 여기' 이렇게 있는 것이 바로 '나'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무아(無我)도 아니고, 참나(眞我)도 아닙니다. 그것을 가지고 무아(無我)니, 진아(眞我)니, 따지는 것부터 깨닫기 싫은 핑계입니다. 깨달음을 어렵다고 하는 이유는 자기를 아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으며,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