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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겨라. 나이 들수록 자신과 마주할 기회가 더 필요하다. 혼자 있다 보면 자기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자기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할 수가 있다. 수행자(修行者)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동안 못했다면 이제부터라도 자신에 대해 더욱 관심을 기울이자. 깨달음은 자기를 마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보통 60세 이상이 되면 아이들도 거의 독립하게 된다. 노파심에서 간섭하게 되면 요즘 아이들은 귀찮아한다. 금실 좋은 부부라 할지라도 더러는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따로 살면 상대의 가치가 새롭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가치관이 달라 사사건건 다투는 커플이라면 더욱 따로 살기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더러는 관계가 회복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독을 사랑해야 진정한 자기를 깨우칠..
나는 수행자들에게 글을 써보라고 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것이 글쓰기이고, 자기와의 진솔한 대화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말한 것을 지키려 하는 성향이 있으며, 글은 그것을 기정사실화 한다. 우리가 계약서를 만드는 이유는 말보다 훨씬 큰 힘을 가지는 것이 글이기 때문이다. 경전을 옮겨 적는 것을 사경(寫經)이라 한다. 그것은 읽는 것의 열 배, 백 배의 신뢰 효과가 있다. 하물며 자신의 내면세계를 글로 나타낸다는 것은 그것이 이미 이루어진 것과 같다. 글을 쓰자. 그리고 친구(도반)들과 서로 나누자. 그것보다 더 큰 보시는 세상에 드물다.
"왜 사는가?"라는 질문처럼 답하기 어려운 것은 없다. 철학자들 역시 직답을 피할 것이다. 기독교는 오직 조물주(神)에 대한 찬양이라 말할 것이고, 불교는 영원한 소멸(Nibvana)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우리가 만족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우리는 이미 삶의 목적지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이미 서울에 도착해 있는 사람에게 왜 당신은 서울에 왔는가를 묻는 것과 같다. 물으려면 "이것으로 당신은 만족하는가?" 아니면, "다시 길을 떠날 것인가?"라고 물어야 한다. 그리 묻는다면 사람에 따라 다른 답이 나올 것이다. 혹자는 "피곤하다, 쉬고 싶다"고 할지 모르고, 혹자는 "나를 여기에 오게 한 궁극적 의미는 무엇인가?"라고 물을 수도 있다. 선..
어린 자식이 있는 사람은 외롭고 우울할 사이가 없다. 그의 생각은 아이의 미래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행인도 마찬가지다. 제자가 있는 사람은 낙오되기 어렵다. 그리고 뒤에서 미는 사람이 있어야 쉽게 앞으로 나아간다. 나이를 먹는지 모르다가도 아이 큰 것을 보고 비로소 자기의 현재 모습을 보게 된다. 진보하기를 원한다면 필히 제자를 두어야 한다. 부모의 재산은 손자를 보고 상속된다. 그러므로, 수행자에게 제자는 꼭 있어야 하는 존재다. 부모가 되어 봐야 부모 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제자가 있어야 공부 마무리가 가능하다. 큰 공부는 스승만 바라본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성장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제자가 필요하다. 그것이 나도 모르게 에너지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스승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지 말라. 이제..
우리는 무엇에라도 우리의 생각을 고정할 수 있다. 돈에, 권력에, 이성에게 그렇게 할 수 있다. 또한 호흡에, 그리고 화두(話頭)에, 만트라(Mantra)에 생각을 고정할 수 있다. 그리하면 비록 일시적이지만, 불안이 사라지고 평온함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내 몸에 흐르는 에너지에..., 그리고 조금 어렵지만 단전(丹田)에 마음을 보내어 보라. 그것은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창조하는 일이다. 허망함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길이다.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하자. 그럴 수 있는 힘을 기르자. 자신감이 있는 사람만이 솔직할 수 있다.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에게도 솔직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보는데 왜 남의 눈이 필요한가? 무엇이 두려운가? 자기 자신에게만이라도 솔직해지자. A를 A라고 말하고, B를 C라고 말하지 말자. 과감히 벗어나 보자. 배고프면 배고프다 하고, 졸리면 졸립다고 말하자. 주입받은 모든 것에서 벗어나자. 가식을 모두 벗어버리자. 세상의 생각은 세상의 생각이고, 순간순간 아닌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당신은 깨어난다. 그리되는 순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진짜 자기를 만나게 된다. 자유를 알게 된다.
"깨달음에만 신경 쓰면 돼. 병(病)이 오면 받아들이고 그냥 살아. 부처님도 앓다가 돌아가셨어." 깨달음을 얻었다는 분의 말씀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평생 문제없이... 병 없이 살 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나 늘 건강관리 하면서 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보시(布施)는 남에게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깨달은 이에게 이 몸과 마음도 외물(外物)이 아니던가요? 나하고 제일 가까운 이웃이지요. 사람은 몸이 아프면 에고는 더 강화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혹 에고가 정말 사라졌더라도 몸과 마음은 관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건강해야 합니다. 한동안은 몸과 이 지구에서 살지 않을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당당하게 말하면, 당당해집니다.말(正語)은 깨달음과도 연결됩니다.우선 세 마디만 바꿔 말해봅시다.1. 좋은 것 같아요. ⇒ 좋습니다.2. .. 같은 경우에는 ⇒ ...의 경우에는3. ㅇㅇ신문의 ㅇㅇ기자라고 합니다. ⇒ ㅇㅇ신문의 ㅇㅇ기자입니다.깨어있어야 합니다.말이 중요합니다.깨어있음은 말에서부터 시작하니 말입니다.
깨달음을 얻었다 할지라도 에너지 장악이 부족하면 아직 편안함을 얻었다 할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명예는 있어도 땟거리가 부족한 것과 같다. 그리되면 비록 존재는 깨우쳤다 할지라도 에너지를 주재(主宰)할 수 없어 삶에 닥치는 불편함은 여전하다. 性(理)과 命(氣)은 서로를 도와 존재를 완성하게 되어있다. 아무리 밝게 리(理)의 세계를 깨우쳤다 할지라도 기(氣)가 받쳐주지 못하면 스스로 밝을 수 없으며, 에너지가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理가 밝지 못하면 제힘을 발휘할 수 없다. 깨달음을 얻었으면 氣의 운영을 공부하는 것이 순서이며, 축기(蓄氣)와 운기(運氣)가 되었다면 반드시 밝은 깨우침이 수반되어야 한다. 성(性)과 명(命)은 균형을 잃으면 안 된다. 어느 한쪽이 기울면 나머지 한쪽마저 흔들리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자의 태도 만년(萬年) 전 마음이나 지금의 마음이나 마음은 같다. 그 마음에 무엇이 덧입혀졌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캐릭터가 결정된다. 마음이 바뀌면 외모(外貌)도 바뀐다. 눈매가 바뀌고 피부가 바뀐다. 세상은 끝없이 변하고 마음도 변한다. 그것을 알아챈 것이 깨달음이다. 마음의 속성을 안 사람은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다. 마음의 속성을 알고 그런 것으로 인정하고 살면 되기 때문이다. 타인을 바꾸려 하지 말라. 그대로 두고 바라만 보라. 그것이 지혜로운 자의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