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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깨달음이란 즉시 알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돈오(頓悟)'라고 합니다. 깨달음은 단지 '내가 누군지를 아는 것'입니다. 교리(敎理)가 아니며, 배우거나 믿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배운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깨달음은 멀어집니다. 학문으로 덮으려 하기 때문에 내가 점점 괴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다리를 틀고 앉을 필요도 없고, 가족을 버리고 산속으로 숨을 필요는 더더구나 없습니다. '지금 여기' 이렇게 있는 것이 바로 '나'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무아(無我)도 아니고, 참나(眞我)도 아닙니다. 그것을 가지고 무아(無我)니, 진아(眞我)니, 따지는 것부터 깨닫기 싫은 핑계입니다. 깨달음을 어렵다고 하는 이유는 자기를 아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으며, 만났다..

(하루에 두 시간을 면벽(面壁) 수련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다음은 그 사람과의 대화이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위해 벽 앞에 앉아 계신가요?’ ‘깨닫기 위해서지요.’ ‘그렇게 앉아있으면 벽에서 깨달음이 나오나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이렇게 하고 있노라면 깨닫게 된다고 믿습니다.’ ‘무슨 깨달음인가요?’ ‘내가 누군지 알게 되는 거지요.’ ‘(놀라며) 당신은 자기가 누군지 모르나요?’ ‘아! 알긴 하지만 참나(眞我)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참나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찾기 위해 이렇게 수련하고 있는 겁니다.’ ‘잃어버렸나요?’ ‘모르겠습니다.’ ‘제가 찾게 해드릴까요?’ ‘정말요?’ ‘여기 이렇게 있지 않습니까?’ ‘네에??’ ‘일단 눈은 뜨고 저를 보세요. 제가 보이나요?’ ‘네, 보입니다...

'무아(無我)'를 믿고 있다면, 세상 살아가기가 아주 곤란할 것이다. 일단 자기가 가진 모든 소유를 자기가 있다고 하는 사람에게 양도해야 한다. 그래야 정말로 '나 없음'이 증명될 것이니 말이다. 재물과 권력, 명예 정도를 양도하기는 쉬울 것이다. 하지만 몸과 마음, 그리고 자기주장과 믿음까지 모두 포기할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 내가 숨 쉬며 살아있기 때문에... 주장을 할 때도 거기엔 '내'가 있다. 배가 고프면 배고픈 걸 알고, 졸리면 졸린 줄 알고, 죽비 소리에 깜짝 놀라는 바로 '그놈' 말이다. 이른바 '참나', 즉 진아(眞我)라 부르는 그놈, 우리가 깨닫기가 어려운 이유는 없는 그것을 찾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으며, 생긴 적도 없었고, 사라지지도 않는 ..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메타인지(Metacognition)'를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다. 오래지 않아, 메타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 대접을 받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것은 메타인지를 계발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정신작용을 가리켜 메타인지(Metacognition)라 한다. 메타인지가 가진 사람은 다각적인 사고를 한다. 그는 그 차원에서 자기관찰을 하고, 알아채고, 자기 통제를 한다. 그러므로 사소한 것으로 마음 상하지 않는 즐기는 인생이 가능하다. 학생이라면 성적이 오를 수밖에 없다. 맞는지/틀린지, 내가 알고 있는지/모르는지를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보기 때문이며,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스나이퍼가 일을 할 때는 가급적 장애물 없이 타켓을 정확히 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해야 한다. 깨달음(見性)을 구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각자의 입장에서 설명을 진행하고 있으므로, 헷갈리다가 잘못되면 엉뚱한 곳으로 빠져들기 십상이다. 깨달아야 할 것은 한둘이 아니지만, 그 모든 것이 키워드 하나만 확실하면 연쇄해서 하나하나 풀린다. 1700 공안(公案) 중 하나가 열리면, 나머지가 모두 열린다는 말은 그런 뜻이다. 단연 공안의 대표는 "이뭣고", "나는 누구인가"일 수밖에 없다. 무아(無我)니, 연기 중도니, 열반이니, 하는 4차원적인 말들은 나중에 살펴도 된다. "나"라고 일컬어지는 것 중 무상(無常)한 것, 시공(時空)에 묶여있는 것들부터 하나하나 제하여 본다..

깨달음을 가르치는 선생(스님)에게 물었다. "깨달으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그는 "질문이 틀렸다"라는 심오(深奧)한 대답을 했다. 하지만 지성(知性)을 가진 자는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간다. 본능(本能)에만 의지하는 짐승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싯다르타가 출가(出家)한 동기는 혼돈과 고통의 해결이었고, 그는 문제를 해결했다고 전해진다.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깨닫기 위해 돈과 시간을 바친다. 어떤 이는 인생 전체를 깨달음에 밀어 넣는다. 그곳에 있을 때, 그들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산에서 내려와 세상과 며칠 살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내가 만난 사람 중 진정으로 여여(如如)하게 지내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왜 그런가? 깨달음(?)만으론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에너지가 받쳐주지 못해..

깨달은 자는 남들이 자기를 몰라준다고 해서 개이하지 않는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적인 생각을 넘어서서 사물을 바라볼 줄 안다. 이른바 이치에 입각한 객관적 사고이다. 그는 혼자여도 외롭지 않으며, 불안하거나, 우울하거나, 두렵지 않다. 그는 사물을 직시(直視)하며 살기 때문이다. 외롭거나 불안, 우울, 두려움은 자기를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자기를 주시(注視)하는 순간, 그런 것들은 즉시 사라지고 만다. 그는 자연 친화적이다. 자기확대를 하여 산이나 물, 나무나 돌과도 친구가 된다. 그는 늘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며, 그것으로 자족(自足)하며 산다. '지도무난(至道無難)'이라 했다. 깨달음은 어렵지 않다. 자기 주시가 바로 되는 순간, 깨달음은 즉시 온다.

메타인지(Metacognition)에 대해 연구자들은 '본인이 알고 있는 것과 미처 알지 못한 것을 구별하는 능력'이라 설명한다. 그것을 상위인지(上位認知)라고도 부른다. 사실상 학습 능력이 뛰어난 고득점자들을 조사해 보면 연구자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메타인지 능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구라도 기법을 습득하면 학생들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을 것이고, 연구원들은 쓸모 있는 연구 실적을 올리는 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메타인지는 거기서 한 발 더 나간다. 그것은 깨달음을 얻고 신선(神仙)이 되고자 하는 수행자에게 필요한 기능이다. 그것은 단순히 지식을 인지해 축적하는 것을 넘어, 인지하고 있는 당체(當體), 즉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끼는 자기(自己)를 인지하는..

하루는 악마가 사람들이 마시는 우물에 독을 탔다. 악마가 독을 탄 것을 아는 사람이 있었고, 그는 당연히 그 우물물을 마시지 않았다. 그 독은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것이었고, 그 후 사람들은 미쳐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 취급을 하게 되었고, 결국은 그가 그 나라에서 살지 못하게 만들자, 그 역시 그 우물물을 마셨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Thomas Szasz는 “정신질환이라는 것은 감염병처럼 "병이다, 아니다"를 나눌 수 있다기보다는, 어느 한 사회가 사회의 규범으로 정해 놓은 것에 맞지 않으면 정신질환이다. 고로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 사느냐에 따라 정신질환의 정의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과학적인 검사(?)에 의해 확실히 밝혀지기 전에는 말이..

자기가 누군지를 깨닫고 나면, 보통은 환희심에 휩싸인다.그리고 누군가에게 그것을 전해주려 한다.하지만 그것을 받겠다는 사람은 가뭄에 콩 나기처럼 아주 희귀하다.오히려 과대망상 내지는 현실도피가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이 더 많다.그런 점에 싯다르타는 보기 드문 행운아이다.다섯 명의 제자를 얻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으며, 그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수천의 추종자를 지닌 성인위(聖人位)에까지 올랐으니 말이다.깨달음의 시대다.이젠 깨달음이 더 이상 자랑이 못 된다. 누구나 약간의 집중력만 유지하면 어렵지 않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시작하는 마당(初場)엔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로 덤벼들어야 한다.'몰라, 괜찮아" 정도로는 남이 먹다 남긴 것 조금 얻어먹기에도 부족하다.깨달음의 가치를 알고, 당분간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