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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화두(話頭)를 보는(看) 것을 통해 성품(性品) 자리에 이르는 수행법을 간화선(看話禪)이라 하고, 단전(丹田)을 지키는 것을 통해 밝음자리에 통하는 방편을 意守丹田이라고 한다. 선도(仙道)를 단지 불로장생을 꾀하는 방술(方術)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것은 전체에 대한 식견 부족 때문이다. 성품을 깨우치는 일은 모든 인류 모든 종파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기독교에도 나름 관상법(觀想法)이 있으며, 거경궁리(居敬窮理)라는 훌륭한 공부가 유교(儒敎)에도 있다. 간화선의 시작은 조사선(祖師禪)이다. 처음엔 스승이 직접 그 자리(本來面目)를 가리켜 깨우쳐 주던 것에서 제자가 많아지자 형편상 화두라는 방편을 사용하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다. 선도는 성품자리에 이르기 위해 길잡이역으로 에너지(氣)를 사용한다..

눈이 열리고(開眼) 나면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여, 이 친구, 저 친구에게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법입니다. 싯다르타 역시 깨달음을 얻은 후 친구들에게 전해 주고파서 몇천 리를 달려갔다지요?그러나 아무나에게 떠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청하지 않는 사람에겐 설(說)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잘못하면 봉변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가치 있는 것은 가치를 아는 사람,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야 합니다. 깨달음은 섣불리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 귀가 닫힌 사람은 알아보지 못합니다.

BC 1300년경부터 인도는 침입자 아리안(Aryan)이 만든 브라만교(Brahmanism)의 지배 아래 있었으며, 브라만교는 "베다(Veda)"를 기초로 하여 사제(司祭)인 브라만이 주도로 신분(Caste)제도를 도입하여 국민을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등으로 차등했다.강령은 첫째, 베다는 神의 계시이므로 의심하지 말 것, 둘째, 제사를 통해 재앙을 쫓고 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셋째, 브라만은 존귀하므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었고, 다소 주술적 신앙이었다.BC 4~5세기경 싯다르타가 출현하여 Atman 없음과 고통의 소멸을 주장하며 신(神)의 개입 가능성을 차단했고,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여 신분 차이를 배격하여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이른바 불교(佛敎)다.싯다르타 입..

평생을 닦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착하고 고지식하여 늘 가던 길, 그 길 밖에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깨달음을 위해서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이 간편한 방법이며, 그것은 돈오(頓悟)로 가는 가장 바람직한 길이다. 그러나 많은 수행자가 그 길은 너무 낯이 선, 자기로선 버거운 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라. 막히면 돌아가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길은 그 길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소 시간이 걸릴지 몰라도, 결과적으론 돌아가는 길이 더 빠를 수도 있다. 선도(仙道)는 깨달음보다는 에너지 연단(鍊鍛)에 더 우선을 두는데, 그 이유는 그 길이 돌아가는 듯 해도 더 빠르게 도달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와 자성(自性)은 다르지 않으며, 건강한 몸에서 건강..

하느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었는가?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는가? 천당과 지옥은 존재하는가? 혹시 그런 것들을 믿고 있다면, 그것은 아직도 크리스마스 전날 밤 산타할아버지가 굴뚝으로 들어오신다고 알고 있는 세 살배기 아이와 같다. 믿음이란 단지 선택일 뿐이다. 그냥 그렇게 믿기로 생각하는 것이 믿음이다. 세상에 믿을 것은 거의 없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늘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관심 가질 것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당신 자신, 즉 믿기로 하는 그 마음(안 믿기로 하기도 하지만...)뿐이다. 좀 더 엄밀히 말한다면, 생각들이 모두 제거된 오락가락하지 않는 순수한 마음(本來面目), 그것은 변하지 않으며, 세상의 시작이고 끝이다. 그것으로부터 세상은 일어나고 꺼진다. 그것이..

깨닫지 못한 사람에겐 이 몸과 마음이 꿈(妄想)에 불과하지만, 개안(開眼)을 한 사람에겐 이 몸도 마음도 세상도 실재(實在)한다. 왜냐하면 그때부턴 주인으로 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밝아진 이후는 세상에 살든, 중심 에너지와 합일하든, 그 결정권이 모두 자기에게 있게 된다. 선도(仙道)를 닦으면 그리된다. 성명쌍수(性命雙修)가 아니면 혼은 허공에 날아오르고, 몸은 흙이 되어 흩어지고 만다. 그것을 혼비백산(魂飛魄散)이라 한다. 하지만 性命雙修를 이룬 사람은 자격이 한 단계 승급하여, 죽어서도 지선(地仙)의 자리에 올라 자유(Moksha)를 누리게 된다. 仙道의 불로장생(不老長生)이나 장생불사(長生不死)는 그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性命雙修란 밝음(깨달음)과 함께 득명(得命), 즉 命에 대한 운영권을 ..

묵조(默照)란, "묵묵하게 비춘다"는 의미가 있다. 여기서 묵묵하다는 것은 생각을 내려놓는다는 뜻이다. 간화선(看話禪)의 무자(無字) 화두(話頭)나 수미산(須彌山), 방하착(放下着)이 하나같이 생각을 내려놓는 방편이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묵조선(默照禪) 역시 폄하 받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유명한 조사선(祖師禪) 교사 한 분은 망상(妄想)이 생길 때마다 무릎을 탁 치는 것으로 깨어있음을 회복한다고 한다. 행법들을 비교해 보면 默照禪은 상당히 우아한 참선법(參禪法)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도(仙道)가 흐르는 氣를 인지하는 것(의수단전)으로 본래면목(本來面目)과 계합(契合)하듯이 말이다.

Q: 왜 그들은 술 마시는 것을 죄(罪)라고 하나요? A: 술을 마시면 신선(神仙)이 되어 저쪽 세상을 엿볼 수 있게 되고, 그리되면 그들 맘대로 다루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Q: 왜 사람들은 비싼 술값을 치르면서도 술을 마시는 걸까? A: 술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다. 그것은 우리를 일시적이라도 "그 자리" 본래면목(本來面目)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Q: 술이 체질에 맞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마셔 보도록 해봐라. 하지만 좌절하지는 말라. 찾아보면 술 말고도 깨달을 수 있는 길은 아주 많이 있으니까... Q: 그렇다면 왜 술을 마시는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가? A: 그것은 기도하는 사람과 명상하는 사람이 깨닫지 못하는 이유와 같다. *배는 강을 건너는 수단이다. 배가 강기슭에 ..

오감(五感) 중에 가장 강한 것은 시각(視覺)이며,성품을 알아채기 위해선 내부(內部) 시각이 필요하다.흔들림 없는 알아챔을 위해선 끊김 없는 관찰 능력(sustained observation)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굴절된 시각을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초견(初見) 후 흐려지거나 지속적 알아챔에 지장이 생기는 이유는 에너지 부족 때문이며,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 bio energy(氣)이다.깨달음 이후 더 주시력(focused watching)을 길러야 하며, 선가(仙家)에서는 소주천(小周天)이 그 기능을 한다.그것이 관찰력의 생활화를 만들어 준다. 그것이 완전한 깨달음 상태를 만든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선 진정한 안식이 꼭 필요합니다. 몸과 마음을 이완(Relax)하고 푹 쉬어야 합니다. 일만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것저것 머릿속이 복잡해선 결코 하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예수는 안식일에 일(병 고침)을 했습니다. 일반론으로 보면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 듯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매일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요단강 침례 이후 안식을 통해 하느님의 아들임을 늘 확인하고 살았습니다.안식은 편히 쉬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함께 있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이 아닌 날도 늘 안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겐 따로 안식일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임마누엘(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인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