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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단전의 핵, 단전의 중심을 찾아내야 합니다.태식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단전의 핵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그것이야말로 넘사벽입니다.그것을 모르면, 진정한 내가 누군지를 알 수 없으며,당연히 양신(養神) 공부를 바르게 할 수 없습니다.단전의 핵은 생명의 근본 자리로 통하는 Gate입니다.에너지 장악을 위해 꼭 확보해야 하는 것이 단전의 핵입니다.양신 공부는 선도의 마지막 공부입니다.생명의 차원이 바뀌는 공부이기 때문입니다.아는 자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습니다.단전의 핵을 아는 사람만이 끄달림이 없는 새로운 세상을 삽니다.마치 구경나온 여행자처럼 말입니다.
'유기(留氣)'란, 끌어들인 기운을 丹田에 머무르게 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숨을 멈추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되며, 호흡 간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유기를 바르게 하기 위해서 태극 호흡을 연습하면 좋다. (졸저 민정암의 氣 참조) 날숨이 제대로 되면 들숨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호흡은 한 벌이기 때문이다. 단전호흡이 무르익으면 날숨(내쉬는 숨) 때 반(半) 역호흡이 되면서, 단전 상단에 쳐진 그물이 진기(眞氣)를 붙잡아 가두게 된다. 그것이 태극 호흡이다. 용호결에서는 폐기(閉氣)라 하였지만, 머무를 유(留)자를 사용한 쓴 것에 유의해야 한다. 유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호흡과 동작이 콤비를 이루는 외단공(태극15세)을 배우면 효과적이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절대로 필요하며, 그 핵심은 호흡에 있다.호흡에는 폐호흡과 피부호흡이 있으며, 그중 30%는 폐가, 나머지 호흡은 알게 모르게 피부가 담당한다. 코로 들어온 공기는 폐에서 그치고 말며, 단전까지는 이르지 못한다.단전호흡은 별개의 호흡 시스템이다.단전호흡은 피부를 통해 대부분의 에너지를 끌어들이는데, 그것은 단전호흡을 해보면 알 수 있다.물론 단전호흡 역시 폐의 도움을 받지만, 폐가 하는 일은 단지 호흡의 촉진이다. 그러므로 조건이 바뀌어 단전이 완전한 일을 하게 되면 폐는 필요 없게 된다. 현재로선 이해가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태아는 코를 사용하여 숨 쉬지 않는다. 그들은 탯줄을 사용한다. 그래서 단전호흡의 완성을 태식(胎息)이라 하는 것이다.에너지체, 즉 양신(陽神)..
내가 없으면 먹을 수도, 잠잘 수도, 사랑할 수도 없고, 내가 없으면 알아챌 수도, 깨달을 수도 없으며, 내가 없다면 무아(無我)를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나는 실재(實在)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합니다. 나를 알아챈 것을 가리켜 '깨달았다' 합니다. 몸과 마음은 내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몸의 변화를 알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알아채는 그것, 그것이 바로 '나' 본래면목(本來面目)입니다.
"선도(仙道)의 맥(脈)은 이미 끊겼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선도라 할 수 없는 사이비가 선도를 표방하고, 신앙화하여 사리사욕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단체들이 여럿 있다. 산속에 숨어 고요히 앉아있기만 하는 것만이 선도는 아니며, 자랑삼아 초능력을 보이는 것도 선도가 아니다. 단전(丹田)과 소주천(小周天) 이야기가 나오면 두루뭉술하게 비껴가는 자칭 선도인(仙道人)들이 많다. 꼭 알아야 할 것은 단전과 소주천이 빠진 것은 선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입으로는 태식(胎息) 운운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을 나는 만나본 적이 없다. 생각(意念)으로 미미하게 기(氣)를 느끼면서 그것을 소주천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너무 많다. 진정한 선도라면 구체화한 성명쌍수(性命双修)를 ..
태식(胎息)은 원초적인 '숨'을 말하며, 견성(見性) 이후에도 필히 이어져야 할 공부다. 깨달음이 오고 나면, 보이고, 들리고, 느끼고, 드러나는(見聞覺知) 것들 모두가 그 자리(本來面目), 태식의 알아챔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아직 아니다. 그것들(견문각지)이 모두 한통속이기는 하지만, 따로따로 기능하고 있어서 끊김과 이어짐이 늘 교차하고 있다. 항상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오직 숨(息)뿐이다. 바로 생명(生命) 자리이기 때문이다. 태식은 내호흡(內呼吸)이며, 그것을 살려내면 따로 마음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無爲) 그 자리(本來面目)와 함께 있게 된다. 견성(見性)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 태식이 필요한 이유다. 태식이 없으면 일견(一見)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깨달음이라 ..
노자(老子)는 일견 냉정해 보입니다. 그는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그는 핵심만 간단히 이야기합니다. 그는 "마음은 허(虛)하게, 배는 실(實)하게(虛其心實其腹)"로 성명쌍수(性命雙修)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선도(仙道)만의 깨우침과 동시에 장생불사를 동시에 얻는 묘책(妙策)입니다. 仙道에는 마음을 비우는(虛) 별도의 복잡한 행법(行法)이 없습니다. 단지 배를 實하게 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마음이 비워지도록 합니다. 단전을 지키는 것(意守丹田)이 그것입니다. 처음엔 정확한 단전(丹田) 자리를 몰라도 괜찮습니다. 굳이 애를 써 숨을 조작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랫배(下腹)의 중앙에 마음을 두고 천천히 숨을 지키노라면 얼마 안 가서 자연스럽게 丹田이 드러납니다. 그 자리가 에너지의 중심 센터입니다. 태식(胎息..
태식(胎息)이란, 마치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숨을 쉬듯 원초적인 숨을 말합니다. 태식은 선도(仙道)호흡법의 극치(極致)로, 일명 우주 호흡이라고도 합니다. 태식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선 복식(腹式)호흡, 단전(丹田)호흡, 주천(周天)호흡, 체(體)호흡의 네 단계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위해선 축기(蓄氣; 閉氣)와 더불어, 전신적인 에너지 통관(通貫), 즉 소주천(小周天)이 필수적인데, 그것이 완성되어야만 우주호흡(大周天), 즉 태식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胎息은 원천적 에너지, 원기(元氣)에 연결되는 것인데, 그것이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태식이 이루어지면 내외(內外)의 경계가 사라집니다. 호흡 한 번에 전 우주를 품었다, 풀었다 하면서 의식(意識)의 영역이 하늘 끝까지 뻗어나갑니다(大藥)...
생명이 시작되는 과정의 중심에는 '숨'이 있으며, 그것은 에너지(氣)의 전이이다. 그것은 심장(心臟)을 움직이는 원동이며, 의식과는 연기(緣起) 관계이다. 숨은 생명과 함께 시작(turn on)되는 의식 이전의 실제이다. 숨은 호흡과는 크게 다르며, 엄밀히 말해 태(胎)를 벗어나 세상으로 나올 때 호흡 속에 자리 잡아 호흡의 주체가 된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이루는 데 호흡의 공(功)이 가장 컸다는 것은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안정된 호흡은 의식의 깊은 차원, 즉 삼매(三昧; samadhi)를 불러오고, 그것은 깨달음의 실마리가 된다. 정혜쌍수(定慧雙修)가 언급되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의식을 호흡에 몰입시킬 때 일상적이지 않은 의식이 확보되는데, 인도 수행자들은 그것을 사선정(四禪定; 네 단계 삼매)이..
태식(胎息)을 모르고 견성을 말하는 것은 연료 없는 배로 태평양을 건너자는 것과 같다. 그리고 태식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숨을 알아야 한다. 숨은 호흡(呼吸)이 아니다. 숨은 호흡의 원동(原動)이며 깨달음의 핵, 진종자(眞鍾子)라는 것부터 이해해야 한다. 태식을 깨달음의 완성이라 하는 것은 태식을 이해하면 생사를 뛰어넘어 존재의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것을 위해 어떤 방편을 이용해도 좋다. 혹시 방편을 쓰지 않고 드러나게 하면 더욱 좋지만... 숨은 生命(氣)이다. 그것은 살아 있음의 증거이며, 모든 존재 활동의 동력이다. 우리는 노력 없이 그것을 그냥 얻었지만, 세상에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숨을 알려면 잠시 잡다한 세상사를 뒤로 미뤄놔야 한다. 그것은 생각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것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