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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과 의식의 메커니즘 본문

和光同塵

숨과 의식의 메커니즘

thedaywemet 2019. 11. 28. 22:20

<배아의 순환계>


생명이 시작되는 과정의 중심에는 '숨'이 있으며, 그것은 에너지(氣)의 전이이다. 그것은 심장(心臟)을 움직이는 원동이며, 의식과는 연기(緣起) 관계이다.


숨은 생명과 함께 시작(turn on)되는 의식 이전의 실제이다. 


숨은 호흡과는 크게 다르며, 엄밀히 말해 태(胎)를 벗어나 세상으로 나올 때 호흡 속에 자리 잡아 호흡의 주체가 된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이루는 데 호흡의 공(功)이 가장 컸다는 것은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안정된 호흡은 의식의 깊은 차원, 즉 삼매(三昧; samadhi)를 불러오고, 그것은 깨달음의 실마리가 된다. 정혜쌍수(定慧雙修)가 언급되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의식을 호흡에 몰입시킬 때 일상적이지 않은 의식이 확보되는데, 인도 수행자들은 그것을 사선정(四禪定; 네 단계 삼매)이라 불렀다. 그 이후에도 공무변처(空無邊處), 식무변처(識無邊處),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비상비비상처정(非相非非相處定) 등 설명이 어려운 경계(境界)가 체험된다고 그들은 전한다.


싯다르타는 선정의 최고봉 자리(비상비비상처정)에 이어 멸진정(滅盡定)까지를 체험했다고 전해지지만, 정작 그가 엄선하여 제자들에게 추천한 것은 '아나파나 사띠(anapana sati)', 즉 호흡 지켜보기였다.


그의 死後, 제자 중 상당수가 호흡에 대해 거의 언급이 없거나 무관심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들대로 그럴만한 이유는 있었겠으나, 과연 그것이 최선인지에 대해서는 매우 의심스럽다.


본래 호흡과 의식은 나눠질 수 없는 것이며, 사실상 그 둘은 하나(不異)이다. 그 둘은 연기(緣起)한다. 그러므로 어느 하나를 우위로 간주할 수 없다. 


호흡을 몸의 차원으로 강등(降等)시키면서 호흡과 의식을 별개로 생각하게 되었고, 호흡은 단지 몸을 유지하는 보조적인 역할로 밀려났다. 거기서부터 수행에 심각한 오류가 생기게 된 것이다. 


호흡을 통해 의식이 숨(氣)을 만나는 것보다 깨달음을 회복하는 효율적인 방편은 없다. 의식이 호흡을 지키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몰입이 유지되며, 종내에는 삼매에는 들게 되어 깨달음의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호흡보다 더 생명 유지와 깨달음에 효과적인 것은 사실상 없다. 그것은 숨(생명)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싯다르타 사후, 佛道는 몰이해와 다양한 방편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호흡의 가치가 약화되었고 중국 이후 불교는 유도(儒道)와 도교(道敎)의 영향으로 새로운 법(조사선, 간화선 등)들이 도입되면서 호흡법은 외도 취급을 받게 되었다.


싯다르타는 수행의 혁명가였다. 불도가 열반(涅槃; 불이 꺼짐)을 구경각(究竟覺)이라 하여 그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인도의 전통을 따르는 보수적 경향(觀)이라 아니할 수 없다.


싯다르타의 불도와 백두산 선도(仙道)는 호흡을 그 중심에 둔다는 면에서는 서로 맥을 같이 하나, 선도는 그 귀결이 태식(胎息)으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서로 길이 다르다. 


태식(胎息)은 폐호흡이 아니다. 그것은 임시로 호흡을 사용할 뿐이다. 그것은 숨(生氣)을 깨워내 현실화시키는 것이 주목적이다.


세상에 나오면서 의식과 숨의 분리가 이루어졌으며, 불행하게도 그때부터 혼돈은 시작되었다. 태식의 회복은 숨과 의식의 재결합이며, 고통으로부터의 영원한 해방이다.


혼비백산(魂飛魄散)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혼은 날아올라 어디론가 가고, 백은 흩어져 흙으로 돌아가 버린다는 뜻으로, 원래 그것은 존재의 해산(解散)을 나타내는 표현이었다.


의식은 혼(魂)의 영역이고, 숨은 백(魄)과 관계를 가지며, 그 둘의 분리는 생명유지의 종료인 반면, 서로 합치를 이루고 있는 한, 생명은 언제까지나 유지가 가능하다.


仙道의 가르침인 영생불사는 그 근거가 태식에 있다. 태식은 원초의 숨이며, 그것은 생명의 본래 자리로의 회귀(回歸), 즉 환지본처(還至本處)의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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