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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회원 한 사람이 자신의 박사학위 취득을 알리려고 내 거처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고급 은행원이며 MBA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가톨릭을 신앙(信仰)하고 있었는데, 대화가 자연스럽게 신앙으로 옮겨갔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가톨릭이 창시되는 시점, 예수교를 국교로 정하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에 그들(로마인)이 이미 믿고 있었던 태양신 숭배를 삽입시켰으며, 그 후 그들은 기독교의 가르침(사랑)에 위배되는 잔인한 일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자행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대 같은 인텔리가 비합리를 가득 담은 그런 신앙단체에 소속될 수 있는가?” 그는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답했다. “앞으로 그런 것에 대해선 재론치 마세요. 그것은 나의 신앙이고, 신앙은 자유입니다.” 신앙(信仰)이란 “믿어서 우러..

교리(敎理) 제일주의, 율법(律法) 제일주의, 경전(經典) 제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평생을 율법과 경전에 바치며 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한번 깨달음 체험을 하는 것과는 비길 수가 없다. 깨달음이란 진리(眞理)와 계합(契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리나 율법이나 경전은 진리(眞理)가 아니다. 진리란 영원해야 한다. 어제는 이랬는데 오늘은 아니라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동쪽에선 이것을 지키는데 서쪽에선 저것을 지킨다면 그것 역시 진리는 아니며, 어제는 이것을 믿었다가 오늘은 저것을 믿는다면 그것을 종교(宗敎)라고 불러선 안 된다. 남의 말을 듣거나 책에서 읽은 것을 진리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철두철미한 체험을 통하여 깨우친 후 어느 쪽으로 가늠한다고 할지라도 전혀 틀림이 없는 과거, 현..

요즘에 와서 몸 공부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어 기쁜 마음이기는 하지만, 나는 마음공부와 함께 필히 몸 공부를 병행하여야 한다는 주장 때문에 장기간 이 나라의 수행자들로부터 백안시(白眼視)를 당했던 사람이다. (지금도 일부로부터 거부를 받고 있지만...) 마음 공부를 한다는 사람들은 호흡 공부도 눈 아래로 보던 시절이라 몸 공부가 받아들여질 리는 만무했다. 당시 (80년대) 부처님의 호흡법 아나빠나사띠(Anapanasati) 역시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이 나라에서 몸 공부가 빈천(貧賤)해진 이유는 조선 시대의 사회 구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당시 몸 쓰기는 상민(常民)들에게나 필요했고, 소위 양반(兩班)들은 몸 움직이기를 기피하고 살았다. 도인법(導引法)을 다룬 퇴계 선생의 활인심방..

하루 최소 1시간은 당신이 몸을 관리하는 시간으로 쓰십시오. 스트레칭을 하거나 워킹 머신(walking machine)에서 걷기 정도를 해도 좋습니다. 누구처럼 빨래판 복근에 근육을 울퉁불퉁하게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하루 한 번쯤은 근육과 관절들을 유연하게 하고 힘을 주어야 합니다. 특히 목, 어깨 관절과 허리에는 신경을 써야 합니다. 기운이 없다고 하거나 나이 핑계는 대지 마십시오. 당신이 관리해 주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 할 수 없습니다. 몸이 약하거나 기능이 정지하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닙니다. 몸이 약해지거나 기능이 정지하면 먹기도 어렵고, 자기도 힘들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기도 어렵고, 가슴 저리는 음악을 듣기도 어렵습니다. 벌어 놓은 돈을 나를 위해 쓸 수도 없고, 권력을 부릴 수도 어렵고, 깊..

“할 수 있다”고 하는 자만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어떤 수준의 사람으로 생각하느냐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지레 자기비하를 하지 마십시오. 무슨 일이나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쉽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어려운 법입니다. 소주천(小周天)은 범인(凡人)이 하는 겁니다. 태어나기를 신선(神仙)으로 태어났다면 소주천 같은 것은 필요 없겠지요. 신심명(信心銘)을 보면 첫머리에, “도(道)에 이르기는 어렵지 않다(至道無難)”고 쓰여 있으며, “간장 맛 짠 줄만 알면 깨닫는다”, “세수하다 코 만지기보다 더 쉽다”는 이제 도판(道板)에 널리 공개된 말입니다. 석가모니는 성도(成道) 후 단지 며칠 만에 다섯 비구(比丘)를 견성시키시고는 “이제 세상에 여섯 아라한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선(神仙)의..

밝아진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퇴색(退色)의 길을 가고는 있으나, 아직도 한국의 기독교는 세(勢)를 과시하고 있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란 말로 전도를 하는 사람이 대접을 받지 못하자, 요즘은 “구원받으셨습니까?”라는 조금 수준이 있는 전도 용어가 생겨났단다. 물론 지금 살기도 바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지만 말이다. 청파동의 유명한 K 목사는 "너희는 이미 부처다”라는 부처의 멘트와 비슷하게, "우리는 모두 이미 구원받았다"면서 그런 질문을 받으면 "무슨 구원이요?"라고 되물으라는 조언을 주고 있다. 구원이란 두 가지 의미로 집약할 수가 있는데, 첫째는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여 줌"이고, 둘째는 (기독교적 의미로) 인류를 죽음과 고통과 죄악에서 건져 내는 일..

사람이 나머지 존재하는 것들과 다른 이유는 '사람다움' 때문입니다. 성경책은 사람만이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 창세기 1:26) 사람에게는 나머지 것들과는 다른 특별한 기능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깨달음'입니다. 그것을 '안다는 것을 아는 기능'이라 하여 상위인지(Metacognition)라고도 부르는데, 즉 한 단계 높은 앎을 거두는 인지기능입니다. 불교(佛敎) 용어, 견성(見性)이라는 말은 너무나 타당합니다. 직역하면 "성품(性)을 마음으로 터득하다(見)"가 됩니다. 신기하게도 세상은 깨달을 수 있는 조건들로 가득합니다. 인간은 원래 깨닫도록 구조되어 있기 때문입니..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지내게 하라." 아버지 장사라도 지내고 스승을 따르겠다는 제자의 부탁에 대한 예수의 대답(마태 8:22)이다. 죽은 자가 어찌 장사를 지낼 수 있을까? 그 말은, 살아는 있되 세뇌(洗腦)에 의해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로봇과 같은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모르는, 입력된 대로만 움직이는 답답한 사람을 가리킨다. 노지(老子)의 언급처럼 우리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을 만난다. 첫째, 道를 전하면 즉시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현명한 사람(聞道勤而行之), 그런 사람을 상사(上士)라 하고, 둘째, 부정하지는 않고 듣기는 하지만 이해가 늦고 갈팡질팡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聞道若存若亡), 그런 사람을 중사(中士)라 한다. 셋째, 道를 듣고는 자기의 기..

운전 실력보다는 길을 잘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운전 실력이 좋다 할지라도, 길을 모른다면 어떻게 목적지에 도달하겠는가? 세상엔 깨달음으로 가는 셀 수 없는 길이 있다. 하늘은 모든 이가 깨닫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깨닫기 위해 별짓을 다 한다. (물론 깨달음을 희구하는 일부 사람에 국한하지만) 깨달음이라는 것이 어딘가로부터 온다고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구절(mantra)을 외우고, 우상에게 절을 하고, 단식(斷食)을 하고, 죽치고 다리 꼬고 앉아있고, 자해(自害)를 하고, 산(山)속에 들어가고, 인도 미얀마를 가고, 신앙 단체에 많은 돈을 바치고, 출가(出家)를 하고.... 그러나 그런 것을 통해 깨닫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그런 짓을 통해 깨닫지 못한다..

초장(初場)에 선도(仙道)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깨달음은 내려놓고 오직 에너지(氣) 공부에만 전념합니다. 생각을 멈추기만 하면, 자성(自性)은 바로 드러나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氣 공부는 단계적으로 가야 합니다. 먼저 변형된 체형부터 바로 잡습니다. 그래야 氣를 잘 통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다음 氣를 모으는 공부를 합니다. 일명 축기(蓄氣)입니다. 축기가 되지 않으면 운기(運氣)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 과정을 진행하는 동안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잔병이 사라집니다. 仙道를 불로장생술이라 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어서 소주천(小周天)에 진입하는데 仙道人들은 그것을 신선대학(神仙大學) 입학 허가서라고 말합니다. 입학만 했다고 졸업하는 것은 아닙니다. 10층 위에는 또 11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