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구원받으셨습니까? 본문
밝아진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퇴색(退色)의 길을 가고는 있으나, 아직도 한국의 기독교는 세(勢)를 과시하고 있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란 말로 전도를 하는 사람이 대접을 받지 못하자, 요즘은 “구원받으셨습니까?”라는 조금 수준이 있는 전도 용어가 생겨났단다.
물론 지금 살기도 바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지만 말이다.
청파동의 유명한 K 목사는 "너희는 이미 부처다”라는 부처의 멘트와 비슷하게, "우리는 모두 이미 구원받았다"면서 그런 질문을 받으면 "무슨 구원이요?"라고 되물으라는 조언을 주고 있다.
구원이란 두 가지 의미로 집약할 수가 있는데, 첫째는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여 줌"이고, 둘째는 (기독교적 의미로) 인류를 죽음과 고통과 죄악에서 건져 내는 일을 말한다.
교회 돈을 횡령하여 대법에서 징역형이 확정된 여의도의 J 목사는 "우리 교회 1년 다니고도 부자가 되지 못했다면 잘 못 믿은 것이다(직접 들었음)"라고 말한다. 그의 구원은 시대에 맞게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교육부 장관을 지낸 실존주의(實存主義) 철학의 대가 L 교수는 딸의 건강 문제 때문에 신자(信者)가 되었다는데 그의 구원은 이 세상에서 조금 더 명(命)을 잇는 것이었다. 웃음거리가 된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얼마 버티지 못하고 목사였던 딸은 사망하였다.
두 번째 의미의 구원, 즉 인류를 죽음과 고통과 죄악에서 건져 내는 일에 대해선 기독교 믿음이 없는 일반인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 번도 인류를 죽음과 고통과 죄악에서 건져 내는 일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예수)가 '속히 올 것이다', '도적처럼 올 것이다'라고 그의 책 Bible에 써놨다지만 상상(像想)이 아닌 한 그가 재림(再臨)한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무슨 구원이냐?"보다는 "구원받을 사람이 누구냐?"라고 먼저 물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당연히 그들은 "누군 누구냐? 당신이지."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 번 더 질문해 주기 바란다. "무엇을 가리켜 '나'라고 해야 옳으냐?"라고 말이다.
이 몸이 나인가? 이 마음이 나인가? 이 몸과 마음은 가만히 있지 않고 구원받을 겨를이 없이 빛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누가 무슨 재주로 구원을 받게 하는가?
게다가... 그렇게 변하고 있어 잡을 길이 없는 나의 몸과 마음을 '나'라고 하는 것이 제정신 있는 사람의 생각인가?
아니라면, 나는 누구인가?
생각해보지 않고 살았던 날이 너무 길어 다소 생뚱맞겠지만, 이 몸과 마음을 제하고 나도 남는 것이 있다. 그것이 진정한 "나"이다.
물론 에너지가 함께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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