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Taiji Yoga/9.0 기운 공부: 氣 (Cultivation of Gi) (52)
谷神不死

우리는 기(氣)가 가득한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느끼려고만 한다면 누구라도 氣를 느낄 수 있다. 생명 자체가 氣이기 때문이다. 나름 氣 전문가로 알려져서 가끔 氣의 강도를 감별해 달하는 요청을 받는다. 대개는 자기 상품에서 氣가 많이 나온다고 증언(證言)해달라는 요구다. 나는 보통 "많은 氣를 머금고 있군요. 하지만 식물이든 광물이든 氣를 머금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사실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LA에 머물고 있을 때 초청을 받아 애리조나의 세도나를 방문한 적이 있다. 氣가 특별히 강하다고 소문난 곳이다. 하루를 있어 본 결과 다른 곳에 비해서 색다른 기감(氣感)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특별하게 좋다는 점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초청자들은 물론 실망했겠지만.... 氣感이 강하기로 말하자면 ..
우리가 이미 깨달은 부처이듯이, 누구나 氣를 가지고 있다. 그것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먹고, 마시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仙道에 入門하여 지도자의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 단기간에 어렵지 않게 氣 체험을 한다. 그것은 마치 부처 공부를 하는 스승의 '할'이나 '방', 그리고 '뜰 앞의 잣나무' 소리에 담박 그 자리를 체험(言下頓悟)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사심(私心)을 내려놓았을 때 일어나는 일이지만... 초견(初見)을 이룬 사람이 갑작스러운 질문이나 역경계(逆境界)를 만나면 즉답을 하지 못하고 흔들리듯이, 氣 수련도 덜 익은 상황에선 다소 의심이 생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見性 이후 상당한 보임(補任)을 거친 후 비로소 불퇴전(不退轉)을 이루듯이, 氣 수련 역시 득기(..

깨달음(見性)을 얻었는데도 아직도 불만이 완벽하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깨달음이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초기 불교는 말하길, 깨달음도 네 단계(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층차가 있으며, 보살지(菩薩地) 역시 십 단계가 있다. 보통 10년에서 30년... 수행을 늦추지 말라는 말은 그런 연유이다. 두 번째, 에너지(氣)가 막혀 있거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예외 없이 에너지가 필요하며, 그것에 문제가 있으면 기능 장애를 일으키게 되어 있다. 仙道는 깨달음 공부보다 에너지 공부에 더 비중을 둔다. 우리는 하나같이 이미 깨달아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얻게 되면 깨달음은 빠른 시간 내에 크게 진보한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성(性)은 명(命)이 있어서 性이고, 命은 性에 근거하여 命이며, 기(氣)는 이(理)가 있어 작용하고, 理는 氣를 근거로 행세한다. 또한 혼(魂)은 백(魄)이 있을 때 魂이며, 魄은 魂이 함께 할 때 모양을 갖춘다. 깨달은 자, 오직 性만을 주장하는 주리론자(主理論者)도 배고프면 밥을 먹고, 아프면 약을 찾는다. 입만 열면 일체(一切)가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夢幻泡影)라고 하지만, 그도 먹고 잠자지 않고는 살 수 없다. 性을 알면 命을 알아야 하고, 性을 깨우치고 나면 命을 닦아야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각각이 아니다. 로미오만 읽고 줄리엣을 읽지 않을 수는 없다. 로미오만 실재(實在)하고 줄리엣은 허깨비라 해서는 안 된다. 줄리엣이 허깨비라면 로미오도 허깨비요, 로미오가 진실이면 줄리엣도 진실이기..

깨달음이 올 때 대부분의 사람은 몸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막혔던 氣가 열리기 때문이다. 강한 기감(氣感)을 느끼기도 하고, 氣가 전신으로 흐르는 것을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다. 깨우침이 몸속 기운을 깨어나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치(理致)로 알음알이만을 키운 사람에게는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의 깨우침은 머리에서 그쳤기 때문이다. 초견(初見)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어두워지는 이유는 에너지와 연결을 못 했기 때문이다. 깨우침과 氣(小周天)를 동시에 얻은 사람은 그다음부터의 공부가 점점 더 재밌고 풍요로워진다. 그런 사람은 나머지(補任) 공부를 수월하게 하게 된다. 氣의 작용이 그 자리가 흐려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도(仙道)에서 "본성(本性)과 에너지를 동시에 닦으라(..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는 것을 가리킬 때 보통 '공(空)'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空은 비어있지 않으며, 에너지(氣)로 가득 차 있습니다. 비어있다면 거기서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식물이 자랄 수 없고, 물고기가 헤엄칠 수 없으며, 새가 날 수 없고, 온갖 동물들이 움직일 수 없습니다. 空 위에 펼쳐지는 세상만사(世上萬事) 뒤에는 언제나 에너지, 즉 氣가 함께 합니다. 그 기초 위에 사회가 생기며, 문화가 펼쳐지고, 경제가 활성화하고, 정치가 일어납니다. 空은 만물이 일어나고 꺼지는 바탕이며, 그것의 핵은 氣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느님은 氣를 불어넣어 사람을 살게 했다고 했으며, 반야심경(般若心經)은 空이 곧 물질계(色), 즉 눈에 보이는 현상, 그리고 마음작용(受想行識) 모두라고 말합니다..

氣는 생각보다 먼저다. 氣는 영원하다. 하지만, 에너지(氣)는 언제나 의식(神)과 함께한다. 물질(精)도 氣가 받쳐주지 않으면 존재하기 어렵다. 사람은 정기신(精氣神)이 결합한 존재다. 그 존재의 중심에는 언제나 氣가 있다. 氣가 빠져버리면 精도 神도 존재가 불가능하다. 神과 氣가 합쳐 독특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고, 精과 氣가 합쳐 존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氣의 작용 때문이다. 사람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氣이다. 선도(仙道)에서 진리(眞理)보다도 氣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은 그런 이유다. 氣가 없으면 진리(眞理)도 행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주천(小周天)은 에너지(氣)를 일으키고, 움직이게 하는 수련입니다. 그것을 통해 의식(意識)과 에너지를 동시에 수련합니다. 견성(見性)을 이룰 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에너지가 발동(發動)됩니다. (일시적으로 강한 에너지를 느끼는 사람도 많습니다) 마음으로는 자성(自性)을 알아챌 수 없습니다. 알기 위해서는 꼭 상대가 필요합니다. 의식과 에너지의 메커니즘을 통해 의식과 에너지의 존재가 동시에 드러납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말속에는 에너지의 작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에너지가 없으면 마음(의식) 역시 없습니다. 의식에 에너지(氣)가 활성화(活性化)되면, 작용력(作用力)을 가집니다. 에너지가 비활성(非活性) 상태에 있으면, 조화(造化)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의식(意識)이 일어나면 에너지도 활성화됩니다...
시간과 공간의 핵은 에너지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 삼라만상 모두가 에너지이다. 깨달음을 얻으면 에너지를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에너지가 한통속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은 이는 근심 걱정이 없다. 그에게는 과거, 미래가 없으며, 나와 너를 포함한 세상 모두가 한통속(oneness)이기 때문이다. 수련을 시작하면 처음엔 미미하게 에너지를 느낀다. 의식(意識)이 확장되면서 에너지(氣)를 조정하게 되고, 마침내는 삼라만상이 에너지 덩어리라는 것을 알게 되어 그것에 들어앉게 된다. 그 과정이 '백일축기(百日蓄氣)', '시월양태(十月養胎)', '삼년유포(三年乳抱)', 그리고 '구년면벽(九年面壁)'이다. '백일'이란 2400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氣에 대한 실감(實感)과 확신에 필..
힌두(Hinduism)는 태초에 존재(存在)와 비존재(非存在) 사이에서 제일 먼저 에너지가 생겨났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신(神)들이 출현했다고 말한다. 선도(仙道)는 에너지를 먼저라 하지 않는다. 허(虛)에서 신(神)이 나타나 에너지(氣)가 생겨나며, 물질(精)은 에너지(氣)가 모여서 생긴다고 가르친다. 神(意識)과 에너지는 동시에 출현한다. 그것은 수련해보면 누구나 체험한다. 에너지(氣) 없이 의식(神)은 결코 혼자서 존재할 수 없으며, 의식이 없는 에너지 역시 작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품(性品)은 神의 성질과 氣의 성질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둘은 나누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氣를 수련하고 그것을 기초로 깨달음으로 진행하는 것과 그 자리(自性)을 먼저 알아채고 나서 氣 수련을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