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일상 속 바라봄 (611)
谷神不死
음악회에 가면 전화기를 무음(無音)으로 해달라고 합니다. 음악 감상에 지장을 주기 때문입니다. 명화(名畵)는 텅 빈 화판(畵板)에 탄생합니다. 생각이 많으면 뒤숭숭해집니다. 위대한 발명(發明)은 생각들이 쉬고 있을 때 출현(出現)합니다. 이 몸이 "나"라는 생각, 이 마음이 "나"라는 생각, 이름, 지위, 국적, 신분 모두를 내려놓아 보세요. 거기에 오롯이 드러나는 것이 있습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언제까지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주체(主體)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하늘, 땅,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 나아가 하느님도 없습니다. 그것과 친하세요. 그것이 만사(萬事)를 일으키고, 허무는 주인공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당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입니다.
마당에 굴러다니는 주먹만 한 돌이 다이아몬드라는 것을 모른다면... 전쟁이 이미 끝났는데 병사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면... 당신이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란 것을 입으로만 외우고 있다면... 당신이 진정 부처라는 것을 알고 있지 못하다면... 세상에 그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입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속성(屬性)을 지닌 그의 자녀(子女)이며, 그 하느님의 속성을 다른 말로 부처(Buddha)라고 한다는 것을 혹시 아시는지요?
정상(頂上)에 올라보면 여러 갈래 길이 보입니다. 어느 길을 택하든, 중도에 포기만 하지 않으면 결국은 누구나 정상에 이르게 됩니다. 모든 길은 정상에 오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오르고 있는 이 길만이 유일하게 정상에 오르는 길이라고 고집하지 마십시오. 깨달음에 대한 선입관(先入觀)을 버려야 합니다. 정상에 올라 밑을 내려다보면, 보는 방향에 따라서 보이는 풍경이 모두 다릅니다. 그것만이 모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깨달음의 체험은 큰 선물이지만 체험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체험은 체험일 뿐, 그것도 지나가고 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체험보다는 체험하는 나(當體)에 관심을 기울이세요. 무상(無常)하지 않은 것은 오직 그것뿐입니다.
時間이 없으면 空間도 없지만, 시간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공간입니다. 공간이 없으면 그것에 얹혀있는 모든 것은 신기루가 됩니다. 가만히 과거로 돌아가 보십시오. 거기에 당신의 첫사랑을 불러와 보십시오. 거기에 당신이 만났던 사람과 사건들이 있습니다. 10년 후로 가 보십시오. 모양은 달라도 거기에도 사람과 사건이 있습니다. 시간은 생각들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이 무너지면 거기에 남는 것은 없습니다. 오직 텅 비고 고요함만이 있습니다. 거기에 늘 함께 있었으면서도 가늠하기는 어려운 영지(靈智)가 묵묵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진면목(眞面目)입니다. 시간도, 공간도, 단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비실재(非實在)일 뿐입니다.
돼지들이 소풍을 갔답니다. 들을 지나 한참을 가다가 문득 한 마리가 없어진 듯하여 세어보니 웬일입니까. 9마리뿐이었습니다. 떠날 땐 분명 10마리였는데 말입니다. 잘못 세었는가 하여 다른 돼지에게 세어 보게 해도 역시 9마리뿐이었습니다. 돼지들은 꿀꿀대며 걱정에 잠겼답니다. 돼지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암만 '나는 누구인가?'를 탐구해도 자기가 누군지 모르니까 말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그놈이 바로 '나'인데 말입니다. 달리 생각하면 돼지들이 우리보다 나은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돼지들은 숫자라도 세어보니 말입니다. 우리들은 너무도 바빠서 숫자도 세지 않고 분주히 달려가기만 하지요.
게임에 빠진 사람에게 밥 먹으란 소리는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다. 그에게는 지금 몰두하고 있는 이 게임이 전부다. 나머지는 모두 이 게임 이후로 미루어져야 한다. 그의 에너지 라인은 모두 이 게임에 고정되어 있어 이 게임이 끝나지 않고는 다른 곳에 에너지를 쓸 수조차 없다. 게임이라는 것이 묘한 마력(魔力)을 지니고 있어서 마약처럼 한번 빠져들면 좀처럼 헤어나기가 쉽지는 않다. 그도 알고 있다. 게임이라는 것이 허상(虛像)이라는 것을... 이기든 지든 결국은 에너지만 고갈시키고 끝나리라는 것을 말이다. 프로게이머는 에너지를 적절히 안배(按配)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프로게이머다. 에너지 분배가 되지 못하면 게임은 물론이거니와, 그 자신까지도 몰락하고 말 것이라는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성공한 게이머는..
"생겨나지 않아야 사라지지도 않는다.""생자(生者)는 필멸(必滅)이다." 참으로 멋스러운 말이기는 합니다만, 그런 것을 가리켜 헛소리(戲論)라 합니다. 생겨난 것 같아도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요? 이미 생겨났는데 그런 말들이 무슨 소용인가요? 태어났으니 한번 아름답게 멋지게 살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길이 있다면 한번 찾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밑져봐야 본전이지 않습니까?
개는 개라 불러야 맞고, 고양이는 고양이라 불러야 맞다. 호칭의 오도(誤導)가 너무 심한 세상이다. 얼마 전엔 남편을 아빠라고 하더니 요즘은 남편을 오빠라고 부른다. 장삿속으로 아줌마를 사모님이라 부르는 것은 그렇다 친다 해도, 쭈글쭈글한 영감쟁이를 신랑이라 부르는 심사는 무얼까? 어쩌다 한 번쯤 부른다면 모를까... 절에 가면 보살(菩薩)과 거사(居士)가 우글우글한다. 말미에 '님'자까지 붙인다. 그리고는 합장(合掌)을 하며 성불(成佛)하시란다. 보살(거사)은 이미 성불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말이다. 진짜 사모님, 진짜 신랑, 진짜 보살(거사)에게는 무어라 불러드려야 할까? 묘안이 없다. 내 일은 아니지만, 미신(迷信)을 종교(宗敎)라고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신앙(信仰, 믿어 우러른다)이라 하는..
인생은 개평 뜯어 노는 놀음판과 같습니다. 놀음을 시작하여 주머니 가득 돈을 따게 되었으나, 새벽녘에 다시 빈털터리가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본 결과 자기는 한 푼도 잃지 않았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답니다. 원래부터 개평으로 시작한 노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노름판은 누구도 돈을 잃지 않습니다. 누구나 집에서 가져온 돈은 한 푼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치를 알게 된 후, 그는 베팅할 때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그 후부턴 나가는 돈보다 들어오는 돈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노름판에는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았습니다. 노름판에서는 언제나 먹을거리와 잠자리 그리고 구경거리가 무료로 제공되고 ..
무엇으로 당신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가? 대부분의 사람이 보고, 듣고, 느끼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그러면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몸이 당신인가? 몸은 당신이 관리하는 소유물이지 않은가? 그러면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대상이 당신인가? 저 산이, 저 시냇물 소리가,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당신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내가 아니다. 그러면... 생각(마음)이 당신인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모르겠으면 몸과 마음(생각) 그리고 대상들을 하나씩 내려놓아 보자. 그리고는 내려놓고 있는 그놈도 내려놓아 보자. 이제 무엇이 남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