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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이 몸과 마음은 내가 아니다. 지구에 있는 동안 빌려 쓰는 것이다. 빌려 쓰는 것이니 함부로 하지 말고, 잘 쓰다가 되돌려놔야 한다. '나는 없다(無我)'라는 주장이 있다. 일견(一見) 있어 보이는 주장이다. 그 말은 몸과 마음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평안을 준다. 그렇다면 나는 없다고 주장하는 그놈은 누구일까? 몸과 마음을 이리 끌고, 저리 끌고 하는 그놈은 누구인가? 늘 몸과 마음을 지켜보던 그놈은 누구인가? 과연 몸과 마음을 빼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가? 몸과 마음을 움직여 왔던 원동력의 출처는 어디인가? 그 원동력은 무엇에 근거해 존재하는가? 정말 "나"라고 할만한 것은 없는가? 선도(仙道)는 그렇게 알지 않는다. 그 원동력을 기(氣)라고 하고, 氣는 의식(神)에 근거해 작용한다고 안다. 선..

사랑받고 싶다면 먼저 사랑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누구나 상대에 맞춰 자신을 바꾸려 한다. 그리고 남들 앞에서 그 사람을 자랑하고 싶어 한다. 선도(仙道)를 사랑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기를 바꿀 의사가 없다면 그의 공부는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남들에게 仙道를 자랑하지 못한다면 그의 공부는 힘이 잃어 지지부진하다 끝나고 말 것이다. 선도를 한다고 하면서 과거를 청산치 못하고 질질 끌리며 사는 사람은 진정한 선도인이 아니다. 그런 사람에게 일체의 삶은 고(苦)일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에겐 에너지가 생기지 않는다. 그런 사람에게 나는 에너지를 나누어 주고 싶지 않다.

일정 기간 거래가 없이 잠들어 있는 계좌를 휴면계좌라 한다. 보통 사람의 단전(丹田)은 마치 휴면계좌와 같다. 그것은 일반인들에겐 거의 필요하지 않다. 몰라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다. 丹田은 에너지(氣)를 모아주는 곳이다. 창고가 없으면 정성스레 만든 제품을 저장할 수 없듯이, 기(氣)를 얻었어도 단전이 부실하면 제대로 선도를 닦을 수 없다. 누구나 丹田을 깨어나게 하고 싶지만, 그것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단전만 깨워내면 그다음은 순풍에 돛을 단 듯이 선도를 닦을 수 있다. 단전을 살려내는 것이 관건(關件)이다. 수많은 방법이 있지만, 이치(理致)를 무시하면 헛수고만 한다. 仙道를 닦는 기본적 룰을 소홀히 한다면 무소용이다. 일반적으로 숨을 들이쉴 때 기운을 단전에 모아오고, 내쉴 때 유지하라는..

일의 시작은 생각이지만, 감정이 필요하다. 감정이 도와주지 않으면, 일은 성사되지 못한다. 감정은 氣를 움직이고, 氣는 감정을 살아나게 한다. 감정은 氣의 원천이고, 에너지는 감정의 원천이 된다. 에너지가 부족하면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 그것은 일상사나 수행이나 마찬가지다. 수행자에게 에너지는 무엇보다 필요하다. 에너지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하는데, 먹는 것보다 몸 움직이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그것이 어렵고 귀찮을지라도 말이다. 움직임과 호흡이 콤비네이션을 이룰 때, 에너지가 일어난다. 그것으로 단전(丹田)이 활성화된다.

단전(丹田)이 열리면, 에너지(氣)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이 명확해진다. 마치 작은 냇물이 호수로 밀려오듯이 에너지가 단전으로 모여들고, 흩어질 때는 장기(臟器)를 포함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 활기를 준다. 당연히 단시간에 피로회복이 되고 몰입(沒入)이 쉬워진다. 문외한에게 있어서 단전의 활성화는 기적 같은 일이다. 그것은 마치 새로운 탄생, 환생(還生)하는 것과 거의 같다. 단전이 열리면서 본격적인 축기(蓄氣)가 시작되는데, 그것을 백일축기(百日蓄氣)라고 한다. 단전 열림은 복식호흡(腹式呼吸)이나 상상(想像)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외단공(外丹功)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근육과 관절 등의 전신적인 유연성이 단전을 돕기 때문이다. 단전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단전호흡 운운하는..

단전(丹田)은 가늘고 긴 호흡의 도움으로 깨어난다. 그 말은 호흡에 힘(압력)이 생겨야 한다는 말이며, 그리하기 위해선 몸의 움직임, 즉 외단공(外丹功)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생각(視覺化)이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호흡과 몸의 움직임이 서로 돕지 않고는 어렵다. 단순한 아랫배에 기운이 가는 것을 상상(想像)하는 것만으론 단전이 깨어나기 어렵다. 그것은 허탈만 부를 뿐이다. 그것은 마치 상상만으로는 배고픔을 달래는 것과 같다. 운동(자세)만을 열심히 한다고 단전이 깨어나는 것도 물론 아니다. 도움은 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단전이 깨어나기 위해선 적절하게 힘이 실린 깊은 호흡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힘은 너무 강해서도 안 되고, 약해서도 안 된다. 외단공, 즉 적절한 빠르기의 유연한 움직임이..

단전(丹田)이 열린 사람은 외롭거나 우울할 사이가 없다. 단전을 싸고도는 기운이 행복의 호르몬을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단전이 열린 사람은 부러운 것이 없다. 단전이 열리면 세상을 보는 가치 기준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는 무상(無常)함 속에서 영원을 보며 산다. 모든 것은 흘러 지나가지만, 세세토록 변치 않는 '그것'을 얻어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단전이 열리지 않은 사람은 단전에 보다 더 많은 시간을 다른 일들에 소비하고 있다. 그것은 지속적인 불만을 주고, 그것이 괴로움이 된다. 마음을 하루 1시간 만이라도 단전에 고정할 수 있다면, 당신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자유와 평화 속에 늘 있게 된다.

축기(蓄氣)가 되었다는 것은 에너지체의 씨가 단전(丹田)에 심어졌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완전한 에너지체(나의 分身)로 길러내는 일이 남는다. 그것은 마치 임신 후 산모에게 적절한 운동과 영양공급이 필요한 것과 같다. 시월(十月)이라 하는 것은 상당한 기간이 필요한 것을 암시한다. 그것은 아기가 수태(受胎) 후 엄마 뱃속에서 열 달 자라나는 것과 같다. 양태(養胎) 기간에는 외단공과 단전주시의 비율을 3:7로 하는 것이 좋다. 더 많은 시간을 단전주시(丹田注視)하라는 뜻인데, 정좌(正坐)가 좋으나, 눕든, 걷든, 모든 경우를 활용해야 한다. 하면 할수록 주시력이 확실해지고, 에너지체도 더 분명해지며, 아울러 움직임이나 의념(염력)에 기운이 실리게 된다. 자연스럽게 밝고 여유 있는 정신세계의 주인공이 되는..

선도(仙道)에 입문한 사람이 거쳐야 할 기초과정이 있는데, 그것을 백일축기(百日蓄氣)라 한다. 百日이란 蓄氣에 필요한 충분한 기간을 말하며, 사람이나 노력 여하에 따라 짧아지거나 더 길어진다. 蓄氣를 위해서는 외단공(外丹功)과 내단술(內丹術)이 필요한데, 아이가 생겨나기 위해 아빠와 엄마의 사랑이 필요한 것과 같다. 기법(技法)으로는 하복 중앙까지 이르는 부드러운 호흡과 하복 중앙에 대한 주시(注視)이다. 그것으로 잠자고 있던 단전(丹田)이 깨어난다. 마치 수정(受精)으로 임신이 되는 것과 같으며, 丹田이 활성화되지 않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百日蓄氣 과정에서 소주천(小周天)이 이루어지며, 자연스럽게 도태(道胎)도 무르익어 간다. 蓄氣 이후에도 끝없는 관심(注視)이 필요한데, 기운이 부족해서는 ..

외단공이 효과적이려면 동료(道伴)들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 단전(丹田)의 활성화는 혼자 애를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몇몇이 함께 닦는 분위기 속에 들어가야 수월하다. 특히 소주천(小周天)은 필히 스승과의 에너지 동조(同調)가 필요하다. 스승이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다. 그를 신뢰해야 한다. 불씨가 단전에 머물 때까지 늘 그와 함께여야 한다. 정신적으로 늘 한통속이어야 한다. 기운이 완전히 자리를 잡을 때까지 스승과 멀어져서는 안 된다. 스승과의 인연은 헛도수를 진주천(眞周天)으로 바꾸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