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성명쌍수, 그 여유 본문
'성명쌍수(性命双修)'란, 성(性)과 명(命)을 동시에 닦아간다는 선도(仙道) 용어이다.
性이란 깨달음의 자리, 즉 본성(本性)을 말하며, 命은 목숨과 사명(使命), 즉 보고, 듣고, 느끼는 현실 세계를 말한다.
불도(佛道)는 性을 중심으로 닦고, 그 외의 것들은 모두 허망한 것으로 간주하지만, 仙道는 다르다.
희노애락(喜怒哀樂), 먹고, 자고, 쉬고, 놀고, 즐기는 생생한 이 삶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性 공부를 중시하지 않는 이유는 애써 찾아 나서지 않아도 命 공부를 진행하는 가운데 깨어있기만 하면 저절로 담박 밝아 보여주는 것이 자성(自性)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命 공부(백일축기, 시월양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닦아 가야 하는 점수법(漸修法)이기 때문이다.
命 공부의 특징은 불교의 性 공부와는 다르게 지금 내 공부가 어디쯤 왔는지를 확인하면서 공부를 진행한다는 점이다.
仙道 공부는 세 단계로 진행하며, 그것을 삼조(三調)라 한다.
첫째는 조신(調身), 즉 몸 공부(外丹功)이다. 몸이 부실하면 우선 삶 자체가 힘들어지고, 또한 비교적 장기간 진행되는 仙道 수행을 이어 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조식(調息), 즉 숨 공부이다. 숨 공부는 두 단계인데, 일차 공부는 몸 공부(外丹功)의 움직임에 맞춰 그것과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며, 이어서 호흡 지켜보기로 시작해 복식(腹式)호흡, 단전(丹田) 열기, 소주천(小周天), 태식(胎息)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정성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조심(調心), 즉 마음 고르기이다. 이것은 견성(見性)과는 별개의 지루한 공부다. 仙道는 에고를 거스르지 않고 설득하고 타협하는 공부를 중시한다. 일반적 생각과는 다르게 에고는 죽여야 할 대상이 아니며 죽지도 않는다. 에고란 바로 "나"이며, 깨달음 이후에도 여전히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필요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이다.
仙道는 '돈오점수(頓悟漸修)'를 표방한다. 깨달음은 단박, 생명 닦음은 서둘지 않고 단계적으로 숨 길게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性命双修, 즉 깨달음과 세상사를 동시에 닦아간다는 것, 그것을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 하며, 세상 속에서 신선(神仙)으로 살아가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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