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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남들과의 사이는 좋으면서도, 자기와의 관계는 안 좋은 사람이 있다. 남들에겐 웃어주면서 가까운 사람에겐 웃어주지 않는 사람이 있다. 누구보다 사이좋아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그것은 자기 자신이다. 자기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보다 불행한 일은 없다. 그럴 땐 조용히 앉아 자기 관조를 시작해야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아내야 한다. 혼자서 해결이 어렵다면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단지 이론에 능한 사람보다는, 실제로 자기 문제로 고민이 많았던 산전수전 겪은 사람의 조언을 받아야 한다. 해결과 예방까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좋다.

나는 나 스스로 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고 어느 부분이 취약한지를... 결론부터 말해 나에게 맞는 일은 내가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온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에 의해 오는데 그런 사람을 귀인(貴人)이라고 한다. 정말로 이해가 안 되는 경우도 너무 많지만 말이다. 그것을 '인연(因緣)'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은 기존의 자기 관념에 빠져 찾아오는 행운을 맞지 못한다. 그럴 때는 꼭 “행운의 신(神)은 뒷머리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말은 어물어물하다 놓치면 다시는 만나기 어렵다는 말이다. 우선 내가 무리 없이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내야 한다. 막일, 힘든 일을 한다고 누구에게나 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로는 입에 풀칠만 할 뿐, 몸만 상하게 된..

진정으로 수행(修行)을 성공시키려면 'My way'여야 한다. 남의 눈이 두려운 사람,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는 사람은 필패(必敗)한다. 그것은 깨달음을 이나 소주천(小周天)을 위해서나 마찬가지다.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들은 나를 걱정하는 척하지만, 그들 역시 관심은 그들 자신에게만 있다. 자기를 Open할 수 있는 사람만 깨닫는다. "와서 보라. 나는 무엇도 숨기지 않는다." 깨달음의 대표 격인 싯다르타의 말이다. 우리는 제도에 묶여 살고 있다. 교육은 힘 있는 자들이 사람들을 자기 부리기 위해 하는 것이다. 과감히 그것들로부터 자유(自由)를 선언하지 않는 한, 무엇도 될 수 없다. 신선(神仙)이란 말처럼 자유로움을 잘 표현한 말도 없다. 내가 옳다고 한다면 그 길을 가라. 좌고..

우리가 어떤 일을 도모할 때, 엄두가 안 나는 것은 그 일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일을 알면 일의 순서를 알 것이며, 자연스럽게 일은 진행될 것이다.일의 성과에 대해서는 너무 크게 마음 두지 말라. 어깨에 힘이 들어가 일을 그르칠 수 있다. 하늘이 이 일을 돕고 있는지, 아닌지는 일의 진행이 순조로운가, 아닌가를 보면 된다.되는 일은 시작부터 쉽게 굴러간다. 일이 초장부터 꼬일 때는 잠시 멈추고 숨 고르기를 하며 재검토해야 한다.프로젝트가 미흡하거나 초기 자금 조달의 난항 그리고 함께 일할 팀의 발이 재대로 맞추어지지 않을 때는 억지로 추진하지는 말라.시작전 며칠 조용히 몰입(沒入)하여 일이 성공을 거두고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그린다.가슴이 벅차오르고 행복감이 밀려온다면 그 일은 성공할 것이다.문제..

스스로 자기를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 자기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존중해 줄 사람은 귀하다. 그렇다고 남들 앞에서 자기를 높이지는 말라.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니 말이다. 하느님도 신자(信者)들이 부를 때만 하느님이지, 자기를 칭할 땐 나 ’야훼(YHWH)라고 이름을 밝혔고, 과거 임금들은 자신을 지칭할 때, 짐(朕) 혹은 과인(寡人)이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덕(德)이 적은 사람이란 뜻이다. 목사나 신부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목사님, 신부님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유독 자기에게 ‘님’자를 붙이는 집단이 있는데, 요즘의 어린 승려(僧侶)들이다. 과거의 승려들은 자기를 소승, 혹은 빈도(貧道)라고 불렀는데 말이다. 석가모니는 자기를 비구(比丘)라고 불렀는데, 그 말은 '빌어먹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진정으로 성공을 원한다면, 내면에 잘못 각인된 Program을 바꾸어야 한다. 지지부진함, 실망감, 반복적인 실패는 내면의 부정적인 Program이 원인이다. Program을 바꾸면 새로운 '나'가 탄생한다. 그 방법은 속삭임, 시각화(視覺化) 등등이 있지만, 그것에 힘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무엇보다 설득력 있는 글쓰기이다. 글을 남들 읽으라고 쓴다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전적으로 자기 설득용이다. 글을 쓰노라면 저절로 성공의 Program이 짜이게 된다. 자기 글로 자기를 설득하라. 우리의 마음은 말보다 문자화된 것을 더 신뢰한다. 백 번 되뇌는 것보다 한 번 정리된 글이 더 힘이 있다. 명확한 글은 잘못된 Program을 성공 Program으로 바꾸어 준다. 글쓰기를 습관화하라. 그것보다 더 내 마음..

당신은 주인으로 사는가? 당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자는 누구인가? 주도적인 삶을 방해하는 것 중 제일은 두려움이다. 마음속을 들여다보라. 불안의 출처가 어디인가 알아보라. 두려움은 과거에 있었던 막연한 실패 기억으로부터 온다. 과거를 현재화하지 말라. 그것이 이미 지나간 것이란 것을 알아채면 불안은 꼬리를 감춘다. 그리고 쓸데없이 부정적인 미래를 끌어오지 말라. 그 잘못된 습관이 원치 않는 미래를 끌어온다. 현재를 이해하라. 현재만이 존재한다. 과거와 미래는 허상(虛像)이다. 자기를 현재에 머물게 하라. 현재에서 생각하고, 현재에서 행동하라. 현재에 사는 법을 배우라. 그것이 주인으로 사는 최선의 길이다.

하루는 악마가 사람들이 마시는 우물에 독을 탔다. 악마가 독을 탄 것을 아는 사람이 있었고, 그는 당연히 그 우물물을 마시지 않았다. 그 독은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것이었고, 그 후 사람들은 미쳐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 취급을 하게 되었고, 결국은 그가 그 나라에서 살지 못하게 만들자, 그 역시 그 우물물을 마셨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Thomas Szasz는 “정신질환이라는 것은 감염병처럼 "병이다, 아니다"를 나눌 수 있다기보다는, 어느 한 사회가 사회의 규범으로 정해 놓은 것에 맞지 않으면 정신질환이다. 고로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 사느냐에 따라 정신질환의 정의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과학적인 검사(?)에 의해 확실히 밝혀지기 전에는 말이..

요즘 ADHD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ADHD란 'attention deficit hyperactive disorder’의 약자로, 집중력 결핍과 과다행동 장애를 나타내서 요즘은 질환의 한가지로 취급받는다. 주로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ADHD를 말하고 있지만, 사실상 성인이나 노인들 역시 그것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것은 인식(認識)의 유연성이 떨어진 상태를 말하며, 의식의 공백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단언컨대 세상에 집중력이 없는 사람은 없다. 보통 집중력이 없다는 말은 집중의 편식(?)을 말하는데, 한 가지에 마음을 뺏기면 다른 것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자기를 즐겁게 하는 것에 관심을 뺏기기 마련이다.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다. 다만 인식에 유연성이..

걱정도 팔자(八字)라는 말이 있다. 걱정은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그 속에 갇히는 것이다. 역사 이래 걱정을 해서 문제를 해결한 적은 없다. 스스로 감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늘 불안할 수밖에 없고, 그런 삶에서 행복을 찾을 수는 없다. 왜 불안해지는가? 스스로 자기를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불안 역시 그 뿌리는 무지(無知)이며 원치 않는 미래를 현재화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다소 뻔뻔해져도 좋다. 자기 마음의 조건들을 당당하게 재편하라. 자기를 바꾸지 못하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 귀한 에너지를 낭비하기만 해서 쓰겠는가? 현재를 살아라. 현재를 사는 사람에게 거리낌이 없다. 현재만이 실재(實在)하기 때문이다. 깨어있으라. 그것만이 불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