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虛其心 (210)
谷神不死
100명으로부터 찬사를 받기보다는, 단 한 사람의 인정(認定)이 중요하다. 예술인의 경우, 타인의 인정은 그리 중요치 않다.스스로가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쓰레기일 뿐이다.도예가(陶藝家)가 잘 구워진 도자기를 깨버리는 것은 그런 이유다. 수행자에게 타인의 인정은 기쁨을 주지 못한다. 자기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자기다.스스로의 인정이 없는 한, 멈추지 않는다. 수행자는 외로움을 즐긴다.번잡스러움은 귀찮을 뿐이다. 똑똑한 아파트 한 채라는 말이 있다. 수행자는 단 한 명의 제자를 기다리느라 평생을 보낸다.제자 한 명 얻지 못하고 지구를 떠난 스승이 수없이 많다.
유(有)가 없이 무(無)는 존재할 수 없다. 무는 유를 근거로 존재하며, 절대무(絶對無)에서는 무를 알아차릴 근거조차 없기 때문이다.무를 주장하기 위해서 유를 삭제할지라도, 그곳엔 유의 흔적이 남아 유를 증명한다.'무아(無我)'란 싯다르타가 만든 다분히 조작적인 말이다.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나'라고 하는 것을 없애야 했기 때문이다.내가 있는 한, 고(苦)는 영원히 존재한다.고와 낙이 하나임을 알지 못하는 한 말이다.아무리 無我를 주장한다고 할지라도, 언제나 '나(自我)'는 존재한다.無我 역시 내가 있어야 말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絶對無는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 살아있는 한, 그 뒤엔 언제나 있는 듯 없는 듯, '내'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간단하게 이야기한다. 그것이 많은 지식인이 예수를 따르는 이유다. 예수처럼 '해탈(자유)'을 쉽게 이야기한 사람은 없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32) 그리고 진리에 대해서도 내가 바로 진리라고 했다. 내 안에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 14:6)
소주천은 왜 필요한가? 마음과 기운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며 살아야 한다. 감정이 나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 생각을 자유자재로 일으켜, 그것으로 생각을 통제 조절하며 살아야 한다. 인지력(認知力)을 길러야 한다. 인지가 없는 나는 '나'일 수 없기 때문이다. 소주천(小周天)이란, 내가 마음과 생각, 그리고 인지처(認知處)의 주인이 되는 훈련이다. 심기(心氣)를 내 몸 구석구석까지 옮길 수 있어야 한다. 크게, 작게도 만들 수 있고, 안팎 어디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해야 한다. 내가 주인이 되어 사는 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이해하고,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실현하며 사는 데 소주천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다.
성경을 보면 야훼와 사탄이 나오고, 야훼에게는 선한 역이, 사탄에게는 악역이 맡겨진다. 나 역시 어린 시절엔 의심 없이 유대의 신 야훼를 따라야 한다고 믿었었다. 8살부터 나는 매일 성경을 읽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 둘의 배역이 잘못되지 않았나 의심이 그치지 않았다. 다음은 성경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이다. 야훼는 스스로를 공의로운 창조의 신(엘로힘)이라고 자화자찬하지만, 하는 짓을 보면 악마×2에 해당한다. 스스로 질투의 화신이라 칭하면서, 걸리적거리는 것들은 무참히 살해한다. 그 시작이 일명 노아 홍수이고, 소돔, 고모라와 이집트에서의 학살, 나아가 유대인을 시켜 평화롭게 살고 있는 가나안 마을에 쳐들어가 땅을 빼앗았는데, 그 일은 지금까지도 멈추지 않고 있다...
깨달은 이에게는 끄달림(苦)이 없다. 그는 진실(眞實)이 아닌 것들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오직 진리(眞理)에만 관심이 있다. 진아(眞我)는 오온(五蘊)에 속하지 않는다. 그는 그와 세상을 나누지 않으며, 그러므로 그에게는 갈등도 없다. 우리의 고통은 분별심 때문이며, 에고가 만드는 비교하는 마음, 호(好)불호(不好)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에고는 허깨비다. 그것은 연기(緣起)로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도 무너지게 되어 있다. 진아(眞我)는 자체로 완벽하다. 그것은 무엇과도 연기하지 않으며, 무엇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다. 단지 존재하며, 단지 지켜볼 뿐이다. 깨달은 이는 진아와 에고, 절대 의식과 상대 의식의 진실을 알고 있다. 그러..
보기엔 잡놈 같은데 몸을 맡길만한 구루(guru; 영적 스승)가 있는가 하면, 보기엔 그럴듯해도 사이비인 구루가 있다. 구루의 외모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구루가 입은 옷, 사는 집으로 구루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머리를 면도로 밀었다고, 상투를 틀고 도포를 입었다고 좋은 구루는 아니다. 제자들에겐 힘들고 어려운 수행을 강요하면서, 자기는 같이 하지 않는 구루는 사이비일 공산이 크다. 나이가 있더라도 수행할 때는 언제나 앞에서 솔선수범하는 구루에게 배워야 성공한다. 너무 구차하게 살거나 돈을 너무 밝히는 구루에게 배울 것은 거의 없다. 여자를 멀리하라 가르치거나 너무 밝히는 사람도 그리 바람직한 구루가 아니다. 구루라면 부자나 권력자들에게 선(線)을 대려 하거나 그들에게 아부성 발언을 하지 않는다. 그리..
우리에게는 보고, 듣고, 맡고, 맛을 알고, 접촉을 알아채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각은 살아있음의 증거입니다. 눈이 보고, 귀가 듣고, 코가 냄새 맡는 것은 아니지만, 알아차림과 앙상블을 이루면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이 벌어집니다. '봄'은 눈이 대상을 만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눈과 대상이 만난다고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조화를 일으키는 힘(氣)'이 뒤에 있어야 합니다. 그중 하나만 빠져도 '봄'이라는 일은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마치 자동차에 소프트웨어가 장착되어 있어도, 에너지원이 없으면 자동차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과학계는 물질(눈과 대상)을 연구해 존재를 증명하려 하고, 정신계는 마음, 즉 조화를 일으키는 '당체(當體)'에 중점을 둡니다. 눈도 중요하고, 대상..
사람은 희망으로 산다. 재산과 가족을 모두 잃었을지라도 말이다. 묵묵히 지켜봐 주는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한마디 격려만 있다면 힘을 잃지 않는다. 최근 자살한 배우 이선균을 생각해 보았다. 그는 검찰에 불려 갔지만 그가 마약을 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왜 자살했을까? 금전적 손해는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이든 아니든, 언론에 의해 주위의 신뢰를 잃은 것이 원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부인 볼 낯이 없었을 것이다. 과거 노무현 씨도 마찬가지였다고 본다. 그는 담담히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그로 인해 여러 사람이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 너무 괴로웠겠지만, 가장 넘기 힘든 산은 식구들 특히 부인이었을 것이다. 자살 전날 부인과 크게 다투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 그것이 자살로 ..
지금 내가 사는 이 세상이 모두라고 생각하지 말라. 이 세상이 있으면, 저 세상도 있는 법이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할 수 있어야 깨달을 수 있다. 물질도 아니고, 비물질도 아닌 '그것(氣)'을 소홀히 하지 말라. 그것이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하는 다리(통로)다. "나는 없다(無我)"라고 말하지 말라. 그것이 없으면, 세상도 없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올려놓는 판(板)이며, 그놈이 바로 관자재(觀自在)한 그놈(菩薩)이다. '반야심경(般若心經)'은 無我를 말하지 않고, 단지 오온(五蘊)이 공(空)하다고만 말한다. 五蘊은 '나'라고 착각하지 말라.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제법(諸法)'이란 이 세상에 있는 유형무형의 것들을 가리킨다. 이 세상에 있는 것에서는 "나"를 찾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