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일상 속 바라봄 (608)
谷神不死
나의 믿음과는 다른 믿음을 지혜로 수용하는 사람은 늘 편안하게 산다. 하지만 나의 믿음과는 다른 믿음은 증오심을 일으킨다. 사람은 내가 주장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용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역사상 수많은 종교전쟁은 바로 내 믿음과는 다른 믿음 때문에 일어났다.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동하면 안 된다."다르다"와 "틀리다"는 동의어가 아니다. "다르다"라고 말해야 할 것을 "틀리다"라고 습관적으로 말하게 되면 은연중 나와 다른 것들은 모두 틀린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폭력이다. "다르다"와 "틀리다"를 가려 쓰는 힘, 그것이 "깨어있음"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心靈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善한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입니다. 功德을 아는 진정한 장부입니다. 공부하기 어려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좀 안다는 사람입니다. 학식이 높은 사람입니다. 권력자입니다. 그리고 信仰이 깊고 敎理를 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돈이 많고 학식과 권력이 있으면 무엇합니까?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데 말입니다. 결국은 두고 갈 것이 아닌가요? 깨달음 공부 앞에서는 자기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공부 끝나고 나서 다시 찾아 지니면 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道 공부 앞에는 어른이 없습니다. 모두 어린이가 되어야 합니다. 世俗의 상식으로 깨달음을 論해서는 안됩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未知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한 차원을 넘어선 出世間의 공부이..
사람들은 쓰지 않고 축적한 돈을 재산(財産)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돈은 내 돈이 아니다. 더 축적하려는 욕심에 사기를 당할 수도 있고, 저승에 갈 때는 싫지만 남의 재산이 된다. 돈이 많든 적든 관계없이,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쓴 돈이 그 사람의 재산이다. 어디에 소비했는지는 상관없다. 술을 마시든, 노름질하든, 사치를 부리거나 누군가를 도와주든, 쓰기만 하면 그 돈이 내 재산이다. 돈이 넉넉하면 맘껏 사치를 부려도 된다. 맛난 음식에 비싼 옷, 고급주택에 최고급 승용차, 여행 시 일등석에 고급호텔도 그리할 수 있는 여력이 된다면 그리해야 한다. 저세상 갈 때 후회 없도록 넉넉하게 자기와 주변 사람을 대접해야 한다. 부자가 절약 소비를 하는 것은 罪惡이다. 부자가 삼등 호텔, 이코노미 좌석을 예약..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들은 스크린에 비쳐지는 영상에 마음을 뺏긴다. 그 위에서 사랑하고, 미워하고, 죽이고, 살리고, 별의 별 일들이 다 일어나지만 스크린엔 흠집 하나 생기지 않는다. 영화가 끝나도 누구 하나 스크린에 관심있는 사람은 없다. 바로 다음 영화가 상영되면 스크린은 곧 잊혀진다. 깨달음이란 울고 웃는 수 많은 일들 뒤에 여여(如如)한 스크린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것만이 진실(眞實)하다. 그것은 善하지도 惡하지도 않다. 움직이는 영상들은 속임수이다. 그것들이 모두 조작 된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 앞에 관객들은 울고 웃는다. 박수치고 분개한다. 스크린엔 잉크 한방울 튀지 않는데...
道通의 1차 목표는 끄달리며 사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근심 걱정 없이 살기 위해서이며, 속지 않기 위해서이고, 일 없는 한가함을 즐기기 위해서다. 見性을 하면 如如한 삶이 기다린다. 근심 걱정은 바보들이나 하는 괜한 짓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탐심이 없으니 속을 일도 없고, 꼭 해야 할 일만 하게 되니 시간은 남아돌게 된다. 사람들은 끄달리며 바쁘게 살아야 그것이 인생인 줄 착각한다. 근심 걱정하는 것을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 하고 미리 해두지 않으면 낭패를 만날지도 모를까 걱정한다. 또한 서둘러 하는 이 일이 지금 꼭 해야 하는 일인지 나중에 하거나 안 해도 되는 일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깨달음은 어렵지 않다. 나라고 생각하는 것 중에 내가 아닌 것만을 내려놓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끄달림,..
남자가 배려심이 적고 사랑표현에 인색한 것은 열등감 때문이다. 그런 사람일수록 여성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지배하려고만 한다.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치켜 올려줌으로써 주도권을 뺏긴다고 생각한다. 남자 역시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데 말이다. 진정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아낌없이 상대에게 쏟는다. 그리고 그것으로 상대가 만족해할 때 크나큰 희열을 얻는다.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로 "자기 정말 멋있어. 나 자기에게 정말 만족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이 좋다. 그것은 자기 자존감을 극대화할 뿐만 아니라 상대에게도 큰 만족을 준다. 남녀의 사랑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 가운데 최상(最上)의 것이다. 상대를 배려하고 자주 애정표현을 하는 것은 情人의 本分이..
'짐승 같은 놈'이란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가만히 점검하여 보면 사람이 짐승과 다른 구석이 무엇일까? 오히려 "짐승만도 못한 놈"이란 말을 들을 꺼리가 너무 많다. 짐승처럼 먹고, 짐승처럼 자고, 짐승처럼 sex하고...도대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자기 本來面目에는 관심조차 없으면서 그저 먹고, 자고, 욕심부리고, 남들 괴롭히면서 사는 것이 인생의 모두가 된다면 말이다. 자기 정체성의 확인,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한번은 도전해 봐야 하지 않을까?
어른은 어른다워야 한다. 어른이 아이 짓을 하면 어른이 아니다. 이치를 알아야 어른이다. 과거와 미래에 연연치 말아야 어른이다. 주변에 어려움이 있으면 그것과 자기가 無關치 않음을 알아야 어른이다. 모든 책임을 자기에게 돌릴 수 있어야 어른이다. 모함을 받아도 자기를 먼저 살필 수 있어야 어른이다. 자기가 누구라는 걸 알아야 어른이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이 몸과 이 마음이 내가 아니란 것을 알아야 어른이다. 道를 깨우치지 못해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어른이다. 좋은 것을 나누어 가질 수 있어야 어른이다. 주변에 온화함과 밝음을 피어나게 하는 사람이 어른이다.
내가 누군지 모른다고 하여 "나는 없다(無我)"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진실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다. "나"라는 고정된 실체(實體)는 존재하지 않지만 나는 분명하게 실재(實在)한다. 분명 이 몸과 이 마음이 "그것"은 아니지만, 알건 모르건 간에 "그것"은 분명히 存在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없이는 살아갈 수조차 없으며, 보고, 듣고, 느끼는 것 모두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눈과 귀로는 알 수 없지만,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 오랜 세월 챙기지 않고 살았던 것이라서 지금 당장은 아닐 수 있지만 말이다. 그것을 깨우친 것을 '聖靈을 입었다', '하느님과 동행하게 되었다', 혹은 '개안(開眼)했다', '한 소식했다' '견성(見性)했다'고 한다. "내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 없다고 말..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 아직까진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것을 실현했지만, 다음 세대엔 그것(見性)이 보편화(普遍化)될 것이다. 그것을 얻지 못하면 지옥같이 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손정의는 2045년이 되면 AI가 인간의 모든 능력을 뛰어넘을 것이라 예언했다. 그렇게 되면 영화에서처럼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 바둑만은 컴퓨터가 인간을 이길 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프로 기사들은 인공지능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 지금의 추세로 보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어 인간을 지배하게 될 날이 20년도 안 남았을지 모른다. 한때는 기억력만 좋으면 추앙받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계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수명(壽命)만 해도 기계와는 비교조차 되지 못한다. 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