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和光同塵 (566)
谷神不死
함부로 자타일여(自他一如)를 말하지 마십시오.그러다 큰코다칩니다.잠시 상대와 내가 하나로 느껴졌다고,'우리는 하나다'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저의를 의심받게 됩니다.'나는 우주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으세요.남들은 정신 나갔다고 생각합니다.먼저 '그 자리'를 찾도록 하십시오.그리고 그 자리에 안주하십시오.그 자리엔 같은 것도 다른 것도,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우주도 하느님도 없습니다.그 속에 살지 못하는 한, 그리 말하지 마십시오.그 속에 살고 있어도, 혼자만 알고 있으세요.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
일을 즐거움으로 아는 사람만 성공한다.일을 싫어하는 사람은 평생을 쪼들리며 살게 된다.수행을 즐거움이라 생각한다면...매일매일 몸과 마음이 바라는 대로 변한다고 믿고 사는 사람에게만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자기를 활짝 열어 제끼라.자기 속에 갇히지 말라.일이 즐거워지게 하라.일과 수행은 둘이 아니라 생각해라.그것보다 더 좋은 수행은 없다.세상을 밝게 보라.세상은 밝게 보는 사람에게만 행운이 온다.
무엇을 보고 사는가, 그것이 당신의 수준입니다. 좋은 것, 바라는 것을 보며 사세요..언제나 본 것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우리게는 두 벌의 눈이 있습니다.하나는 육안(肉眼)이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내부 시각, 심안(心眼), 혹은 영안(靈眼)입니다.육안보다 심안과 가까이하세요. 그것이 당신의 미래를 끌어옵니다. 심안은 사차원 세계와 통해 있기 때문입니다.답답함에서 벗어나, 한 차원 높은 세계에 살려면 사차원 시각으로 사세요.그것은 우리를 대자유, 해탈로 인도합니다.사차원 시각, 즉 심안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계발이 덜 되어 있을 뿐입니다.우리는 여기 앉아서 어제와 내일을 보고, 뉴욕과 로마로 갈 수 있습니다.心眼을 사용하는 사람은 걸림이 없이 삽니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면 지루한 세상을 살 것..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이 있다. "하루를 살아도 천 년을 사는 것처럼" 사는 사람이 있고,"백 년을 의미 없이 하루처럼" 사는 삶도 있다. 미래를 위해 현생을 희생하며 사는 삶이 있고,현생의 돈과 권력에 몰두해 미래에 대해서 무지한 삶도 있다. 당신에겐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가? 선도(仙道)의 입장은 현생과 미래의 비중을 반반 두며 사는 것이다.그리하기 위해서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닦는데, 그것을 성명쌍수(性命双修)라고 한다. 우리에겐 미래(死後)도 중요하지만, 신앙만으로 현재의 삶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 현실에 삶에도, 미래에도, 한발씩 걸치며 치우치지 않고 사는 삶,그것이 중도(中道)의 삶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참나’와 에고는 동거(同居)한다.하나가 다른 하나를 싫다고 내쫓을 수 없다. 새로 아파트를 장만했다고 해서 먼저 살던 집에 불을 질러서는 안 된다.그것처럼 무책임한 일도 없다. 그리하면 그날부터 남의 집에서 잠을 자야 할 판이니 말이다. 입주(入住)하기 전까지는 살던 집에 살면서짬짬이 새로 산 아파트의 인테리어 공사를 해야 한다. 나는 칠 평생 ‘참나’로만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그런 사람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無餘涅槃)기 때문이다. 착각하지 말라.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이슬람이든, 우리 모두는 ‘참나’로 나아가는 여정에 있다.그때까지는 ‘에고’를 화나게 하지 말고 잘 구슬리며 지내야 한다. ‘참나’와 에고는 동거(同居)하고 있으며, 자질구레한 일들은 모두 에고가 하고 있..
밝음을 원한다면 내면의 스위치를 켜라.스위치를 켜지 않고 기기(器機)가 작동되기를 바라지 말라.착각하지 말라.작동이 되지 않는 첫째 원인은 스위치가 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어두움은 밝음이 나타나는 순간 사라진다.선도(仙道)의 소주천(小周天) 역시 마찬가지다.먼저 단전(丹田) 스위치를 켜지 않으면 임독맥(任督脈)은 돌지 않는다.몸과 마음의 스위치를 켜 몸과 마음을 자기 휘하에 두라.자기를 이기지 못하는 자에게 성공은 없다.스위치는 누구라도 대신 켜주지 못한다.마음을 열어라, 몸은 저절로 열릴 것이다.잡념 없이 스승 앞에 앉아라.스승은 스위치 켜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물질은 무상(無常)하다. 그러므로 관심을 두지 않으면 없다. 기(氣)는 물질(입자+파동)이다. 그러므로 그것 역시 관심을 두지 않으면 잡을 수 없다.그것이 어디에 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과학적인 설명이다. 깊은 잠에서 깨어 무심(無心)하게 단전(丹田)을 보면 거기에 기는 없다.하지만 단전에 관심을 두는 순간, 바로 ‘나 여기 있소’하며 기감(氣感)이 일어난다. 기감은 수련의 정도에 따라 더 분명하고 더 강해진다. 그리고 기감이 분명해야 氣를 작용시킬 수 있다. 돈이 아무리 많은 부자도 그것이 은행에 있을 때는 머릿속에만 존재한다.하지만 소유자가 마음을 일으키는 순간, 돈은 힘을 발휘한다.무엇도 살 수 있고, 무슨 일도 시킬 수 있다. 그 일은 氣를 수련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일어난다.그들은..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해낸 자는 자기의 힘들고 어려웠던 수행 여정을 시간이 지나면서 잊는다. 반복 연습으로 스트라이크가 자연스러워진 투수는 적당히 던져도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간다.성공의 맥(脈)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모르는 자는 헤매게 마련이지만, 알게 되는 순간, 해결책은 간단하다. 해낸 자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쉽다고 말하고,다른 하나는 너무 어렵다고 말한다. 하나는 후배를 위한 배려의 말이고,다른 하나는 자기처럼 힘들었던 모든 과정을 거쳐야만 성공한다고 생각한다. 지혜로운 제자는 스승의 말을 귀담아듣는다. 귀담아들어야만 맥을 알 수가 있다. 자기주장은 뒤로 미루어야 한다.자기주장을 앞 세우는자는 맥을 알 수가 없다. 부정적인 생각들을 조절해야 한다. 자기 컨트롤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기우제를 지낼 때마다 비가 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인디언은 기우제를 지내기만 하면 비가 온답니다.그리되는 이유는 비가 올 때까지 지속적으로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랍니다.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수행을 물을 덥히는 것과 같습니다.지속적으로 일정 시간 불을 넣지 않고는 더운물을 만들지 못합니다.수행을 시작했다면 인디언 기우제처럼 하루도 쉬지 말아야 합니다.불을 빼는 순간부터 물은 식어가듯이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6개월 공부로 공부의 기초가 다져지듯이, 공부를 6개월 쉬면 다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갑니다.몸에 다시 여기저기 문제가 생기고, 공법은 가물가물해지고, 얻었던 기운 역시 어디론가 사라집니다."가다가 중지 곧 하면 아니 감만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깊이 새겨야 할 말입니다.
만약에 하느님이 실재(實在)한다면, 그의 뜻을 따라 살면 될 것이다.간단한 일이다.하지만 그가 있는지 또한 그의 뜻은 알 수 없다.사람마다 다르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만약, "'나'라고 하는 것이 없다(諸法無我)"면, 아무런 일도 할 필요가 없다.무언가를 믿을 필요도, 애써 수행할 필요도 역시 없다. 문제는 '나'라는 것이 있을 때 생긴다. 그때 우리는 복잡해진다. '나'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그것을 관리해야 한다.거기서 수행(修行)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은 몸과 마음, 그리고 그 둘을 작동시키는 에너지(氣)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을 정기신(精氣神)이라고 한다. 인생이라는 것이 일정 시간 살고 마는 것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다.각자 좋은 대로 살다가, 미련 없이 떠나면 그만이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