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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우리는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 아닐까? 세상엔 '내가 세상을 운전하며 살겠다'는 사람과, '운전되는 차를 타고 구경만 한다'고 생각하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자기가 운전한다는 사람은 늘 스트레스에 시달릴 것이고, 운전되는 차를 타고 있다는 사람은 경치를 즐기며 안락한 삶을 살 것이다. 물론 대다수가 전자이고, 소수의 후자가 있다. 세상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 아닐까? 잠시 후 우리는 자동으로 운전되는 자동차를 타게 될 것이다. 그 자동차에 탄 사람이 할 일은 거의 없다. 단지 출발 전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기만 하면 된다. 차 안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운전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팔정도(八正道)"라는 바람직..
궁합이라는 것은 남녀가 성적으로 잘 맞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꼭 같은 성향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불같은 성격의 사람이 물을 만나 힘을 잃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그것으로 기운의 안정을 얻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는 것이다. 큰 추진력으로 일을 밀고 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가출해 어촌(漁村) 주정쟁이로 주저앉거나, 서울역 지하도에 눕는 경우 대개는 남들은 이해 못 하는 자기만의 의욕 상실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삶은 결국 인간관계다. 고성능의 항공기일수록 엔진이 출력을 잃으면 바닥에 거꾸로 처박히고 만다. 이해 상관없는 사람으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일은 오히려 성공의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믿었던 가족이나 연인과의 불화는 몸 바쳤던 일을 내던져 버릴 만..
"소주천(小周天)을 이루고 나면, 남자의 양물(陽物)이 퇴화한다"는 속설(俗說)이 있다. '마음장상(馬陰藏相)'이란, 마치 말의 그것처럼 소중이가 숨겨진다는 것이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나이와도 상관없다. 오히려 필요할 때는 더 긁어지고 단단해지기도 하니 걱정할 일은 아니다. 그것은 양기(陽氣)를 머리로 보내주는 '환정보뇌(還精補腦)' 때문이며, 깨우침의 기초가 되기 위해 일어나는 일이니 오히려 반가워해야 한다. 위로 기운을 보낸다는 것은 아래가 더욱 튼실해야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머리는 오히려 시원해진다. 양(陽)은 위로 오르며, 음(陰)으로 전환하기 때문이다. 선도(仙道)는 불교와 달라 Sex를 죄악시하지 않는다. 고(苦)와 낙(樂)은 하나이며, 삶은 즐겨야 하는 것이라고 가..
해야 하는 일보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해야 하는 일은 에너지를 많이 소모(消耗)시키지만, 좋아하는 일은 에너지를 증가(增加)시킵니다. 먼저 자기를 알아야 하는데 그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몸을 알아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모르고 자기를 알 수 없으며, 자기를 모르고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관습이나 계율에 앞서서 내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마음이 원하는 것은 곧 몸이 원하는 것입니다. 수련을 할 때도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6개월이 지났는데 아직 수련의 재미를 모른다면, 그것과는 인연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을 삽니다. 해야 하는 일보다 기쁨을 주는 일을 찾아야합니다. 세상에 억지로 되는 일은 없습니다. 좋아하는 일이라야 능률도 오르는 법입니다.
하얀 도화지 위에 구름이 피어나고, 산과 들이 그려진다. 텅 빈 스크린에 꽃이 피어나고, 전쟁과 사랑의 이야기가 실감 나게 펼쳐진다. 배우들은 말한다. 이 장면 하나를 만드느라고 얼마나 많은 스텝들이 고생했는지 모른다고...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온갖 사건들의 밑그림이 갑자기 튀어나올 때, 이것이 무슨 일인가 놀라겠지만... 세상은 측정 불가능한 광대한 화면에 펼쳐지는 요지경(瑤池鏡)! 누가 만들고, 누가 보는지는 모르지만...
기분 나쁜 꿈, 뒤숭숭한 꿈들에 마음을 두지 마세요. 꿈의 99%는 마음의 갈등과 욕구를 정화(淨化)하는(카타르시스) 도구에 불과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룻밤 5회 정도 꿈을 꿉니다(기억하지 못하지만). 그것을 통해 마음의 기능을 회복시킵니다. 그래서 잠을 자지 못하면(꿈을 꾸지 못하면), 정신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꿈에 마음을 두지 말고, "꿈을 연출하는 그놈"이 누구인가에 관심을 가지세요. 인생 전체는 꿈이며, "꿈을 연출하고 감상하는 그놈"만 실재합니다.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자식들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사람이 깨달음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그것은 가슴에 전혀 와닿지 않는 테마이다. 깨달음은 무언가 빠진 것이 있음을 느끼는 사람에게 필요하다. 그것은 자기에 대해 무지(無知)하다는 전혀 주관적인 일 때문이다. 시타르타는 확정된 왕위에 아름다운 세자비, 그리고 귀여운 아들까지 두었음에도 삶에 대한 허무를 해결하기 위해 가족과 지위를 버렸다. 처음엔 늘고 병들고 죽는 문제 때문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삶의 근본적 문제에 접근하게 되었다. 그는 오랜 고행(苦行) 끝에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잡은 인물이 되었다. 그것은 깨달음이며, 그것으로 우리는 그를 붓다(Buddha)라고 부른다. 그것을 통해 그는 대자유(해탈)의 문을 열었다...
인생은 두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탄 여행과 같다. 그 수레를 모는 사람은 "나"이며, 몸과 마음이 두 마리의 말이다. 말 두 마리는 언제나 조화를 이루며 달려야 한다. 둘 중 한 마리가 다치거나 힘이 빠지면 마차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마차에는 늘 물과 양식이 부족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氣)이 없으면 말들은 달리지 않는다. 게다가 주인의 말조차 듣지 않는다.
운전할 때 핸들을 놓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조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핸들을 놓고 차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 기대하는 것과 같다. 길을 모르고 내비게이션에만 의존하는 사람 역시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내 차의 핸들이 내 마음에 따르듯이, 나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길이 파여 울퉁불퉁할 수 있듯이,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우울하도록 그냥 두거나 비탄에 잠기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일들이 내 의사에 반해 나타난다고 생각하지 말라. 지성은 내가 가는 길에 내가 책임지는 능력이다. 아주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